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신년운세

성송이 씨네소파 대표 2022. 12.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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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송이 씨네소파 대표

겸(謙)괘는 육십사괘 중 하나로, 주역에서 15번째로 등장하는 괘이다. 아래(내괘)에는 간괘, 위(외괘)에는 곤괘가 있는 모양새이다. 간괘가 산을 곤괘가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겸괘의 모습은 땅속 산이라고 말해지며, 무언가 높은 것이 낮은 것 아래에 있는 느낌으로 종종 해석되어지곤 한다. 그 익숙한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겸괘는 겸손과 겸양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아주 조금만 더 들어가 보자. 하나의 괘는 총 여섯 개의 음과 양의 작대기(효)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효는 각각의 설명(효사)을 가지고 있다. 효의 위치와 주변 효와의 상응에 따라 점이라고 할 만한 풀이가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래서 효사에는 함께 하면 길하다든지 어디로 가면 흉하다든지 등등 점의 평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겸괘가 재미있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겸괘는 육십사괘 중 부정적인 점의 결과가 없는 유일한 괘이다.

딱 이맘때쯤이다. 예전 같았으면 딱 지금쯤, 용하다는 곳을 추천받아서 어딘가의 문을 두드렸을 참이다. 이사를 하는 게 좋을지 프로젝트는 몇 월에 하는 게 좋을지 등등 내년 사업운과 금전운에 관해 답을 구하고 다녔을 것이다.

성향이 그런 탓도 있겠지만 나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운세라는 것에 더 의지하게 된 것 같다. 아침 출근길에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면서 겨우 하루를 버텨낼 마음을 다잡고, 큰 행사를 앞에 두고는 운세 앱 여러 개를 돌려보며 가장 좋은 풀이와 가장 나쁜 풀이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삶이 원래 그렇겠지만 내 뜻대로, 혹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는 상황 속에서 무언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나는 사실 종교도 없고 귀신도 믿지 않는 이과형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운세를 꼭 믿었다기보다는 일종의 민간요법식 심리상담 내지는 약효가 없는 예방주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나 올해는 천공이니 건진법사니 하며 나라 돌아가는 사정을 지켜보고 운과 점이라는 것이 지긋지긋해지던 찰나,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도올 주역 강해’를 만나게 되었다. 평소에 주역은 그저 미신 같은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철학자가 그런 역에 대해 논할 것이 있다는 말인지 또 뭘 그렇게까지 많이(약 800쪽) 풀이할 것이 있다는 것인지 우선 호기심이 생겼었다. 그렇다고 주역의 그 방대한 세계를 여기서 논해보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점으로서의 역이 동양사상의 베이스가 되는 철학으로서의 역으로 이해되며, 당분간 점과 멀어진 사건에 관해서는 이야기해봄 직할 것 같다. 도올은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대한민국 사람들을 점으로부터 해방시키고…미신과 종교로부터 해탈케 하려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겸괘와의 만남은 (도올이 말한 ‘점으로부터의 해방’의 의미는 단순히 괘 하나의 철학을 훨씬 상회하지만) 그런 해방의 시작 중 하나였다. 겸괘와 만난 이후로 그동안 내가 운세를 알고 싶어 했던 것이 걱정과 우려가 많은 성격 때문이 아니라 실은 일종의 오만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후회)나 흉 같은 나쁜 점괘가 없다는 것이 나는 겸손한 덕목을 유지하면 나쁜 운이 없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겸손의 세계에는 나쁨의 자리가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이에게는 다가오는 어떠한 운도 감사할 터이다. 이 일을 언제 하면 더 좋을지를 점친다는 것은 좋고 나쁨을 속단한다는 뜻이고 평가하게 된다는 뜻이다. 속단하기에 경솔해지고 평가하기에 거만해진다. 물론 이것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우고 느끼는 것이 역의 중요한 본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본의 아니게 신년운세를 끊어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내년은 꼭 우주같이 깜깜하고 무궁무진한 해이다. 운세를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지고한 가능성을 지니게 된 것 같으니 재미난 일이다. 어두운 방 한켠에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내게 다가오는 흐름을 느끼고 있으면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내년에 이사하게 될 사무실과 우리가 선보일 영화들은 또 어떠한 모습을 띠게 될까. 늘 걱정스럽던 미래는 반가움이 된다. 나는 그렇게 올해를 절‘점(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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