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인사이트] 예술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힘을 얻지만… 관심만 원하면 ‘관종’일 뿐

김영애 '나는 미술관에 간다' 저자 2022. 12. 2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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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드 생팔의 대표작인‘나나’연작 시리즈 중 하나.(왼쪽 사진) 주로 풍만한 체형의 여성을 모티브로 삼은‘나나’연작은 어린 시절의 고통으로 절망에 빠져 있던 작가가 친구의 도움으로 여성의 몸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자전적 경험이 깃들어 있다. 이렇듯 주위의 관심에 힘을 얻어 창작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로 메건 트레이너의 최신 히트곡‘메이드 유 룩’(오른쪽 아래 앨범 표지)이 있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어두운 면도 지니고 있다. 2016년 다큐멘터리‘메이드 유 룩’은 마크 로스코의 위작 사건을 통해 사람들의 그릇된 욕망을 파헤친 작품이다. 오른쪽 위 사진은 로스코의 작품이 전시된 한 갤러리. /위키피디아·플리커

최근 SNS(소셜미디어)를 평정한 노래가 있으니 바로 ‘메이드 유 룩(Made You Look)’이다. ‘구찌나 루이비통을 입을 수도 있지만, 그런 걸 걸치지 않아도 너는 나를 바라볼 수 밖에 없어. 왜냐하면 나는 특별하니까’ 라고 외치며 딱 붙는 수영복을 입고 명랑한 춤을 추는 메건 트레이너의 밝은 모습은 니키 드 생팔의 ‘나나 조각’을 연상시킨다. 니키 드 생팔은 2002년 작고하였지만, 2021년 뉴욕 회고전에 이어 현재도 프랑스 툴루즈에서 전시회가 열릴 정도로 끊임없는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다. 작가는 젊은 시절 모델로 활동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바로 그 미모 때문에 항상 남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이른 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사회와 단절된 듯한 우울감에 사로잡혔던 그녀에게, 친한 친구의 임신 소식은 중대 전환점이 됐다. 여성의 몸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신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로 말 못 할 고통을 겪던 그녀에게 예술은 외부와 소통하는 방법이었다. 작품을 통해 많은 이가 그녀의 내면을 알아봐주자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날 힘을 갖게 되었고, 생명력 넘치는 나나의 모습은 삶의 고통을 극복한 작가 자신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싱어송라이터 메건 트레이너의 자신감 넘치는 가사도 그녀의 자전적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엄청난 신체적 변화 속에서 젊은 여성 연예인으로서 자신감이 떨어졌지만, 연애와 결혼 그리고 함께 부모가 되는 6년 동안 한결같이 그녀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다. 출산 후 변한 몸 앞에서 낙담한 그녀에게 상담사는 거울 앞에 발가벗고 서서 자신의 몸을 5분 이상 바라보라고 조언해 주었는데 처음에는 그것조차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점차 자신의 아름다움을 포용하고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샤워를 하다가 단번에 이 가사를 썼다고 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남편의 관심은 가수 생명의 위기에 있었던 아내의 자존감을 살려주었고, 세계 최고의 히트송을 끌어낸 셈이다. 게다가 지금은 단지 유명 가수가 아니라 수많은 토크쇼에 출연하며 나의 몸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고 자존감을 회복한 경험을 설파하며, 본인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하고 싶다는 꿈에 한발 다가가고 있다.

제작 동기를 알고 ‘메이드 유 룩’을 보니, 진짜 잘난 사람이 던지는 콧대 높은 선언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눈길을 받음으로써 강력한 존재로 거듭나게 된 과정을 설파하는 찬가로 들린다. ‘나를 좀 봐 주면 내가 더 힘이 날 것 같아’라고 말하기 민망한 시대, ‘넌 날 볼 수밖에 없어’라는 반어적 외침이다. 메건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밈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의 관심을 확보하면 그들은 ‘인플루언서’라고 불리며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 말의 부정적 버전으로 ‘관종’이라는 표현도 있다. 실체는 없이 무조건 관심만 얻으려고 할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한 지적이다. ‘메이드 유 룩’이라는 말이 가진 또 다른 의미가 바로 여기에서 파생한다. “저거 봐!”라고 소리쳐 주의를 환기시킨 후, 실은 아무것도 없을 때 ‘너를 보게 만들었어’ ‘속았지’ 라는 뜻으로 메이드 유 룩이라고 소리친다고 한다.

바로 이런 의미로 쓰인 동명의 영화 제목이 있으니 2016년 마크 로스코의 위작 재판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한 컬렉터가 8300만달러에 구매한 로스코의 작품은 실은 한 중국 노인이 그린 위작이었고,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 작품을 조용히 판매하고 싶어 한다는 은둔의 컬렉터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위작을 가져온 죄로 남미 출신 딜러는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를 유통시킨 갤러리 디렉터와 컬렉터는 합의했다.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관객을 배심원 자리에 놓고 다양한 증언을 들려주는 전개 방식이다. 실제 인물들과 변호사, 기자 등 관련 인물들이 등장하여 서로 속았다고 주장하는 장면이 교차되는 순간, 관객은 그들 모두가 욕망에 사로잡힌 공범임을 깨닫게 된다. 그들을 매료시킨 건 로스코의 작품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시선과 위상이었고, 작품 값은 바로 그 명성에 비례한다.

이는 비단 연예인의 몸값 혹은 예술품처럼 값으로 매기기 어려운 분야만이 아니라, 물질 세계에도 통용된다. ‘경제는 심리다’라는 유행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표현이다. 한두명이 허공을 가리키면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세명이 같은 행동을 하면 다른 군중들도 관심을 갖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회학 실험을 통해 이미 밝혀진 바다. 뭔가 있겠지 하는 믿음이 군중을 움직이고 트렌드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남들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함으로써 나의 욕망을 채운다고 한다. 남들도 갖고 있는 것을 나도 갖고 있어야 안심이 되고, 정작 내가 무엇을 갖고 싶어 한 것인지를 제대로 알려면 깊은 반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말의 히트송이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보는 것의 힘과 위험을 알고 이를 다루는 능력을 기르기. 오랜만에 개봉한 영화 아바타의 명대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I see you’를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 당신이 보입니다’라는 해석이 더 와닿는다. 너무 멋있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들어온 당신을 바라봐 줌으로써 지지를 표하는 것이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은 분리되지 않은 채 상호 영향을 미친다. 봄으로써 알게 되고, 또한 아는 것이 보인다. 새해에는 남들이 보는 곳이 아니라 기운을 더 불어넣어 주고 싶은 곳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성장하고자 하는 방향을 끈기있게 바라볼 때 그 쪽으로 잎을 틔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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