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려되는 보증금 미반환 사태, 세입자 보호 대책 서두르라
아파트와 빌라 등 주택 2700채를 차명으로 보유한 건축업자와 공인중개사 일당이 수백억원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얼마 전 서울에서 발생한 ‘빌라왕’ 사태에 이어 또다시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한 것이다. 일당은 지난해 3월부터 올 7월까지 인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오피스텔 등 공동주택 327채의 전세보증금 266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자금사정이 악화돼 건물이 경매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고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처지인데도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공인중개사들은 위험한 부동산임을 알면서도 “집주인이 재력가이니 걱정 말라”며 세입자들을 안심시켰고 효력도 없는 이행보증각서를 써줬다고 한다. 부동산 거래지식과 임대인 정보가 부족한 세입자들이 꾐에 빠져 생때같은 전세보증금을 떼인 것이다.
국회가 전세사기 피해를 예방·구제하기 위해 지난 23일 국세징수법 등을 개정했다. 세입자가 임대차 계약체결 후 집주인 동의 없이 국세 체납 현황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임차한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갈 경우 집주인의 체납세액 납부에 앞서 세입자가 먼저 전세금을 받아낼 길이 열린 것이다. 정부도 전세사기 대응전담 조직을 출범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세입자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집값 하락으로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대규모로 벌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전셋값이 10% 하락할 경우 보증금 하락분을 감당 못할 집주인이 4만4000가구, 20%가 하락하면 7만6000가구에 이를 것으로 지난 22일 추계했다. 정부가 사안을 ‘전세사기’에 한정해 대응할 게 아니라 ‘보증금 미반환’ 문제로 넓게 보고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운다.
정부는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각 시·도에 임대차 행정 담당부서와 민원창구를 설치하는 등 광역자치단체가 세입자 보호에 적극 나서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세입자의 정보접근권 확대를 위해 공인중개사가 임대차계약 전 집주인에게 정보제공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임대등록 전면 의무화와 표준임대료 제도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임박한 대규모 ‘보증금 미반환’ 사태에 대비해 근본적인 세입자 보호 대책을 정부가 서둘러 내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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