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언론 앞에 '풀뿌리'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른지역언론연대, '풀뿌리 지역언론 34년의 기록' 발간
지역언론인들의 연대를 통한 지역신문 발전, 지역신문에 대한 차별 등에 대한 논의 담겨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풀뿌리 지역언론' 지역언론이라는 말 앞에 '풀뿌리'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역언론 가운데에서도 자치와 분권을 지향하며 언론 윤리를 지켜나가려는 '건강한' 지역언론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지역언론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는 말은 지역, 지역언론의 위기 속에서도 건강한 지역언론을 지키고자하는 언론인들을 버티게 한 사명이다.
이러한 풀뿌리 지역언론들의 자발적·전국적 연대조직인 사단법인 바른지역언론연대가 1987년 민주화대투쟁 이후 부활한 지방자치 발전에 기여해온 지역신문의 역사를 담은 책 '풀뿌리 지역언론 34년의 기록'을 발간했다. 책은 풀뿌리 개별 지역신문의 역사 뿐만 아니라 대통령특별법으로 제정된 지역신문발전 지원사업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지역언론인들의 연대를 통한 지역신문 발전과 앞으로의 과제, 수도권 중심주의에 매몰돼 행해지는 지역신문에 대한 차별 등 한국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담았다.
지방자치의 암흑기는 곧 지역언론의 암흑기
지역신문은 한국사회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출발해 지방자치 역사와 함께 성장해왔다. 한국사회는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을 거치며 오랜 기간 언론통제와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가 유지됐다. 지방자치는 전면 중단됐고, 신문시장 또한 소위 '중앙지'라고 부르는 극소수의 전국일간지와 '1도1사 정책'에 따른 소수의 광역지역일간지만이 존재 가능한 여건이 오랫동안 조성돼왔다.
풀뿌리 지역신문은 전국 많은 지역에서의 민주화와 지방자치, 분권을 위한 투쟁과 노력이 축적돼 폭발한 1987년 민주화대투쟁 이후 탄생했다. 대투쟁 이후 지방자치와 분권 운동이 전국적으로 본격화됐고, 기초 시군구 단위를 발행권역으로 하는 당시로써 전혀 새로운 형태의 언론이 탄생했다. 1988년 12월 1일 창간된 최초의 풀뿌리 지역신문 '홍성신문'을 시작으로, 그 해에만 17개, 1996년까지 9년간 전국적으로 600여개의 지역주간신문이 창간됐다.
지역언론의 창간흐름은 '우리 지역의 언론을 우리가 만들고, 우리 힘으로 지방자치를 이뤄나가자'는 열망을 바탕으로 이어졌다. 지역사회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지역 간 정보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민의 참여와 실천을 이끌어내는 것이 지역언론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2003년에는 지역언론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 지원책 마련을 촉구하고 바른 지역 언론을 육성하기 위해 '지역언론개혁연대'가 탄생했고, 지역신문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정치적 요구에 따라 2004년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이 제정됐다. 6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법은 두 차례 시한연장을 했으며, 시한 만료를 앞둔 지난해 말 상시법으로의 전환이 이뤄졌다.
당시 지역언론개혁연대 상임대표였던 김영호 대표는 “법안을 통한 물질적 지원보다 더 큰 것은 언론다운 언론으로 '공적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지역을 살리고 왜곡된 여론시장을 살리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첫 선정 이후 2022년까지 18차례에 걸쳐 우선지원대상 신문사가 선정됐고, 개별 지역 신문사가 재정적 여건으로 하기 어려운 디지털 전환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지원함으로써 변화하는 언론환경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게끔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만이 건강한 지역언론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언론은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다. 경제·문화·교육·의료서비스 등의 수도권 집중화는 점점 더 심화되고, '언론'이라는 단어에서도 서울지역의 거대 언론만을 떠올리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역과 지역민들을 위해, 지역언론은 필요하다. 이에 바른지역언론연대 백서발간추진위원회는 지난 6월 10일 '지역언론의 미래를 논하다'를 주제로 특별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서는 향후 독자적 생존을 위한 다양한 방법 등을 논의했다.
장호순 순천향대학교 교수는 “지역이 직접 건강한 지역언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지역마다 있는 문화재단처럼 지역별 '지역언론재단'을 만들어 기본적인 인프라, 인력을 지원해주는 방법을 제시했다. 장 교수는 “언론은 전국에 있고 지역에도 있는데 서울에 있는 사람은 지역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미디어를 연구하는 사람이 지역 미디어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런 구조로는 형식적, 명분상 지원 이상으로 실질적으로 지역에 도움이 되는 지원을 기대할 수는 없다”며 “건강한 지역언론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은 타 지역에서 해주지 않는다. 중앙에서 해주지 않는다. 자기 지역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언론이 지역 사회의 공적 기능을 하고 거기에 필요한 재원의 일정 부분을 공적 기금으로 지역에서 지원해줘야 한다. 중앙에 의존하는 것은 지역신문발전지원법 하나로 이제 끝났다”며 “지역 언론재단을 만들어서 기본적 인프라, 인력을 지원해줘야 한다. 지역에서 하나의 재단, 공적 기구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지역 언론에 대한 관심들도 높아질 테고 개선될 수 있는 여지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에 김영호 우석대학교 명예교수(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장·지역언론개혁연대 상임대표)는 “지방자치 단체장이 선출직을 하다보니까, 언론의 공적 기능에 대한 관심보다는, 언론에 대하 관심사를 자기 홍보용 정도로 생각한다”며 “예를 들면 선거로 새로 출범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져있던 언론재단을 두고) 순전히 언론 홍보하려고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없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지역의 정치적 구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극복한다는 게 어렵다”고 우려되는 지점을 전했다.
지역신문간 협업 등 지역언론인들의 연대를 통해 지역신문이 발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김기수 평택시민신문 발행인은 “평택에는 5~6개의 지역신문이 있는데, 지역 신문 중에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신문이 세 곳이다. 이 신문들이 평택지역신문협의회로 활동하고 있다”며 “포럼도 하고 여론조사도 같이 하고 요새는 영상 사업을 '미디어평택'이라고 공동 투자해 그 밑에다 미디어 교육센터도 만들었다. 위탁사업도 할 수 있고, 지자체와도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숙 구로타임즈 대표이사는 “좋은 지역 언론을 단 한 지역에서라도 주민들이 경험하고, 그 경험들이 만약 전국적으로 쌓이기만 한다면 지역 언론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며 “인력은 별로 없고 콘텐츠는 살아나야 된다. 로컬 속에서도 다른 매체에서는 볼 수 없는 좀더 심층성 있고 분석력 있는 기사들을 써야한다. 신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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