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내릴 때면 [손석우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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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 함지박을 줄인 표현이다.
찬 바람을 타고 내려오지만, 정작 함박눈이 내린 날은 조금 따뜻한 경향이 있다.
함박눈처럼 큰 눈이 내릴 때면 더 많은 열을 내놓기 때문에 기온이 조금 상승할 수 있다.
단지 습한 눈 때문이었을까? 함박눈이 내리기 전 한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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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우의 바람]
손석우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함박? 함지박을 줄인 표현이다. 플라스틱이 없던 시절, 선조들은 통나무를 파서 큰 바가지 같은 그릇을 만들고 함지박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크고 탐스러운 것들을 가리킬 때 형용사처럼 사용했다. 크고 환하게 웃는 함박웃음.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함박눈. 예쁜 우리말이다.
눈은 소리 없이 내린다. 창을 두드리는 한여름 장맛비와 달리 한겨울 눈은 한자리에 무게를 더하며 조용히 쌓인다. 아침 창을 열자 도심의 눈밭이 펼쳐졌다.
밖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아파트 한켠에 쌓인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별 모양 눈송이가 유독 많다. 아마도 영하 10~20도 추운 밤하늘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한웅큼 쥐어 봤다. 꽤 단단하게 잘 뭉쳐졌다. 눈사람을 만들기에 딱 좋은, 습기를 가득 머금은 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시간 학교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은 눈오리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찬 바람을 타고 내려오지만, 정작 함박눈이 내린 날은 조금 따뜻한 경향이 있다. 왜일까. 눈은 물방울 혹은 수증기가 얼면서 만들어진다. 이때 주변에 열을 내놓는다. 얼면서 열을 내놓는다? 추우니까 당연히 어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영하 20도에서도 물방울은 얼지 않을 수 있다. 물방울이 얼기 위해서는 물방울 자체가 충분히 차가워져야 하는데, 그렇게 차가워진 만큼 열을 주변에 내놓는다. 이 때문에 주변 공기는 조금 따뜻해진다. 함박눈처럼 큰 눈이 내릴 때면 더 많은 열을 내놓기 때문에 기온이 조금 상승할 수 있다.
대기 중 수증기도 중요하다. 눈구름과 수증기가 하늘을 담요처럼 덮어, 지상에서 하늘로 빠져나가는 열을 막기 때문이다. 흔히 온실효과라 불린다. 사실 수증기는 대표적인 온실기체다. 온실기체라면 보통 이산화탄소를 생각하지만 수증기는 이산화탄소보다도 훨씬 중요한 온실기체다. 차별점이라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만들어져서 자연적으로 사라진다는 점이다.
단지 습한 눈 때문이었을까? 함박눈이 내리기 전 한파가 있었다. 그리고 눈이 내린 지 이틀이 되지 않아 또다시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다. 주말엔 서울 최저 기온은 영하 14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파와 함박눈 그리고 다시 발생한 기록적인 한파. 고기압과 저기압 때문이었다.
강력한 한파는 대륙에서 만들어진 차고 건조한 공기가 한반도로 확장하면서 발생한다. 시베리아 고기압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공기 덩어리는 겨울철 눈 덮인 대륙에서 지표가 급격히 차가워지면서 만들어진다. 이 무거운 공기덩어리는 변덕이 몹시 심하다. 종종 한반도까지 확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강력한 한파가 시작된다.
함박눈이 온 날에는 시베리아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저기압이 발달했다. 서쪽에서 발달한 저기압은 남쪽에서 많은 수증기를 한반도로 가져왔고, 이 수증기는 북쪽의 찬 공기를 만나면서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남쪽에서 불어온 따뜻한 바람은 한파 중간 기온이 잠시 올라가도록 기여했다.
반복되는 눈과 한파가 반가운 곳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몇년간 취소되었던 겨울 축제들이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얼음낚시 축제를 찾은 적이 있다. 결과는 참담했다. 두시간동안 단 한마리도 잡지 못했다. 실망했을까? 행사장 밖에서 꼬치 어묵을 먹으며, 아이는 연신 재잘댔다. 실망한 기색 하나 없이 다음에는 꼭 송어를 잡겠다고 다짐했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이. 눈 구경하러, 얼음 구경하러 아이와 함께 강원도를 다녀오고 싶다.
이번 주말을 끝으로 한파는 당분간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언젠가 만날/ 우리 가장 행복할 그날/ 첫눈처럼 내가 가겠다/ 너에게 내가 가겠다”. 연말 함박눈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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