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의사가 없다…수도권 종합병원도 주말 응급진료 중단

김태훈 기자 2022. 12. 2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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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서 소아청소년과 줄줄이 축소
응급·중증질환 진료 체계 무너져
저출생 영향 전공의 지원자 급감

“소아과 의료진 부재로 소아환자 진료 불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이 25일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게시한 메시지다. 이 병원 응급실에선 주말을 맞은 지난 24일부터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의료인력이 없다며 진료를 중단했다고 공지했다. 서울의 다른 대학병원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날 대학병원 세 곳은 주말이나 휴일에는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소아 응급 진료를 할 수 없다고 공지했고, 한 곳은 소아 심정지·외상 진료만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전국에 8곳뿐인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운영 중인 경기 성남시의 한 종합병원은 소아 응급 진료는 가능하지만 입원은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인천 가천대 길병원이 이달부터 소청과 입원병동 운영을 중단한 데 이어 전국 병원들이 줄줄이 소청과 진료를 축소하고 있다. 저출생 추세가 불러온 소청과 기피 현상이 의료 공백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수도권 종합병원에서도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병원 현장에서는 소청과 전공의를 끌어오기 위해 소아 응급실 진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이 일반화됐을 정도다. 의료계에서는 소청과 의원들이 문을 닫는 데 이어 큰 병원 역시 도미노처럼 소아 진료를 중단하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계에선 특히 소아 응급질환과 중증질환 진료체계가 이미 상당 부분 무너져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나마 사정이 낫던 수도권에서도 가장 ‘약한 고리’에 있던 한두 곳의 병원이 버티지 못하고 진료를 중단하면서 그 병원으로 향하던 의료수요가 다른 병원으로 몰리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병원마저도 과중한 부담 때문에 의료인력이 떠나버리는 사태가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간 소청과만 진료비 감소…“전공의 기피 악화”

비급여 영역 거의 없어
‘수익 안 된다’ 채용 꺼려
당국, 수가 인상 등 대책에
전문가 “공공의료 확충을”

비수도권의 종합병원에서는 이미 소아암, 희귀질환 같은 중증 진료의 경우 전문성을 갖춘 교수가 있더라도 보조인력이 부족해 결국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전원하게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은 “생명을 다루는 노동집약적 필수 진료과에 대한 보상이나 지원 정책의 변화가 없어 전공의 기피 현상이 악화됐고, 고난도·중환자 진료와 응급 진료의 위축도 급속히 진행됐다”고 말했다.

서울과 수도권의 상급종합병원조차도 진료를 볼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은 그동안 지속된 저출생 현상으로 아동 인구가 줄어들면서 소청과를 택하는 전공의 수가 급감한 데서 기인했다.

길병원뿐 아니라 전국 병원의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매년 큰 폭으로 하락해 왔다. 2019년 80%에서 2021년 38%, 2022년 27.5%로 떨어진 지원율은 2023년도에는 15.9%까지 낮아졌다. ‘빅5 병원’으로 불리는 대형병원 중에서도 서울아산병원만 정원 8명을 모두 충원했을 뿐 나머지 병원들은 미충원 사태를 피하지 못했다. 수도권 주요 상급종합병원 중에도 지원자가 1명도 없는 곳이 적지 않은 등 전공의 지원자가 ‘0명’인 병원도 83.1%에 달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전공의 진로를 선택하는 의사들이 소청과를 기피하는 이유는 다른 진료과의 경제적 유인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소청과 전문의를 따고 의원을 운영하던 개원의들도 피부과 등 다른 진료과목을 내거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소청과를 포함한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내놓는 한편 길병원 등 일선 병원을 대상으로 진료 재개를 촉구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길병원은 내년 1월 중 입원을 재개할 수 있게 진료인력 확보에 나섰다는 안내문을 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소청과에 대한 구체적 지원방안은 현재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정부가 필수의료 지원대책으로 제시한 내용 가운데 수가를 올리겠다는 방향 외에는 세밀한 대책이 부족한 탓에 의료계에서는 관련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전공의들이 몸담고 있는 의료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은 비급여 영역이 거의 없어 수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청과 전문의 채용을 꺼리고 있다. 보건의료 시민단체에선 단순히 수가 인상 방안만 제시하는 정부의 대책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내용의 대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형병원들이 적정 수의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의무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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