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주택구입 예산은 줄이고, 실세 지역구 곳간은 다 챙긴 與野

이종혁 기자(2jhyeok@mk.co.kr), 우제윤 기자(jywoo@mk.co.kr), 홍혜진 기자(honghong@mk.co.kr) 2022. 12. 2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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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638.7조 분석해보니
제21대 국회의원들이 24일 새벽 0시 55분께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3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가장 늦게 국회를 통과하며 최악의 예산국회라는 오명을 남긴 내년도 예산안은 당초 정부가 제출한 639조원에서 3000억원 감액된 638조7000억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고등·평생교육특별회계 신설을 비롯해 윤석열 정부 역점 사업들의 예산은 2조원 넘게 잘려나간 반면 거대 야당의 위력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내세운 사업들은 부활했다.

25일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확정된 내년도 본예산은 638조7000억원이다. 국회는 심사 과정에서 4조6000억원어치 사업을 감액하고 3조9000억원을 증액했다. 내년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9.8%인 1134조4000억원, 관리재정수지(국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빼고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수지) 적자 폭은 GDP의 2.6%인 58조2000억원으로 전망됐다. 국가채무가 11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다만 현 정부의 지출 구조조정 노력으로 관리수지 적자폭은 올해(110조8000억원)의 절반 가까이로 떨어졌다. 기획재정부는 3조9000억원의 증액분에는 취약계층 지원 사업 1조7000억원, 미래 대비와 안보·안전 투자에 7000억원, 지역경제 활성화에 1조5000억원이 각각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상은 윤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약속한 상당수 사업이 잘려나가고, 대신 야당 요구 예산들이 반영됐다. 당장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부속시설 신축 예산 497억원부터 전액 삭감됐다.

야당이 삭감한 가장 큰 덩어리는 고등교육특별회계로 들어갈 지방교육재정교부금 1조5000억원이다. 정부는 교육교부금에 배분되는 교육세수 3조원을 고등교육특별회계로 돌려 방만한 지방 교육청 대신 빈곤한 대학 재정을 지원하려 했다. 그러나 야당과 교육감들의 반대로 국회 심사에서 정부안 중 1조5000억원이 잘렸다. 서민의 주택구입과 전세자금을 위한 융자 지원 예산 11조570억원 가운데 6770억원도 삭감됐다. 이것만 합쳐도 2조1000억원이 넘는다. 민주당은 1조원 넘는 증액 요구를 관철했다. 전세 임대차를 위한 융자 사업 예산은 정부안 대비 6630억원 늘어난 4조1750억원으로 최종 통과됐다. 정부안에서 아예 '0'원이었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 사업 예산도 3525억원이 증액됐다. 이 사업은 이 대표의 지역화폐 철학을 상징한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금융지원 예산도 4173억원으로 500억원 증가됐다.

정부가 애초 '재정 투입형 일자리'라며 삭감했던 내년 공공형 노인일자리 예산도 국회 심사에서 922억원이 증액돼 올해 수준으로 원상복귀했다. 공공형 노인일자리는 사실상 현금복지 성격이지만 수혜 인원이 '취업자'로 잡혀 고용통계를 왜곡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와중에 어김없이 여야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은 내년 예산에 다수 포함돼 본회의를 통과했다. 나라살림연구소 조사를 보면 국회 심사에서 50억원 넘게 증액된 국토교통부 소관 사회간접자본(SOC)·개발 사업은 총 31개다. 이 사업들의 규모는 모두 합쳐 4조526억원에 이르며 심사 과정에서 2913억원이 늘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토부 소관 사업 중 증액된 것들은 대부분 개발 사업"이라며 "부여~익산, 도담~영천 전철, 춘천~속초 전철, 서해안선, 별내선 전철 등 사업은 늘려봐야 지출도 못할 '현수막용 증액' 사업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충남 공주부여청양)의 경우 세종시와 공주역을 잇는 광역 BRT(간선급행버스) 사업에 정부안 43억8000만원에 14억원이 더해졌다. 동아시아 역사도시 진흥원 건립 12억5000만원 등 예산은 새로 편성됐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충남 서산태안)은 '대산~당진 고속도로' 사업에서 정부안보다 80억원을 증액했고,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 조성' 사업 21억5000만원 등은 신규 예산이다.

'윤핵관'으로 불리는 여당 의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철규 의원(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은 동해신항 관련 예산을 정부안 360억9800만원에서 5억원 더 따냈고, 동해·묵호항 종합발전계획 수립 예산도 5억원을 증액했다. 윤한홍 의원(경남 창원 마산회원)은 서마산IC 교통용역사업에 3억원을 확보했다. 권성동 의원(강원 강릉)은 지역구 내 하수관로 정비에 총 25억원을 확보했고,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은 재해위험지구정비 사업 예산을 정부안보다 23억4500만원 늘렸다.

정우택 국회 부의장(충북 청주 상당)은 국립청주박물관 복합문화관 신규 사업을 6억원 확보했다. 민주당 실세도 마찬가지다. 위성곤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제주 서귀포)는 정부안에는 없던 서귀포시의 유기성 바이오가스화 사업 예산으로 62억원을 따냈다. 민주당 소속 윤관석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인천 남동을)은 "인천 남동의 일꾼으로서 506억원을 확보했다"며 서창~안산 간 고속도로 건설에 334억원을, 남동국가산업단지 재생사업에 66억9000만원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홍보하기도 했다.

[이종혁 기자 / 우제윤 기자 /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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