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지옥’ 덫에 걸린 ‘육아멘토’ 오은영[MK초점]
오은영 박사는 지난 19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이하 ‘결혼지옥’) 고스톱 부부 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방송에서는 재혼 부부가 양육 갈등으로 고민하는 사연이 소개됐는데 새아빠인 남편이 7살 의붓딸과 놀아준다며 싫다는 딸을 끌어안고 손가락으로 엉덩이를 찌르는 등 신체 접촉을 하는 장면 등은 ‘아동 성추행’ 논란으로 번졌다.
방송 후 MBC 시청자 게시판에는 사과와 폐지를 요구하는 글들이 쏟아졌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이 쇄도했다. 일부 시청자들은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경찰에 신고했고, 전북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는 22일 의부에 대한 입건 전 조사에 들어갔다
오은영 박사는 아동복지법 제 26조에 의거한 신고의무자인 만큼 이를 경찰에 신고할 의무가 있음에도 아동 성추행, 학대를 방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MBC가 “비판을 접하며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해당 아동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지 못하고 많은 분께 심려를 끼친 점, 다시 한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오은영 박사 역시 23일 장문의 공식입장을 내놓으며 방송 녹화 당시 상황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아 자신이 아동 성추행 방관자가 된 데 대한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오은영 박사는 “해당 방송분에 제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저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된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오래전부터 체벌을 절대 반대해 왔다. 아동학대, 폭력, 성추행과 성폭력에 대한 저의 생각은 지금까지 써 온 책들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대단히 단호하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며,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것들이 사람의 영혼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히는 줄 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출연자의 남편에게 어떠한 좋은 의도라도 ‘아이의 몸을 함부로 만지거나 아이의 의사에 반하는 문제 행동들을 하는 것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라고 강하게 지적했다”며 “촬영 시간 동안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아동 학대 교육의 연장선으로 ‘아이가 싫어하는 신체 접촉을 강압적으로 하지 말라’는 내용을 여러 번 강조하면서 교육적 지적과 설명들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오 박사는 “5시간이 넘는 녹화 분량을 80분에 맞춰 편집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이런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지 못하여 제가 마치 아동 성추행을 방임하는 사람처럼 비춰진 것에 대해 대단히 참담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금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아이”라며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MBC, 오은영 박사의 사과에도 공분은 가라앉지 않았고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특히 전여옥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오은영 박사에 대해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의사 맞나”며 방송 하차를 요구하기도 했다.
오은영 박사가 ‘결혼지옥’의 일원이자 프로그램의 메인 얼굴인 만큼, 분명 이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하지만 오은영 박사에게 책임을 묻기엔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 내에서의 ‘롤’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오은영 박사가 해명대로 그가 5시간에 걸친 녹화 시간 남편의 행동을 강하게 지적하고 아동 학대 교육을 행했다면, 그는 방송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했다. 그 역시 ‘결혼지옥’ 촬영분 편집권이 없는 일개 출연자이기 때문이다. 오은영 박사 역시 해당 녹화분이 어떻게 편집돼 방송될 지 알 수 없었을 터다. 일각의 ‘아동성추행범을 현장에서 고발했어야 했다’는 지적은 지나치게 감정적인 반응이다.
특히나 해당 방송은 육아 프로그램이 아닌 부부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결혼지옥’으로, 남편과 아내의 현재 모습이 나타나게 된 개인 성장사 혹은 둘 사이의 관계적인 면에 기본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프로그램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부부 사이의 문제는 과거 아내가 경찰에 신고를 했을 정도로 심각한 남편의 아동 학대 문제였고, 해당 방송을 보는 이 누구라도 아이에 대한 남편의 성추행 행위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었을 일이나 제작진은 그들의 사과문에서 인정한 것처럼 아동이 겪고 있는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단순히 남편의 문제 행동 사례 중 하나로 인식하는 치명적인 누를 범했다. 어떤 이유를 든다 해도 제작진의 ‘프로그램의 기획의도’ 설명은 공허할 수 밖에 없다.
프로그램명 자체가 오은영 박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하지만 어찌 됐건 ‘결혼지옥’의 책임은 전적으로 방향성을 잘못 설정한 제작진에 있다. 프로그램을 계속 끌고 갈 경우 제작진은 비슷한 사례의 재발 방지를 위해 온힘을 다하겠으나, 현재 쏟아지고 있는 프로그램 폐지 요구 역시 냉정히 받아들여야 할 일이이다.
오은영 박사는 그동안 ‘결혼지옥’을 통해 육아멘토를 넘어 부부멘토로도 한층 영역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지만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전문분야인 육아, 아동의 문제를 결과적으로 간과하고 넘어간 셈이 돼 버린 이상, 이번 논란은 ‘방송인’ 오은영으로서의 향후 행보에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오은영 박사가 질 책임은 마음의 부채감과 해당 가정의 문제 상황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전문가로서 재발 방지와 회복을 위한 도움과 조언일 터다. 그것이 ‘결혼지옥’에서든 혹은 그 외부에서가 되든 간 말이다.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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