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의 ‘늑대’를 만났다,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겁니다
올해 문화계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는 풍자만화 <윤석열차>가 몰고 온 ‘표현의 자유’ 논란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이랑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가 불러온 ‘검열’ 논란이었다. <한겨레>는 송년 기획으로 두 논란의 중심에 섰던 가수 이랑과 신종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장 인터뷰를 통해 ‘표현의 자유’와 ‘검열’ 문제를 되짚어본다.
“검열은 생각조차 못 했죠. ‘늑대가 나타났다’는 올 3월에 큰 상(한국대중음악상)도 받아 평단에서 인정한 노래예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고요.”
지난 15일 저녁 서울 마포의 한 주택에서 만난 가수 이랑은 이렇게 말하며 토스트를 권했다. 식탁엔 그가 만든 토스트가 놓여 있었다. 블루베리잼을 바른 토스트를 나눠 먹으며 ‘늑대가 나타났다’를 만들 때의 수고스러움에 대해 먼저 얘기를 나눴다.
“1집 <욘욘슨>(2012)엔 연인과 가족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실었어요. 2집 <신의 놀이>(2016)엔 대학을 졸업하고 막 사회생활을 하며 떠올리게 되는 질문을 담았죠. 3집 <늑대가 나타났다>(2021)에선 1·2집의 개인 서사를 넓혀나가 타인의 목소리와 우리 사회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3집은 2집의 결론을 뒤엎었다. “2집의 결론은 웃음이었죠. 그런데 3집의 결론은 분노예요. 불합리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웃을 수도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들에게 필요한 건 웃음이 아니라 고함, 울부짖음이죠.”
3집 타이틀곡 ‘늑대가 나타났다’에서 자식을 잃은 가난한 여인은 마녀로 몰리고, 배고픔을 못 이겨 들고일어난 사람들은 폭도·늑대·이단으로 매도된다. 이런 중세 유럽의 광경을 빗대 지금 이 땅에 사는 약자들의 아픔을 담은 노래다.
3집 앨범은 지난 3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 상을 받았다. 수상 뒤 이랑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민중가요가 아닌 척, 세련되고 멋진 노래여야 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거라 생각해 유럽 빈티지 감성의 우화적인 이미지를 차용했다”고 했다.
그는 왜 ‘민중가요와 다른 척’하는 노래를 만들려 했을까? “노래에서 너무 명백한 이미지를 내보이면 상상력을 확장할 수 없으니까요. 더 많은 사람이 듣고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기존의 것과 다른, 기존의 것을 넘어서려는 창작자의 노고가 새삼 느껴졌다.
아닌 척해도 창작자가 발을 내딛고 있는 현실과 떨어질 수는 없는 법. “이전에 누가 저에게 ‘왜 가난, 죽음 같은 노래만 하냐’고 했어요. ‘다른 노래를 부르면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근데 가수는 내가 겪고, 내가 관심 있는 걸 노래로 만들잖아요. 가수의 숙명 같은 거라고 봐요.”
‘늑대가 나타났다’는 합창단과 함께 부른다. “비혼 퀴어 페미니스트 합창단 ‘아는 언니들’이 불러주고 있어요. ‘늑대가 나타났다’는 사회적 약자를 그린 노래잖아요. ‘아는 언니들’도 약자의 위치에 서 있는 거죠.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를 잘 표현해주고 있어요.”
차근차근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던 이 노래는 갑자기 ‘검열’이라는 늑대를 만나면서 큰 전환점을 맞는다. 지난 8월 초 부마민주항쟁 43돌 기념식 총연출을 맡은 강상우 감독이 기념식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제안한 게 발단이었다. 기념식은 10월16일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이랑은 흔쾌히 수락했다. 이 과정에서 기회비용도 발생했다. 올가을 코로나가 누그러지면서 많은 곳에서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이랑은 기념식 준비를 위해 여러 곳에서 온 출연 제안을 거절해야만 했다.
공연 3주 전인 9월24일 이랑은 ‘상록수’ 같은 밝고 희망찬 노래로 바꿔달라는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의 이메일을 받았다.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이랑은 “교체할 수 없습니다. 요청하신 곡을 부를 수 없습니다. 곡 변경과 관련해 이해할 만한 이유를 보내주세요”라는 답변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답을 해주지 않았다.
9월 중순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진행되던 공연 준비가 갑자기 틀어진 것은 기념식에 브이아이피(VIP·윤석열 대통령) 참석 여부가 논의되면서였다. 재단에 예산을 지원하는 행정안전부가 압력을 넣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늑대가 브이아이피를 상징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행안부에서 했다는 말도 들렸다. 결국 이랑과 연출자는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다.
“노래 자체를 오독한 것 같아요. 아니면 ‘도끼병’(다른 사람이 모두 자신을 찍는다고 착각하는 병) 같은 거죠.” ‘늑대가 나타났다’ 가사를 조금만 곱씹어보면 이랑의 말뜻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늑대는 폭군이나 거악을 의미하지 않는다. 빵(마땅한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약자를 매도하기 위해 그들에게 붙이는 낙인을 상징한다.
“그냥 ‘상록수’ 부르면 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건 단순히 어떤 노래를 부르냐 안 부르냐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제가 부를 노래는 연출자와 가수, 밴드 등 많은 사람이 참여해 기념식 콘셉트에 맞게 준비한 거였기 때문이죠.”
정부라는 권력에 맞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듯했다. “당연히 쉽지 않았죠. 창작자로서 작품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고 싶었지, 뉴스에 나오는 사람으로 오르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랑은 마땅한 것을 요구하고도 ‘늑대’처럼 매도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 세상에 알렸다.
이랑은 이 사태를 공개한 뒤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여러 곳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됐어요. ‘늑대가 나타났다’ 검열 의혹이 알려졌을 때 에스엔에스(SNS)에서 많은 응원과 지지가 쏟아졌어요. 그런데 월드컵이 시작하니 바로 사라졌죠. 사람들은 월드컵을 즐기고 있지만, 상황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죠. 외로운 거예요. 긴 싸움을 해야 하는데….”
그에게 용기를 준 건 사람들의 관심이다. “12월10~11일 단독 공연에서 ‘어쨌든 싸움을 시작했으니 관심 있게 지켜봐달라’고 했어요. 관객분들이 손뼉 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며 위로받았죠.”
노래가 검열당하면, 아티스트들의 ‘표현의 자유’ 역시 훼손될 수밖에 없다. “자존감에 상처가 난 건 확실하죠. 자유를 빼앗겼을 때의 답답함과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번 일로 새삼 알게 됐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전하고 싶은 가치관과 인생이 들어 있는데, 이를 말하지 못하게 했을 때 평가절하되는 느낌을 받잖아요.”
이랑은 말을 이었다. “검열과 ‘표현의 자유’는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많은 창작자가 공감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분이 같이 맞서 싸워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노래 가사 한 대목을 들었다. “‘늑대가 나타났다’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 말이 떠올라요.”
언론에 ‘늑대가 나타났다’ 검열 의혹 보도가 나간 다음날인 11월22일 행안부는 “검열은 없었다”는 내용의 입장문과 함께 이랑 등의 출연료 정산을 재단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지만, 그 뒤 재단과 행안부에선 어떤 연락도 없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이랑의 ‘빵을 먹었어’라는 노래를 들었다. 노래 속 ‘빵’의 다양한 의미를 상상해봤다. 갑자기 누군가가 ‘이 빵은 이런 뜻’이라고 강요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으스스한 겨울 추위가 몰려오는 듯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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