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부산시민이라 자랑스럽습니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 2022. 12.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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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완 동아대 교수

2022년이 저물어갑니다. 올 한 해 많이 힘드셨지요? 그래도 지나간 날의 후회와 아쉬움보다는 다가올 새해의 벅찬 희망으로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1년 365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언제였는지 여쭈어봅니다. 단 하루를 꼽으라 한다면 저는 단연 11월 11일이 생각납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똑같은 하루가 아닌, 부산시민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지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우리말로 ‘부산을 향하여’로 불리는 이날은 1950~1953년 6·25전쟁에 참전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고 유엔 참전국과 함께 추모하기 위해 지정한 날입니다.

캐나다 참전용사인 빈센트 커트니 씨의 제안으로 지난 2007년에 시작되었지요. 이후 국가보훈처 주관 정부 행사로 격상되어 전사자들이 안장된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11시에 맞춰 동시 묵념과 추모행사를 진행합니다.

대한민국을 지켜낸 국군 및 유엔군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22개국 참전용사들이 해마다 부산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먼저 간 전우들을 기억하고자 애쓰는 남은 자들의 또 다른 헌신이라 해야 할까요?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를 기해 부산 전역에 일제히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더욱 장엄하게 들리는 이유입니다.

특히 올해 11월 11일이 더욱 기억에 남는 건 아주 특별한 손님들이 부산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부산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탈북청소년 초청 통일 기원 축구캠프’를 위해 전국의 탈북학생들이 부산을 방문했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여명학교 남북사랑학교 드림학교 우리들학교 등 전국의 탈북학교 학생 14명과 부산지역 통일연구학교인 신호중학교 학생 8명 등 총 22명이 참가했습니다.

축구 경기 때 입은 유니폼 등번호도 22명의 참가 학생 모두 똑같이 ‘22’번이었습니다. 22개국 유엔 참전 의미를 기리기 위한 상징이었지요. 임시수도기념관 감천문화마을 국제시장 등 ‘피란수도 부산’ 곳곳을 탐방하며 전쟁 상흔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또한 UN기념공원을 방문해 헌화하며 추모 시간을 가졌습니다.

분단 조국을 살아가는 남북한 출신 아이들이 한마음으로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며 기억했습니다. 바로 그분들이 계셨기에 오늘 우리가 있음을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었지요.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품은 이 중학생들이 참으로 대견하지 않으십니까? 한 탈북학생은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서 많은 나라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워주었다는 사실에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과 박지훈 과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탈북청소년학교 학생들이 부산에 모여 서로를 이해하고 통일 공감대를 확산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탈북청소년 학교가 집중된 수도권이 아닌 부산에서 이번 행사를 개최한 건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30만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피란민으로 인해 80여만 명까지 늘어났습니다. 갑작스러운 인구 유입으로 거주할 집은 물론 한 끼 식량마저 부족할 때였지요. 그 어려운 시기 부산은 모질게도 가난했지만, 부산시민은 넉넉히 모든 것을 품었습니다. 피란민의 아픔을 보듬고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022년 오늘, 우리 곁에는 또 다른 피란민인 탈북민이 있습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부산에 모인 남북한 출신 아이들은 피란의 아픔을 통일의 꿈으로 노래했습니다. 부산은 그렇게 넉넉히 분단을 품고 보듬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2023년에도 어김없이 11월 11일은 다가올 것이고, 우리는 또한 그날을 기억할 것입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탈북청소년이 부산을 방문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언제나처럼 부산시민이 넉넉히 품어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부산시민임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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