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폭설에 빛난 강원도
한파가 전국을 뒤덮은 지난 주말, 호남·충청과 제주 산지 등 한반도 서남부에 눈폭탄이 쏟아졌다. 호남 지방에는 2005년 12월 이후 17년 만에 최대 폭설이 내렸다. 예년보다 따뜻한 서해 바다 위로 강력한 북극 한파가 밀려와 눈구름이 쉴 새 없이 만들어진 탓이다. 도내 전 지역에 대설 경보가 내려진 전북에 폭설이 집중됐고, 북서쪽에서 밀려온 눈구름이 노령산맥에 부딪치는 산자락에 자리한 순창·임실·정읍 일대에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순창군 쌍치면에는 최고 67.7㎝의 눈이 쌓였고 임실 57.2㎝, 정읍 45.7㎝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허벅지까지 차오른 눈에 주민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제설 작업을 무색하게 할 만큼 눈이 내렸다. 도시 지역의 교통은 마비됐고 농가 곳곳의 축사와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전북도가 지난 23일 강원도에 도움을 요청했다. 강원도는 즉각 제설차 7대와 인력 15명을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이들은 당일 강릉에서 500여㎞를 달려 전북에 도착한 뒤 전주시와 순창·임실군에 긴급 투입돼 제설 작업을 시작했다.
“제설 하면 강원도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강원도 팀은 숙련된 기술로 신속히 제설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순창군에 투입된 사륜구동 다목적 제설 차량 ‘유니목’은 산악 지형에 특화된 면모를 발휘하며 산간 지역 주요 도로 제설을 단시간에 완료했다. 이 맞춤형 특수차량은 눈이 많은 강원도와 제주도가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강원도 팀은 26일까지 전북의 제설 작업을 지원한 뒤 27일 복귀할 예정이다. 전북도는 지원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 강원도에 감사를 표했다.
강원도는 영동 지방의 폭설을 숱하게 겪는 과정에서 발빠른 대비책과 시스템을 갖췄다. 눈 온 지 한 시간도 안 돼 제설을 시작하고, 종일 눈이 오면 하루에 두세 번씩 제설차가 움직인다. 강원기상청과 연계해 시·군별 제설 착수 단계를 미리 예측한다. 인공지능 기반으로 적설 현황에 따라 제설 장비와 인력을 배치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란다. 이번 강원도 제설팀의 활약은 재난에 대비한 매뉴얼과 시스템의 힘을 보였다. 재난 앞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협력한 지자체 간 공조의 모범이 됐음은 물론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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