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국민기업” 강조하더니 대표이사 선임 절차는 ‘깜깜이’
“‘시간 부족’ 들어 무늬만 경선” 우려도
“이사회 무책임” “외부 압력” 해석 난무
케이티(KT) 이사회가 구현모 대표이사 연임에 ‘적격’ 결론을 내고도 경선 절차를 또 거치기로 해 대표 선임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경선 방식과 일정 등도 깜깜이로 진행해 뒷말을 낳고 있다. 케이티는 “국민 기업”이라고 하면서 대표이사 선임은 투명하게 하지 않고, 구 대표 연임을 결정해놓고 최대주주인 국민연금 반대 역풍을 줄이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는 지적 등이 케이티 안팎에서 제기된다.
25일 케이티 안팎과 케이티 차기 대표이사 공모 참여를 준비중인 쪽의 취재를 종합하면, 케이티 이사회는 ‘차기 대표이사 최종 후보는 경선을 통해 선정하기로 했다’고 밝힌 뒤 방식과 일정 등은 함구하고 있다. 케이티 한 임원은 <한겨레>에 “경선을 하겠다고 했으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를 밝혀야 하는데, 이런 저런 방안을 놓고 검토한다는 얘기만 들릴 뿐, 공식 발표가 없다. 언제부터인가는 ‘시간이 부족해 공모 절차 없이 헤드헌터를 통하거나 이사들이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며 “논란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케이티 다른 관계자는 “임원인사, 조직개편,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 등이 사실상 줄줄이 멈춰선 상태”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은 케이티 이사회가 지난 13일 구현모 대표이사의 연임 자격을 심사해 적격으로 판단하고도 “구 대표의 역제안”을 이유로 ‘복수 후보 재심사’ 방침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케이티 이사회 규정 등을 보면, 현직 대표이사가 연임에 도전할 경우 이사회는 그의 연임 자격을 심사해 ‘적격’으로 판단되면 단독 후보로 주주총회에 추천하고, ‘부적격’으로 판단되면 공모를 거쳐 다른 후보를 선정하는 절차를 진행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케이티 이사회가 현 대표이사의 연임에 적격 판단을 하고도 추가로 경선을 통해 최종 후보를 선정하겠다고 밝히면서 방식과 일정이 꼬였다. 노조 역시 공개적으로 구현모 대표 연임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케이티 내부적으로는 케이티 차기 대표이사 선임 절차 난맥상을 지적할 주체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법이거나 정관 위반은 아니다. 케이티는 정관상 ‘대표 선임과 관련해 필요한 사항은 이사회에서 정할 수 있다’는 문구를 근거로 “선임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케이티 안팎에선 케이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지분 10.38% 보유)이 구 대표가 임원 재직 시절 회삿돈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횡령 및 불법 정치자금 제공)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점을 들어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해, 그에 따른 역풍을 정면돌파하기 위한 승부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구 대표도 언론 인터뷰 등에서 “(경선 역제안은)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의 우려를 해소하기 선택”이라고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케이티 차기 대표이사 공모에 관심을 가진 쪽에선, 이사회가 “검토”를 이유로 일정을 지연하다가 “시간 부족”을 이유로 제대로 된 후보 공모 과정 없이 ‘무늬만 추가 후보 공모 및 경선’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른바 ‘짜고 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이다. 케이티 이사회가 최종 후보 선임 절차를 구 대표 임기 만료 3개월 전인 올해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연말이 다 되도록 경선 후보 선정 방식과 일정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는 점을 근거로 든다.
케이티 정관상 대표이사 임기 만료 3개월 전까지 최종 후보를 선정해야 하지만, 현직 대표가 심사 대상일 경우에는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게 돼 있어 이사회 임의로 심사 기한을 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케이티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박윤영 전 케이티 기업부문 사장, 임헌문 전 케이티 매스총괄 사장, 이경수 전 케이티네트웍스 엔지니어링 부문장, 홍원표 전 삼성에스디에스(SDS) 대표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지만, 케이티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는 설명만 반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외부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현 정부 일각에서 구 대표 선임 과정에 참여했던 참여정부 인사들이 여전히 케이티 이사진에 포진해 있고,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등 사법 리스크가 겹친 점을 들어 구 대표 연임을 못마땅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공개적으로 케이티처럼 총수 일가가 없는 기업들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원칙)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케이티 자회사 케이티텔레캅의 외주업체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 현장 조사를 벌인 것을 두고도 ‘구 대표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는 해석이 나온다. 케이티텔레캅은 참여정부 시절 남중수 사장 때 자산경영실장을 지낸 황욱정씨가 대주주이자 대표로 있는 케이디에프에스(KDFS)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준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디에프에스는 2016년 케이티텔레캅에서 45억원 상당의 물량을 받았는데, 2021년엔 494억원으로 급증했다.
익명을 요청한 케이티 관계자는 “황욱정 대표와 친분이 있는 남중수 전 사장은 현재 구현모 대표 경영고문이다. 케이티텔레캅이 물량을 배정하는 과정에서 본사 경영진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공정위 조사가 케이티 차기 대표이사 선임절차에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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