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원로 경제학자 변형윤 교수 별세

이윤주 기자 2022. 12. 2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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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결함의 해결책은 인간 중심의 시각을 가지는 것”
‘행동하는 지성’으로 시대에 울림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앨프리드 마셜이 했던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셜은 그의 주저인 <경제학원리>의 첫 페이지에서 ‘경제학은 부(富)의 축적에 관한 연구인 동시에 인간(人間)에 관한 연구의 일부’라는 명언을 남겼다. 다시 말해서 경제학은 인간 중심의 학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현일지(學峴逸志)>(현대경영사·2019)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원로 경제학자인 학현(學峴)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별세했다. 향년 95세.

서울사회경제연구소는 25일 “변형윤 명예 이사장께서 별세하셨다”고 밝혔다.

1927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변 교수는 경성 중학을 졸업하고 1945년 서울대 상대 전신인 경성경제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28세 때인 1955년부터 모교 강단에 서기 시작해 1992년까지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인간 중심의 경제학을 내세우며 소득 재분배와 균형적 경제발전을 강조했다. 고인의 호인 학현은 ‘배움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그는 2019년 회고록에서도 “시장경제가 만능은 아니다. 시장은 스스로의 결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부가 이에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문제는 ‘시장이냐, 정부냐’의 2분법이 아니라, 어떠한 방법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더 필요한가 하는 인간 중심의 시각을 가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수학> <현대경제학> <통계학> <분배의 경제학> <반주류의 경제학> <한국 경제의 진단과 반성> 등 많은 저서를 집필했고, 평등과 분배 정의를 지향하는 경제학을 연구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특히 고인은 연구와 교육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하는 지식인’으로도 시대에 울림을 줬다. 서울대 교수 시절 고인은 1960년 피 흘리는 학생들 모습을 보고 교수 신분으로 4·19혁명에 참여하고,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평가대회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다”고 부작용을 직언하기도 했다.

1980년 ‘서울의봄’ 당시에는 서울대교수협의회 회장으로서 시국선언에 앞장섰다가 4년 동안 해직됐다. 당시 그가 세운 ‘학현연구실’은 훗날 ‘서울사회경제연구소’로 확장되면서 한국 사회의 진보적, 개혁적 경제학자들의 학문적 요람으로 자리 잡았다. 학현학파는 성장 일변도의 한국 경제 구조에 소득 재분배라는 진보적 개념을 도입했고, 이 학파로 분류되는 학자들이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경제 부처에 기용됐다.

고인의 분향소는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9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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