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파업수난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화물연대 파업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사회 재난’으로 규정했다. 재난안전법상 사회재난은 ‘화재, 붕괴, 폭발, 교통사고, 화생방사고, 환경오염사고 등’으로 정의한다. 특히 재난안전법 시행령 44조에는 ‘쟁의행위로 인한 국가핵심기반의 일시 정지는 (재난에서) 제외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노동자의 파업이 왜 재난이 아닌지 법적 근거를 들어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나 자괴감이 든다. 파업을 재난으로 간주하는 순간, 헌법에 보장된 파업권은 무력화된다. 파업이 재난이라면, 국가는 비상사태로 간주해 파업을 군사작전을 수행하듯이 진압하거나 법적 강제조치에 들어갈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 대응의 실패를 노동자 파업의 성공적 진압으로 만회하려는 듯이 재난을 파업과 연결시키고, 시민의 안전을 국가안보로 대체했다.
파업은 단 한번도 헌법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로 말해진 적이 없다. 오늘은 파업이 ‘재난’이었지만, 2000년 초반에는 ‘테러’로 간주되었다. 2000년 롯데호텔에서 파업 중이던 노동자들을 진압하고 구속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특공대’는 테러진압을 목적으로 창설된 부대였다. 특공대는 섬광탄, 연막탄 등을 발사하고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며 파업농성장에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33명이 병원으로 옮겨졌고, 1122명이 연행되었다.
2009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용산 철거민 6명이 사망하자,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철거민의 농성을 “도심테러”라고 비난했다. 용산 참사에 투입된 경찰특공대는 같은 해 쌍용자동차 파업에도 투입되었다. 경찰은 헬기를 띄워 최루액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했고, 다목적 발사기와 테이저건 등 테러범을 잡을 때 사용하는 장비들을 사용했다. 당시 경찰청장이 경찰특공대 투입에 반대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특공대 투입을 직접 결정했다. 테이저건이 노동자 얼굴을 향해 발사되었고, 2급 발암물질이 포함된 다량의 최루액이 노동자들의 살을 파고들었다. 헬기를 타고 내려온 특공대가 노동자들을 쫓으며 곤봉으로 두들겨 팼고 파업은 진압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보수언론은 ‘귀족노조’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하면서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문제와 임금격차의 주범이 되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노동귀족이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2003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 위원장은 파업 중 고공크레인에서 목을 맸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파업으로 인한 사측의 가압류로 그의 마지막 월급은 13만원이었다.
파업이 재난이고 테러고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명명되자, 노동자는 노동귀족이 되었고 테러리스트가 되더니 이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럴 바에야 헌법에 파업할 권리를 빼야 하지 않나. ‘법치’ 운운하는 그 입도 다물라. 또다시 노동자가 헌법을 글자 그대로 믿고 법대로 파업을 하면 이제 또 무어라고 딱지를 붙일 것인가.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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