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101) 살아 남은 자의 슬픔 (Ich, der Überlebende)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2022. 12. 26. 00:00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1898~1956)
(김광규 옮김)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열함)
수식어가 거의 없지만 그래서 더 선명한 슬픔이 포탄처럼 터지는 시. (운이 좋지 않아, 혹은 충분히 강하지 못해)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베냐민 등 전쟁 통에 죽은 친구들에 대한 죄의식이 간결한 시어에 담겨있다. 미국으로 망명한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1944년에 독일어로 쓴 이 시의 원래 제목은 “Ich, der Überlebende (나, 살아 남은 자)”이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의 샌타모니카에 정착한 브레히트는 생계 유지를 위해 시나리오를 써서 팔아보려 했고, 신발보다 더 자주 나라와 언어를 바꾸며 어찌 어찌해 살아남았다. 타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독일이 패망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쓴 ‘모든 것은 변화한다’라는 제목의 시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당신이 포도주 속에 부은 물을 당신은 다시 퍼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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