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美 시민권자란 이유로 北서 살아나와… 억류 한국인에 죄송” [심층기획]

김병관 2022. 12. 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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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억류자를 송환하라] (상) 돌아온 그들 곁엔 국가가 있었다
지금도 北 독방에 갇히는 악몽 꿔
北도 남한 사람은 내국인 취급해
일반 감옥에 수감… 6명 생사 걱정
美 정부, 자국민이면 100% 보호
가족들에 억류 상황 매주 브리핑
마중 나온 트럼프 “영웅”이라 말해
“장성택이 처형당하기 직전 법정에서 젊은 군인 2명에게 허리가 꺾인 채 끌려나가는 장면 보셨죠. 북한에서 저도 안대 쓰고 군인들에게 꺾여서 질질 끌려다녔거든요. 저는 트라우마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어제저녁에도 북한 군인들에게 끌려가는 꿈을 꿨어요.”

김학송(59) 선교사는 미국으로 돌아온 지 4년7개월이 지난 지금도 북한의 독방에 갇히는 악몽에 시달린다. 김씨는 2017년 5월6일 평양역에서 북한 당국에 느닷없이 체포됐다. 2014년부터 평양과학기술대에서 농업 기술을 연구한 그는 오랜만에 중국 단둥의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북한은 그에게 ‘최고 존엄 모독죄’ 등을 뒤집어씌워 독방에 가뒀다. 재판도, 반론권도 없는 불법 구금이었다. 김씨는 그곳에서 369일을 갇혀 지냈다.

김씨는 지난 2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북한의 감옥은 어둡고, 춥고, 벌레들이 욱실거리는 지옥”이라며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라고 계속 질문하게 됐다. 희망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북한의 조사관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아내와 딸을 잡아오겠다고 엄포를 놓을 땐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 통곡하며 기도했다”고도 했다. 

(왼쪽부터)임현수, 케네스 배, 김학송씨.
김씨는 그러면서도 “미국 시민권자라는 이유만으로 북한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게 부끄럽다”고 말한다. 북한에 억류돼 있는 김정욱(59)·김국기(68)·최춘길(63) 선교사와 고현철(59)씨 등 한국인 6명은 10년 가까이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어서다. 김씨는 “한국이 북한 주민을 자국민으로 보듯이 북한도 남한 사람을 내국인 취급한다”며 “(외국인 특별 대우를 받은) 저도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생했는데 한국인 여섯 분은 저보다 더 말 못 할 악조건일 것”이라고 걱정했다.

세계일보는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김씨를 비롯해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54·한국명 배준호) 선교사,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67) 목사와 인터뷰했다. 김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2일 화상 전화로, 임 목사와의 인터뷰는 지난 10일 서면으로, 배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11일 통화로 진행됐다.

◆기다림 자체가 혹독한 北 억류 기간

배씨는 2012년 11월3일 북한 함경북도 나선시의 한 호텔 주차장에서 체포됐다. 2011년부터 외국인 대상 북한 관광 사업을 한 그가 18번째로 방북한 때였다.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외장 하드를 실수로 북한에 가지고 들어간 게 화근이 됐다. 외장 하드에는 비쩍 마른 북한 아이들의 모습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영상과 북·중 접경 지역에서 펼친 선교 활동 자료 등이 저장돼 있었다. 북한은 이를 근거로 “공화국을 전복시키려 했다”며 배씨에게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그는 죄수 번호 ‘103번’으로 불리며 노동교화소에서 하루 10시간씩 중노동을 했다. 수감 3개월 만에 몸무게 50㎏이 빠지고 영양실조로 쓰러져 병원에 이송될 정도로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배씨는 ‘기다림 그 자체’가 북한에 억류된 기간 가장 힘들었던 점이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 당국자들이 저는 미국 시민권자라 협상을 통해 풀려날 것이라고만 했지 (교화소에) 가둬놓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며 “그래서 곧 돌아갈 것으로 예견했는데 소식은 오지 않고 시간만 흘러가니 막막함과 불안감, 절망감이 찾아왔다”고 했다. 배씨는 체포된 지 735일(2년5일)이 지난 2014년 11월9일에서야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미국·캐나다 정부의 끝없는 노력

김씨는 북·미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던 2018년 5월10일 북한에 억류돼 있던 다른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김상덕씨와 함께 석방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이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협상했고,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공항에 직접 나와 이들을 맞이했다. 새벽 2시42분(현지시간)이었다. 

김씨는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안부를 물으며 건넨 말을 잊을 수 없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신들은 미국의 영웅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얼마나 뜨거워지던지”라며 “사실 저는 미국 시민권자일 뿐이지 미국을 위해서 일한 게 하나도 없지 않나”라고 했다. 김씨는 “미국 정부는 백인이든, 아시아인이든 상관없이 자국민이면 100% 보호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는 배씨가 억류돼 있을 때 그의 가족을 극진히 돌보기도 했다. 국무부 담당자가 가족들에게 매주 45분∼1시간씩 통화 브리핑을 해준 것이다. 배씨는 “국무부가 가족들에게 매주 제 상황을 전해주고, 질문에도 답해줬다”며 “가족들에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배씨는 “아내가 중국에 있을 때는 대사관에서 영사가 찾아오기까지 했다”며 “아내가 너무 많은 분이 고생하는 것 같아 죄송하다고 하니 영사는 ‘미국은 설령 다른 나라에서 살인죄를 졌더라도 국민 한 사람을 구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1996년부터 북한에서 대북 지원 사업을 하다 2015년 1월 체포돼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67) 목사도 캐나다 정부의 계속된 노력 끝에 949일(2년7개월)만에 석방됐다. 캐나다 정부는 2017년 8월8일 대니얼 장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을 단장으로 하는 6명의 총리 특사단과 8명의 공군 요원을 북한에 보내 그를 본국으로 송환해왔다. 

◆국민적 관심 필요한 억류자 문제

이들은 한목소리로 북한에 장기간 억류돼 있는 한국인 6명의 신변을 걱정했다. 배씨는 “제가 붙잡힌 다음에 김정욱 선교사가 체포돼서 북한 간수에게 이 감옥에 오느냐고 물었는데 아니라고 했다”며 “남한 사람은 외국인이 아니고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외국인 특별 교화소가 아닌 일반 감옥에 수감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가족분들께 마음이 무겁다”며 “가족분들께 우리가 잊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남편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그 애통한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다”며 “그 마음을 국민들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 목사도 “(억류자 가족분들께) 늘 죄송한 마음”이라며 “전 국민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병관 기자 gwan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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