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현의 몫] 함께 일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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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여 창작을 하는 동료들이 있다.
올해는 동료들과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서 영상작업 상영과 공연을 했고, 며칠 전에는 한해 동안 연구한 주제를 발표하는 행사를 열었다.
공연을 마치고 동료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런 말을 들려줬다.
동료 ㄴ은 연출이 한 이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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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현의 ‘몫’]
조기현 | 작가
함께 모여 창작을 하는 동료들이 있다. 컬렉티브를 꾸려서 2년 정도 작업을 이어왔다. 올해는 동료들과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서 영상작업 상영과 공연을 했고, 며칠 전에는 한해 동안 연구한 주제를 발표하는 행사를 열었다. 행사 때마다 늘 적지 않은 관객들이 함께해서 놀란다. 협업의 경험이 늘어나면서 갈등도 생기지만 그만큼 보람이 쌓이고, 함께 만든 결과에 호응해주는 이들이 있기에 그다음 협업을 상상하게 된다.
외국에서 사운드 공연을 준비하던 때였다. 공연하는 동료 ㄱ은 그날따라 연신 장비들을 매만지며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긴장을 조금 풀어주려는 마음으로 나는 이렇게 말했다. “혹시 장비가 고장 나면 내가 노래라도 부를 테니 걱정 마요!”
막상 공연을 시작하니 짜맞추기라도 한 듯 장비는 묵묵부답이었다.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봐도 소용없었다. 30명 정도 되는 관객이 앉아 있었고, 흔들리는 동료의 눈빛이 나를 보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고 노래를 불렀다. “지치고 싶을 때 내게 기대, 언제나 니 곁에 서 있을게” 지오디(GOD)의 ‘촛불 하나’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설픈 노래에도 관객들은 박수를 쳐줬고, 노래가 끝나갈 때쯤 장비가 켜지며 공연이 시작됐다. 기적 같은 타이밍!
공연을 마치고 동료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런 말을 들려줬다.
“협업이라는 게 대단한 게 아닌 거 같아요. 옛날에는 같이 작업하면 공동으로 책임과 권한을 지고, 효율적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협업이 거창한 게 아니라, 아주 작은 순간에서부터 발생하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줄자로 사물의 길이를 재려고 할 때, 줄자 끝을 손가락으로 잡아주는 협업. 그 정도만 돼도 일이 진행되는 건데, 내가 작은 협업들에 의존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잊고 살았어요.”
재밌을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는데, 그의 말에 나도 덩달아 협업의 감각이 깨어나는 듯했다. 나의 일상이 크고 작은 돌봄으로 이어져 왔다는 감각, 일할 때조차도 누군가 품을 내주고 배려해준 덕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감각. 하지만 이런 의존은 내가 낸 성과를 ‘내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손쉽게 무시되곤 한다. 만약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품으면 어떨까? 연극배우로 활동하는 동료 ㄴ이 얼마 전 극단을 나온 이유가 딱 그랬다.
극단은 수평적인 공동창작을 추구했다. 하지만 연출과 단원들 사이 갈등이 생기면 ‘공동’이라는 룰은 작동을 멈췄다. 연출은 자신이 지금까지 수행한 역할을 단원들 앞에서 열거한다. 단원들에도 자신과 똑같이 열거하게 시킨다.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누가 더 고생했는지 확인해보자는 것이다. 누군가 그런 단순 비교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문제제기라도 하면, 그건 곧 연출의 노고를 깎아내리는 것이 돼버린다.
“너희들이 뭐 했어? 내가 다 했어!”
동료 ㄴ은 연출이 한 이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그 말이 꼭 ‘너 아니어도 된다’는 말로 들리고, 자신의 노동이 무가치하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단원들의 자기 착취를 북돋지만 그렇다고 작품에 마땅한 크레디트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게 연출의 이름으로 공개될 뿐이다.
자신의 노고를 추켜세우며 다른 이들의 노고를 깎아내리는 건, 많은 이들이 협업에서 갈등이 생길 때 자주 겪는다. 갈등 상황에서 타인의 노고를 무시하는 요인 중 하나가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라면, 혼자서 해냈다는 생각은 방어기제가 된다. 어쩌면 상처를 감수하는 마음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감수해야만 의존을 온전히 감각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더불어 일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을 가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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