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칼럼] “미국은 4·3의 진실을 직시해야”
문정인 | 세종연구소 이사장
제주의 비극 4·3사건은 오랫동안 강요된 침묵의 대상이었다. 1947년 3·1절 행사 강제진압과 1948년 4월3일 소요사태를 거쳐 1954년 9월21일 종료될 때까지 제주 양민 3만여명이 경찰, 토벌대, 서북청년단에 의해 무참히 희생당했다. 그러나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기 4·3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낙인찍혔고 희생자 유족들은 연좌제라는 족쇄에 묶여 절망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야 비로소 사건이 공론화돼 김대중 정부 이래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이 진행됐고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화해도 이뤄졌다. 국회는 4·3특별법을 개정해 희생자 보상 문제도 마무리했다. 전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진실과 화해’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에게는 미결의 과제가 있다. 바로 미국의 역할과 책임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상응 조치를 요구하는 일이다. 지난 8일 미국 워싱턴의 초당적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는 수미 테리 아시아국장 주도로 ‘제주 4·3사건: 인권과 동맹’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개최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워싱턴 싱크탱크의 일반적 관행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기획이었다. 성숙해진 한-미 동맹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심포지엄에서는 4·3사건 피해자 유족 대표들과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들이 사건의 비극에 관해 생생히 증언했다. 오랜 기간 이 분야에 천착해온 <한겨레> 허호준 기자는 미국 정부 사료를 기초로, 당시 미군정이 한국군과 경찰에 대해 작전관할권을 행사하고 있었고 제주도민을 상대로 한 초토화 작전을 용인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른바 ‘미국 책임론'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 제시였다.
주목할 것은 미국 쪽 인사들의 반응이다. 4·3 문제를 미국에서 최초로 제기했던 존 메릴 전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국장은 4·3사건에 대한 미국의 관여가 객관적 사실이며 이에 대한 미국 쪽의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중도 성향의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도 “고통스럽지만 4·3의 진실을 직시할 때가 됐다”고 지적하면서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해나갈 것을 권했다.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이성윤 미국 터프츠대 교수 또한 ‘민주주의, 평화, 자유, 정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동맹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4·3의 비극에 대해 미 정부가 유감을 표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이사장은 4·3사건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명시적 사과를 요구하기보다는 제주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이를 계기로 미국 대통령이 4·3평화공원을 방문해 추모하는 형식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는 견해를 폈다. 더불어 미 의회를 상대로 적극적인 공공외교를 전개하고 미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교육 홍보와 미 언론을 통한 공론화 작업 등 점진적인 접근을 전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 일각의 우려와 달리, 4·3사건에 얽힌 미국의 책임 문제를 되짚고 미국 쪽의 사과를 통해 과거사를 극복하는 결단이 한-미 동맹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특히 미국 쪽 인사들이 정책 노선과 상관없이 광범위한 동의를 표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이런 견해가 미 정부의 공식적인 태도 변화로 당장 이어지기는 어렵겠지만, 성숙한 동맹의 책임 있는 면모를 보여주는 인식 전환의 토대는 마련된 셈이다.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4·3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는 한-미 동맹의 미래에도 깊은 함의를 담고 있다. 본래 동맹이란 현실주의의 처방이다. 공동의 적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협력체가 동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맹의 일차적 목적은 세력 균형을 통해 전략적 안정을 꾀하고, 동시에 공동의 거부 또는 응징 억지력을 행사해 실질적인 또는 잠재적인 적국의 군사 모험주의를 막는 데 있다. 전쟁 발발을 억제하고, 억제가 실패하더라도 승리를 담보하는 것이 동맹의 목적이다. 냉전 구도가 형성되던 시기, 제주도민들의 항쟁을 공산주의자 폭동으로 인식하고 비인도적 진압을 용인한 것 또한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언뜻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한-미 동맹은 이제 평화를 위한 동맹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안보를 위해 전쟁에 대비하는 동맹을 넘어 외교를 통해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예방하고 평화를 만드는 동맹, 그것이야말로 한·미의 가장 보편적인 공유 가치에 부합하는 동맹의 미래가 아닐까. 이는 4·3의 가슴 아픈 교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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