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규 “등번호 없는 유니폼은 도전의 힘”
수원=유채연 기자 2022. 12. 26. 03:00
[2022 꺾이지 않은 마음]〈1〉월드컵 대표팀 예비선수 오현규
“2026 월드컵 땐 주전으로… 꺾이지 않는 마음 다질 것”
출전 불발, 좌절 대신 배움의 기회로
분위기 메이커-볼보이 궂은일 척척
손흥민 “제 역할 다해… 우리는 한팀”
“2026 월드컵 땐 주전으로… 꺾이지 않는 마음 다질 것”
《2022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시작해 경기 둔화, 수도권 폭우, 이태원 핼러윈 참사 등으로 많은 이들에게 힘겨운 한 해였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성취를 거둔 이들도 적지 않다. 연말을 맞아 올해 꺾이지 않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현규 선수(21·수원 삼성) 집에는 등번호 없는 국가대표팀 유니폼이 벽에 걸려 있다. 그는 지금도 집에서 나올 때마다 액자 속 유니폼을 보며 각오를 다진다. 오 선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저한테는 정말 가치 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니폼”이라며 “더 강한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줬다”고 했다.
이 유니폼은 그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스트라이커가 될 뻔했다는 증거다. 그는 손흥민(30·토트넘)이 안와 골절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지난달 14일 오전(현지 시간) 다른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카타르에 입성했다. 하지만 손흥민이 24일 안면마스크를 쓰고 우루과이전 출전을 강행하면서 그에겐 ‘꿈의 무대’를 밟을 기회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는 대신 이를 악물었다. 훈련장에서 연습 파트너로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고 볼보이와 응원단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다른 선수들이 어떻게 뛰는지 유심히 지켜보면서 머릿속으로 연구를 거듭했다. 다음 월드컵 때는 반드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겠다는 ‘꺾이지 않는 마음’을 다졌다”고 했다.
“훈련파트너로 원팀정신 배웠다… 4년뒤 월드컵땐 18번 달것”
출전 불발, 좌절 대신 배움의 기회로
분위기 메이커-볼보이 궂은일 척척
손흥민 “제 역할 다해… 우리는 한팀”
오현규는 조별리그 1차전을 12일 앞둔 지난달 12일 ‘예비 선수’로 벤투호에 합류했다. “부상으로 손흥민의 우루과이전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말이 나올 때였다. 그는 “합류 소식을 듣고 월드컵 무대에 동행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고 회상했다.
○ 예비 스트라이커로 밟은 꿈의 무대
하지만 이틀 만에 정작 카타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는 “예비선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눈치가 보였다”며 “내 위치와 역할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 최종 명단에 없는 선수가 개최국에 함께 간 건 처음이었다.
그는 경기 투입을 대비해 현지에서 몸 컨디션을 끌어올리면서 각오를 다졌다. 현지에선 황희찬(26·울버햄프턴)의 햄스트링(허벅지 뒤 근육) 부상 소식에 황희찬 대신 차출될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카타르 땅을 밟은 지 9일 만에 그에겐 그라운드를 밟을 기회가 사라졌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상 첫 경기 24시간 전까지만 대표선수를 바꿀 수 있는데 손흥민과 황희찬 모두 출전이 결정된 것이다. ‘예비 선수’ 생명이 끝난 순간 오현규의 시간은 다시 시작됐다. 그는 “자칫 좌절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선배들로부터 하나라도 더 배우는 기회로 삼자’며 동기부여를 했다”고 말했다. 손흥민도 그에게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말고 많이 배워갔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팀 막내인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27번째 선수를 자처하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단체훈련에선 훈련 파트너와 볼보이를 도맡았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선배들에게 큰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선수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단체훈련에 앞서 개인훈련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스태프보다 먼저 에너지 음료 등을 전달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는 “선수들 마음과 경기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스태프보다 센스 있게 챙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우리는 원팀이었다”
대표팀 선수들도 그의 마음을 알기에 바쁜 중에도 틈틈이 오현규를 챙겼다. 마주치면 ‘요즘 어떠냐’ ‘아픈 곳은 없냐’고 물었고 식사 때도 꼭 챙겨서 같이 갔다. 선수명단에 없는 그는 벤치에서 경기를 볼 수 없어 관람석에서 4경기를 모두 지켜봤다. 그는 “벤치 바로 뒤 관중석에서 지켜봤는데 마치 함께 경기장에서 뛰는 것 같았다”며 “다들 어떻게 경기를 준비했는지, 어떤 부상을 입고 뛰는지 알고 있기에 한 팀이라는 생각으로 몰입했다”고 회상했다.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3차전은 그에게도 잊지 못할 경기였다. 오현규는 “동점골을 넣고 난 뒤부터 경기 분위기가 우리에게 넘어오는 게 느껴졌다”며 “경기 종료 직전 마지막 넣은 한 골이 4년간 월드컵을 준비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포르투갈전을 마치고 주저앉은 손흥민에게 뛰어가 우루과이-가나전을 실시간 중계한 것도 그였다. 누구보다 큰 소리로 남은 시간을 카운트했고 16강 진출 확정 후엔 함께 끌어안고 기뻐했다. 그는 “내게도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뛰지 않았는데도 진이 빠져서 숙소에 와 라면 2개를 먹고 잤다”며 웃었다.
대표팀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한 그에게 손흥민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자기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 정확히 알고 충실하게 해줬다. 저에게는 같은 팀이었다”며 애틋함을 표시했다. 대표팀 선수들은 ‘포상을 못 받는 현규를 챙겨야 한다’며 포상금 일부를 모아 건넸다.
○ “2026년 월드컵 때 18번 달고 뛰겠다”
올해는 월드컵 외에도 그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개인적으론 1부 리그 36경기에서 13골(득점 7위)을 넣으며 스트라이커로 맹활약했지만, 소속팀인 수원은 2부 리그 강등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10월 29일 승강플레이오프(PO)전에서 그가 넣은 극적인 결승골 덕분에 소속팀은 1부 리그에 남게 됐다.
그의 시선은 이미 2026년 월드컵을 바라보고 있다. 오현규는 “존경하는 박건하 수원 감독과 황선홍 올림픽대표팀 감독의 등번호이자 현재 등번호인 18번을 달고 맹활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또 “카타르 땅을 밟게 해 준 파울루 벤투 감독(53)과 손흥민 형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 덕분에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고 ‘꺾이지 않는 마음’을 키울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 예비 스트라이커로 밟은 꿈의 무대
하지만 이틀 만에 정작 카타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는 “예비선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눈치가 보였다”며 “내 위치와 역할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 최종 명단에 없는 선수가 개최국에 함께 간 건 처음이었다.
그는 경기 투입을 대비해 현지에서 몸 컨디션을 끌어올리면서 각오를 다졌다. 현지에선 황희찬(26·울버햄프턴)의 햄스트링(허벅지 뒤 근육) 부상 소식에 황희찬 대신 차출될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카타르 땅을 밟은 지 9일 만에 그에겐 그라운드를 밟을 기회가 사라졌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상 첫 경기 24시간 전까지만 대표선수를 바꿀 수 있는데 손흥민과 황희찬 모두 출전이 결정된 것이다. ‘예비 선수’ 생명이 끝난 순간 오현규의 시간은 다시 시작됐다. 그는 “자칫 좌절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선배들로부터 하나라도 더 배우는 기회로 삼자’며 동기부여를 했다”고 말했다. 손흥민도 그에게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말고 많이 배워갔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팀 막내인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27번째 선수를 자처하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단체훈련에선 훈련 파트너와 볼보이를 도맡았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선배들에게 큰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선수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단체훈련에 앞서 개인훈련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스태프보다 먼저 에너지 음료 등을 전달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는 “선수들 마음과 경기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스태프보다 센스 있게 챙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우리는 원팀이었다”
대표팀 선수들도 그의 마음을 알기에 바쁜 중에도 틈틈이 오현규를 챙겼다. 마주치면 ‘요즘 어떠냐’ ‘아픈 곳은 없냐’고 물었고 식사 때도 꼭 챙겨서 같이 갔다. 선수명단에 없는 그는 벤치에서 경기를 볼 수 없어 관람석에서 4경기를 모두 지켜봤다. 그는 “벤치 바로 뒤 관중석에서 지켜봤는데 마치 함께 경기장에서 뛰는 것 같았다”며 “다들 어떻게 경기를 준비했는지, 어떤 부상을 입고 뛰는지 알고 있기에 한 팀이라는 생각으로 몰입했다”고 회상했다.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3차전은 그에게도 잊지 못할 경기였다. 오현규는 “동점골을 넣고 난 뒤부터 경기 분위기가 우리에게 넘어오는 게 느껴졌다”며 “경기 종료 직전 마지막 넣은 한 골이 4년간 월드컵을 준비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포르투갈전을 마치고 주저앉은 손흥민에게 뛰어가 우루과이-가나전을 실시간 중계한 것도 그였다. 누구보다 큰 소리로 남은 시간을 카운트했고 16강 진출 확정 후엔 함께 끌어안고 기뻐했다. 그는 “내게도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뛰지 않았는데도 진이 빠져서 숙소에 와 라면 2개를 먹고 잤다”며 웃었다.
대표팀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한 그에게 손흥민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자기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 정확히 알고 충실하게 해줬다. 저에게는 같은 팀이었다”며 애틋함을 표시했다. 대표팀 선수들은 ‘포상을 못 받는 현규를 챙겨야 한다’며 포상금 일부를 모아 건넸다.
○ “2026년 월드컵 때 18번 달고 뛰겠다”
올해는 월드컵 외에도 그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개인적으론 1부 리그 36경기에서 13골(득점 7위)을 넣으며 스트라이커로 맹활약했지만, 소속팀인 수원은 2부 리그 강등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10월 29일 승강플레이오프(PO)전에서 그가 넣은 극적인 결승골 덕분에 소속팀은 1부 리그에 남게 됐다.
그의 시선은 이미 2026년 월드컵을 바라보고 있다. 오현규는 “존경하는 박건하 수원 감독과 황선홍 올림픽대표팀 감독의 등번호이자 현재 등번호인 18번을 달고 맹활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또 “카타르 땅을 밟게 해 준 파울루 벤투 감독(53)과 손흥민 형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 덕분에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고 ‘꺾이지 않는 마음’을 키울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수원=유채연 기자 y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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