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짜장면집이 비밀 아지트?

이용수 논설위원 2022. 12. 26.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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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1968년 1월 31일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사이공을 비롯한 남베트남 도시들을 기습했다. 미국 대사관을 일시 점령하고 일부 도시를 함락시켰지만 이내 미군에 진압됐다. 작전은 완전히 실패한 것 같았다. 하지만 미국 대사관에 베트콩 깃발이 휘날리는 장면이 생중계되며 미국 내 반전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북베트남 지휘부가 이 작전을 앞두고 비밀회의장 겸 무기고로 활용한 장소가 사이공 시내 쌀국수집이었다. 1988년 베트남 정부는 이 식당을 역사유적지로 지정했다.

▶지금은 위축됐지만 한때 북한은 해외에 120여 개의 식당을 운영했다. 옥류관, 류경식당 등의 간판을 단 이 식당들은 가무에 능한 여종업원을 내세워 공연과 북한 음식을 제공하며 막대한 ‘충성 자금’을 북한에 보냈다. 외화 벌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스파이 거점 역할이었다. 현지인 외에 한국 관광객과 상사 주재원들도 자주 찾았는데 이들이 먹고 마시며 내뱉은 말들이 고스란히 북 보위부의 첩보로 가공됐다.

▶중국 공안 당국이 반체제 인사 탄압을 위해 최소 53국에서 102곳 이상의 비밀경찰서를 운영한다고 스페인의 인권단체가 폭로했다. 우리 정부도 실태 파악에 착수했고,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이 지목됐다. 중국 대사관은 “이른바 ‘해외경찰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 문제가 불거진 직후 해당 식당은 돌연 폐업을 선언했다.

▶문제의 식당 이용객들이 과거에 남긴 후기가 재조명되고 있다. ‘음식이 너무 성의 없다’ ‘절대로 다시 가지 않겠다’ ‘조리했다기보단 전자레인지에 돌린 듯’ 등 맛이 없다는 후기나, ‘직원들이 서로 키득거리며 중국어로 대화함’ ‘(종업원들이) 손님 있는데 퇴근 준비함’ ‘직원들이 간단한 한국어도 못 알아들음’처럼 종업원 태도에 실망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압권은 ‘(별) 한 개도 아깝습니다. 여긴 분명 식당을 하기 위해 연 곳이 아닐 거라 생각된다’는 3년 전 후기였다.

▶방첩 당국은 이 중식당을 비교적 수월하게 중국의 비밀 경찰서로 지목했다고 한다. 혹평 속에 큰 손실을 보는데도 6년 이상 영업한다는 게 의심을 샀다는 것이다. 역대 2위인 1600만명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영화 ‘극한직업’은 마약반 형사들이 치킨집을 위장 창업해 수사하는 상황을 그렸다. 너무 진지하게 장사에 임해 잠시 경찰이란 본분을 잊을 지경이 된다. 쇄도하는 주문을 받느라 용의자 미행을 위해 지원을 요청한 동료 형사를 돕지 못하는 식이다. 문제의 중식당을 영화 속 치킨집처럼 운영했다면 발각이 어려웠을 것이다. 차라리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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