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리셋하고 싶은 마음
부탄은 여러가지를 떠올리게 하는 나라다. 히말라야의 장엄한 풍경을 가진 나라,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물질문명에 의한 오염을 막고자 연간 관광객 숫자를 제한하는 나라, 그리고 신성한 존재인 살아있는 환생불들의 나라···.
2008년 부탄에서 환생불 이야기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적이 있다. 부탄 사람들은 환생을 믿는다. 특히 ‘툴쿠’라고 불리는 환생불들이 전생에서 수행을 열심히 하여 이생에서 그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이생에 어린아이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 ‘툴쿠’는 환생위원회의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큰 스승 ‘환생불’로 추앙받는다. 이들이 중생 구제를 위하여 인생 2회 차, 3회 차의 삶을 반복한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부탄에서처럼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인생 2회 차 부활 스토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환생불처럼 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난다는 발칙한 상상. ‘내가 IMF 이전으로 돌아가면 그 아파트를 당장 살 텐데’, ‘ 주식을 왕창 살 텐데’, ‘~한 결정을 하지 않을 텐데’같이 과거에 이루지 못한 일을 드라마 주인공을 통해서라도 대리만족하고 싶다는 보상 심리. 전생의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다는 이야기가 지난 한 해를 리셋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연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엔 제격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인생을 불안하다 느낀다. 과거의 기억을 유지한 채 다시 태어나 닥쳐올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미래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렇지만 미래를 알면 과연 행복할까? 답이 정해진 미래를 살아가는 것은 지루한 일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내일을 모르기에 오늘 더 행복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순정만화계의 클래식으로 꼽히는 신일숙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 이런 대사가 있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 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예측 불가능한 2023년도 대체 불가한 미래로 만들어보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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