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분배 외친 진보경제학 거목 잠들다

임성현 기자(einbahn@mk.co.kr) 2022. 12. 2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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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현학파' 이끈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약자 보호·균형 발전론 강조
서강학파와 경제학 양대산맥
40여 년간 후학 양성 매진
이정우·강철규·홍장표 등
진보정권 주요인사 키워내

한국의 1세대 경제학자로 진보경제학계를 대표하는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사진)가 25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평생 분배의 경제학, 약자의 경제학을 강조해 온 변 교수의 아호인 '학현(學峴)'을 딴 학현학파는 국내 진보 성향 경제학자들의 요람으로 명맥을 이어가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등 진보정권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다. 학현은 '평생 학문의 고개를 넘겠다'는 뜻이다.

1927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변 교수는 경성중학을 졸업하고 1945년 서울대 상대 전신인 경성경제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28세인 1955년부터 모교인 서울대 강단에 선 변 교수는 1992년까지 후학을 양성해왔다. 분배경제학을 가르치며 소득 재분배와 균형적인 경제 발전을 강조해왔다.

1960년 4·19혁명의 불씨를 되살린 것으로 평가받는 4·25 교수단 시위에 참여했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평가교수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유신정권 치하에서 제자들을 위해 법정 변론에 나서는 등 학생들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1980년 '서울의 봄' 때는 서울대교수협의회 회장으로 시국선언에 앞장서다 강단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1989년에는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공동대표를 지냈고,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제2건국위원회 대표공동위원장으로도 일했다.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활동해 온 변 교수가 해직 교수 시절인 1982년 설립한 '학현연구실(현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은 학현학파의 산실이 됐다.

학현학파는 성장 중심의 이론이 주류를 이끌어 온 경제학계에 소득 재분배라는 진보적 개념을 도입했다. 학현학파는 성장을 중시하는 '서강학파'와 대척점에 섰던 학파로 중도 성향의 '조순학파'와 함께 한국 경제학계의 3대 학파로 불린다.

특히 진보정권을 이어오며 학현학파 출신들이 중용돼 주목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문재인 정부 시절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복영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대표적인 학현학파로 꼽힌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것도 학현학파로 알려져 있다.

2019년 펴낸 '학현일지-변형윤 회고록'에서 변 교수는 평생 존경했던 앨프리드 마셜 교수의 저서 '경제학 원리'를 인용해 "경제학은 부의 축적에 관한 연구인 동시에 인간에 관한 연구의 일부"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학자들이 정부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라며 "학자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길은 정부 참여 말고도 많이 있다"고 후배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변기홍 씨와 딸 변기원·변기혜 씨가 있다. 변 교수의 분향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9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임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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