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묵·두부 '오프런'... 제철농산물 입소문에 철길 밑은 인산인해

박은성 2022. 12. 2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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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우리 동네 전통시장 : 춘천 풍물시장
경춘선 철교 아래 펼쳐진 장터
메밀전·총떡·족발구이 SNS 맛집
수십 년 장터인생 담은 맛도 선사
야시장·전통체험 행사도 준비 중
"주민·관광객 건강 식탁 책임질 것"
편집자주
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달 말 5일장이 열린 춘천 풍물시장이 소비자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강원도 제공

경춘선 남춘천역을 출발해 춘천역으로 가다 보면 5일마다 철길 아래서 고소한 냄새가 풍겨온다. 들기름 발라 구워내는 김 냄새에 '펑'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 속에서 터져 나온 뻥튀기까지. 현대식 점포가 들어섰지만 시골 장터의 정든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 강원 춘천시 온의동 춘천 풍물시장이다. 지난 22일 동지를 앞두고 뜨끈한 팥죽에 얼어붙은 몸과 마음까지 녹여주는 정겨운 시장을 찾았다.


약사동에서 2010년 온의동으로 이전

2일과 7일 닷새 만에 장터가 열리는 춘천 풍물시장에선 인근 지역에서 재배한 청정 농산물이 주로 거래된다. 강원도 제공

춘천 풍물시장은 매달 2일과 7일, 장이 서는 전통 5일장이다. 1989년 춘천 약사동에 문을 열었던 풍물시장은 약사천 복원공사로 2010년 11월 경춘선 철교 아래인 지금의 장소로 옮겨 왔다. 상설점포 101곳과 닷새에 한 번 1,000명이 넘는 상인들이 자리를 펴는 이곳은 연간 3만 명 이상이 찾는 춘천의 손꼽히는 명소다.

풍물시장의 주요 품목은 제철 농산물이다. 90% 이상이 춘천 인근에서 재배한 로컬푸드다. 맑은 소양강 물줄기가 품은 농산물과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기 위해 춘천 시민들은 닷새마다 열리는 장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생산 농가가 직접 만들어 파는 도토리묵과 두부는 좌판에 내놓기 무섭게 팔리는 '오픈런' 메뉴다.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특성상, 고사리와 더덕, 나물 등 품질 좋은 임산물이 풍성하다. 잣과 버섯, 들깨와 참깨로 만든 기름도 풍물시장의 대표 상품이다. 온의동 주민 김향신(64)씨는 "풀내음이 아직 가시지 않은 제철 농산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이 풍물시장"이라며 "풍물시장에 파는 농산물은 대형마트도 따라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풍물시장이 입소문을 타면서 강원 화천과 양구, 경기 가평 상인들도 자리를 편다. 임병철(60) 상인회장은 "지역 주민들의 건강한 식탁을 책임지고, 관광객들에겐 즐거운 하루를 선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박한 먹을거리 천국"

24년째 춘천 풍물시장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박민숙(54)씨는 "몸은 고단해도 손님들로부터 위로받고 행복을 느끼는 진짜 장사꾼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춘천시 제공

값싸고 질 좋은 재료가 가득한 풍물시장은 곳곳에 맛집도 많다. 담백한 메밀전과 무나물소를 가득 넣은 총떡, 두툼한 녹두전, 돌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혀 파는 족발구이는 풍물시장만의 자랑이다. 족발구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맛집 목록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풍물시장 맛집 주인장들은 수십 년 장터인생이 담긴 맛을 이야기한다. 24년째 족발구이집을 운영하는 박민숙(54)씨는 "어릴 적 기억을 잊지 않고 성인이 돼 다시 찾아준 농구선수를 비롯해 소중한 손님들 덕분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정성이 담긴 맛으로 손님에게 위로받고 행복을 느끼는 진짜 장사꾼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가장 춘천다움으로 승부"

경춘선 전철을 타고 서울에서 1시간여 만에 닿을 수 있는 풍물시장은 당일치기 관광코스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춘천시 제공

풍물시장의 성공에는 편리한 교통편도 한몫했다. 경춘선 전철 남춘천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이 걸어서 10분 이내로 '당일치기' 관광객들에게 부담이 없다. 2019년 지상 4층(227면) 규모의 공영주차타워가 들어서면서 자가용을 이용해 오는 손님들도 주차 문제에 부담을 덜게 됐다. 춘천시도 지난 8월부터 공공 와이파이존을 구축, 카드 및 온라인 결제도 가능해졌다.

공지천과 경춘선 철교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단지 8개가 자리했지만, 상권이 좋은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직선거리로 불과 700여m 거리에 주상복합아파트 두 곳과 대형마트, 아울렛이 입점해 있다. 치킨과 피자, 베이커리 등 프랜차이즈 점포도 수십 곳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춘천 시내에서 가장 점포 수가 늘어나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풍물시장만의 차별화 전략도 준비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관심을 모았던 '치킨과 맥주' 잔치인 '꼬꼬 야시장' 부활이 대표적이다. 해가 진 뒤 화려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야시장을 통해 주야간 가리지 않고 찾을 수 있는 시장으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다.

내년 봄부터는 코로나19로 중단했던 전통체험 행사도 다시 열 계획이다. 임병철 풍물시장 운영회장은 "오직 춘천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산물과 즐길거리, 그리고 비교할 수 없는 맛이 있는 고객맞춤형 시장으로 소비자와 관광객들에게 다가서겠다"고 말했다.

춘천=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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