술 빚는 두 청년은 왜 짐 로저스의 투자를 거절했나

최예린 2022. 12. 2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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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청년 양조장 ‘으능정이부루어리’ 이야기
으능정이부루어리의 민재명 대표(왼쪽)와 황주상 이사가 지난 22일 대전 중구 은행동의 양조장에서 술과 쌀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최예린 기자

“양조장에서 목척교를 바라보며 술 이름을 지었어요.”

펑펑 내리는 눈 사이로 멀리 목척교가 보였다. 민재명(33) 으능정이부루어리 대표가 유튜브 홍보 영상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목척교는 어떤 맛일까?’ 다리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다니. 픽 웃음이 나왔다.

지난 22일 귀한 술을 혹시나 맛볼 기대감으로 찾은 대전 중구 은행동의 ‘으능정이부루어리’ 사무실에는 큼지막한 꿀통 9개가 쌓여 있었다. 황주상(29) 이사는 “대전 유성에서 나는 아카시아 꿀이다. 요즘 벌들이 많이 죽은 탓에 꿀이 귀하다. 저게 200만원어치”라고 설명했다. 저 귀한 꿀로 고대 북유럽인들이 즐겨 마시던 술, ‘미드’(mead)를 만든단다. 황 이사는 “수백번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프리미엄 미드’”라고 말하며 술 한잔을 건넸다. 달지만 담백한 맛. “미드는 무조건 차갑게 마셔야 맛있어요.” 옆에 있던 민 대표가 추임새를 넣었다.

대전 원도심에 있는 으능정이부루어리는 민재명, 황주상 두 청년이 설립한 양조장이다.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미드, 소주, 막걸리, 사케를 만든다. 지난해 <에스비에스>(S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로저스홀딩스의 짐 로저스 회장이 이곳에 투자하겠다고 해 시선을 끌기도 했다. 짐 로저스가 지난해 12월 한국에 와 가장 먼저 만난 이도 으능정이부루어리의 두 청년이었다.

민 대표와 황 이사는 대학교 통기타 동아리 선후배로 죽이 잘 맞는 술친구다. 졸업 후 민 대표는 아이티(IT) 업계에서, 황 이사는 청년활동가로 일하던 중 어느 날 뜬금없이 “우리가 직접 술을 만들어 팔아보자”며 의기투합했다. 작당이 끝나기 무섭게 2020년 3월 사업자등록부터 했다. 맨 처음 만든 건 ‘성심당 빵술’이었다. ‘지역 대표 명물 성심당 빵으로 술을 만들면 어떨까’란 단순한 생각으로 시도했는데, 반응은 그야말로 ‘열광적’이었단다.

“시중에 파는 맥주 만들기 키트에 성심당에서 사 온 빵을 넣는 수준이었어요. 전문가들이 고심해 내놓은 제품으로 만든 것이니 당연히 맛은 있었죠. 거기에 지역 명물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도 높게 평가받았다고 생각해요.”

으능정이부루어리의 2인방은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짐 로저스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짐 로저스는 으능정이부루어리에 대한 투자를 제안했지만, 두 청년은 거절했다. 왼쪽부터, 민재명 대표, 짐 로저스, 황주상 이사. 으능정이부루어리 제공

성공(?)적인 첫 실험을 뒤로하고, 둘은 본격적으로 양조기술 배우기에 돌입한다. 제주도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 양조기술 교육을 받았고, 서울의 한국가양주연구소의 수업도 들었다. 막걸리도 만들고, 미드도 만들었지만 ‘이거다!’ 하는 맛은 아니었다. 환기도 안 되는 좁은 사무실에서 실험에 가까운 술 만들기를 반복하다 술통 옆에서 취해 잠든 것도 여러 날이다. 아직 실력이 부족했지만, 수강생을 받아 양조 교육도 시작했다. 남을 가르치며 반응을 주고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배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양조기술을 연마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는 계속됐다.

커피 찌꺼기를 이용한 누룩을 개발해 특허 출원하고, 2020년 11월 환경부가 주최한 ‘자원순환 우수사례 경진대회’에도 참여했다. 이 대회에서 으능정이부루어리는 ‘국내 최초 새활용 양조장’으로 1등(최우수상)을 차지했다. 2등은 에스케이(SK)하이닉스와 배달의민족, 3등은 풀무원이었다.

“대기업들과 경쟁이 좋은 자극이 됐어요. 새로운 가치와 기술을 전통 산업에 적용했을 때 경쟁력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 민 대표의 말이다. 성공에 확신이 들자 민 대표는 서울에서 하던 아이티 사업을 접고, 대전에 내려왔다. 황 이사도 청년활동가 일을 정리했다. 2년 동안 실험 끝에 미드(목척교), 커피 누룩으로 만든 소주(드렁큰히어로)뿐 아니라 북한 술(한반도), 막걸리(백련당), 사케(우에시다리) 등을 상품화했고, 첫 판매를 앞두고 있다.

북한 고위직 탈북민에게 비법을 전수받은 한반도는 25도(한반도 북위), 38도(38선), 42도(백두산 북위) 등 3가지 도수로 나눠 출시한다. 백련당은 민 대표의 선조 민재문의 호를 딴 술이다. 발효하고 걸러내기를 열두번 반복한 십이양주이기도 하다. 백련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위에 뜬 청주인 ‘우에시다리’는 일본 사케 시장을 겨냥해 만들었다. ‘위 아래 법칙’이란 뜻의 일본말 우에시다리는 일제강점기부터 대전 지역 어린이들의 편가르기를 할 때 외치는 구호에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술마다 저마다의 스토리와 맛을 담았다. 대전에서 난 쌀로만 술을 만든 것도, 모든 술을 유리병에 담아낸 것도 으능정이부루어리의 특징이다. 맨땅에 헤딩해 터득한 ‘양조장 만드는 노하우’도 조만간 온라인에 공개할 예정이다.

“중국에는 칭다오, 일본에는 아사히·삿포로가 있어요. 지명보다 술이 먼저 떠오르는 그런 브랜드지요. 지역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고민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술을 만드는 것, 그것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공존하는 것이 저희의 꿈입니다.” 두 청년은 입 모아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부러워할 짐 로저스의 투자 제안을 거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성심당’처럼 느려도 꾸준히 성장하고 싶습니다.” 반짝 대박을 노리고 스타트업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여느 청년 사업가들과는 다른 우직함이 으능정이부루어리를 이끌고 있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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