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인생

기자 2022. 12. 2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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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볼 때마다
달팽이가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느릿느릿 지게를 짊어진 할아버지처럼

밤하늘의 달을 볼 때마다
세간이 줄었다 늘었다 하는 것 같았습니다
흥했다 망했다 살다 간 아버지처럼
그렇습죠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겠어요

하늘에 세 들어 사는
구름처럼 달처럼
모두 세월에 방을 얻어 전세 살다 가는 것이겠지요

권대웅(1962~)

이 시는 왠지 오르한 웰리 카늑의 시 ‘무료’를 떠올리게 한다. 튀르키예 시인 카늑은 우리는 이 땅에 “무료로 살고 있”다며 하늘과 구름, 시내와 언덕, 비와 흙도 무료라고 했다. 하지만 “치즈와 빵”은 무료가 아니다. 자연은 무료지만 자연에서 얻은 것을 가공한 식량은 공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노동의 대가다. 달팽이처럼 “느릿느릿”한 할아버지의 삶이 자연을 닮았다면, “흥했다 망했다 살다 간 아버지”의 삶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희생하는 가장의 모습이다.

흘러가는 구름을 완상하는 여유와 낭만이 느껴지는 할아버지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노동에 시달리는 아버지. 시인은 선대의 삶에서 “세상에/ 내 것”은 없다는 것과 “모두 세월에 방을 얻어 전세 살다 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내 것도 아닌, 죽을 때 다 두고 갈 것을 위해 아등바등 사는 인생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베풀고 나누며 살라 한다. 카늑은 자유와 구속도 무료라 했다. 자유를 누리며 살 것인지, 삶을 구속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내 의지에 달려 있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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