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가 주류 금융시장 진입하기 전에 규제 통해 옥석 가려야”[끝 안 보이는 가상통화 빙하기]
업계 자율규제 빈틈 드러나
시장 감시·규제 수단 절실
가상통화 성격 명료화해야
관리감독 기관 정할 수 있어
크립토윈터는 ‘개선’ 기회
“가상통화가 주류 금융시장에 진입한 후 대형 사고가 벌어지면 그때의 파급효과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정책당국은 지금부터 대비책을 마련해 불순물을 걸러내고 시행착오를 바로잡아야 한다.”
2022년 가상통화 시장에는 여러 가지 악재가 닥쳤지만 주류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현재 가상통화가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상통화가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달 세계 3위 가상통화 거래소 FTX 파산 때 블랙록(Blackrock)·소프트뱅크(Softbank)·세콰이어캐피털(Sequoia Capital) 등 유수의 기관투자가들은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경향신문 본사에서 만난 김형중 한국핀테크학회장(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은 “시장에서 아직 가상통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할 때 다양한 실험을 통해 바람직한 매체로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부터 가상통화 연구를 시작한 김 교수는 블록체인 학계의 권위자로 꼽힌다. 그는 현재 가상통화 시장에 닥친 ‘크립토윈터(crypto winter)’를 시행착오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크립토윈터란 ‘가상통화’와 ‘겨울’의 합성어로 가상통화 거래가 얼어붙고 가치가 급락한 시장 상황을 의미한다.
김 교수는 테라·루나의 폭락, FTX의 파산, 위믹스(WEMIX)의 상장폐지 등 올해 가상통화 업계에서 발생한 사건·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느슨한 자율규제’라고 짚었다. 그는 “가상통화 분야가 생소해 입법을 섣불리 하지 못하는 만큼 업계의 자율규제가 교두보 역할을 해줬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내 4개 가상통화 거래소의 위믹스 상장폐지에 대해 김 교수는 “유통량에 차이가 있었던 사실이 자율규제의 빈틈을 여실히 보여줬다”며 “결국 시장에서 요구하는 자율규제의 벽이 너무 낮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위믹스는 지난 8일 국내 4개 원화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에서 상장이 폐지됐는데 업비트 등 가상통화 거래소에 제출한 유통량과 실제 유통량에서 상당한 차이가 발견된 것이 주요 이유였다.
가상통화 투자자들이 위험한 투자에 뛰어드는 것도 이처럼 가상통화 시장에 감시와 규제 수단이 미비한 데 일부 원인이 있다고 봤다. 김 교수는 “전통 금융과 달리 가상통화는 발행사에 대한 감시 제도 정비가 아직 덜 되어 있다”며 “그렇다보니 투자자들은 본질에 해당하는 블록체인 기술보다 가상통화를 사고파는 데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주식이나 채권 등과 달리 가상통화는 공시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가상통화 발행사의 기술력이나 재무 건전성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단순 수익률만을 고려한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테라·루나도 사업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몰락하기 직전까지 가격만큼은 탄탄했다 보니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크립토윈터’가 가상통화 업계가 적절한 규제를 마련하고 옥석 고르기를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정부가 가상통화의 성격을 규정하고 어느 기관이 가상통화 규제를 담당할지 정하는 것을 서둘러야 한다고 봤다. 그는 “가상통화는 상품·화폐·증권 등 복합적인 성질을 지녔다”며 “가상통화의 성격을 명료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가상통화의 성격이 명확지 않아 규제·감독 기관도 불분명해지고 일선의 가상통화 사업자들도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가상통화를 관할하는 기관이 금융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으로 분산돼 있다. 가상통화의 성격을 규정하고 투자자 보호 정책을 마련할 근거 조항을 담은 가상통화 업권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 교수는 “가상통화 투자자와 블록체인 벤처기업들은 더욱 싸늘해진 ‘크립토윈터’ 시기에 난관을 겪고 있다”면서도 “가상통화는 결국 미래 금융산업 전체를 흔들 중요한 매개체이므로 정책당국은 지금부터 대비책을 마련해 시장에서 불순물을 걸러내고 시행착오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정혁 기자 kjh05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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