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협의에 정치 배분…예산 심의도 합의도 퇴행

반기웅 기자 2022. 12. 2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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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이 의결 통과된 뒤 본회의가 끝난 뒤 국회 본회의장 문이 닫히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도 예산안에서 사업규모가 각기 다른 도로 및 철도 개발 사업 예산이 일괄적으로 같은 규모 증액되고, 감액 규모를 부풀리기 위한 ‘기술적 감액’ 행태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는 예결위 공식 심의를 통해 감액된 규모조차 집계되지 않아 비공식 회의에서 대부분의 예산 증감액이 결정되는 ‘깜깜이’ 심의가 더 심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25일 나라살림연구소가 ‘2023년 예산안 국회 심의 현황·문제점’을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국회심의과정에서 증액된 사업 금액은 모두 13조5000억원이다. 이 중 교육부에서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 등으로 증액된 사업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총 4조1000억원이 증액됐다.

사업 수로보면 모두 658개 사업(교육부 사업 제외)에서 증액이 이뤄졌다. 가장 큰 폭으로 증액된 사업은 6630억원이 증액된 전세임대(융자)사업이다. 이어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 사업(3525억원), 소상공인지원을 위한 특별경영안정자금(3000억원), 포항재해피해 중소기업지원 융자금액(1089억원), 노인일자리 사업(922억원) 순이다. 증액 사업 중 폴리텍대학 지원 금액은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이관에 따른 통계적 증액에 해당해 실질 증액 사업에서 제외됐다. 초중등 교육에 쓰이는 교육재정교부금 삭감금액(1조5000억원)이 증액의 주요 재원으로 쓰였다.

눈에 띄는 부분은 도로·철도 및 지역개발 사업의 증액이 대거 이뤄졌다는 점이다. 함양-울산고속도로, 광주-강진고속도로, 문동-송정구지도 건설 등의 예산이 일괄적으로 50억원씩 증액됐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사업 성격과 규모가 다른 사업 예산이 모두 꼭 50억원씩 국회에서 증액된 것을 보면 사회적 요구에 따른 증액이 아니라 정치적 고려로 인한 증액임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여야는 전세임대(융자) 사업 6630억원 증액을 성과로 밝혔는데, 실제 이외에 다가구매입임대(융자), 행복주택(융자), 다가구매입임대 출자 등 다른 임대주택 프로그램 사업은 예산이 대폭 줄었다.

내년도 예산안의 감액 규모는 총 13조8000억원이다. 이 중 교육부 감액사업(9조2000억원)을 제외한 감액 규모는 4조5000억원으로 가장 큰 감액은(교육부 제외) 주택구입·전세자금사업(-6770억원)이다.

이어 예비비(-6000억원), 코로나19 예방백신(-5173억원), 신성장기반 자금(-3000억원) 등이다. 이 밖에 전기화물차 보급사업(-1750억원), 울산병원 신축 사업(-621억원), 대통령실 부속시설(-498억원) 청년일자리창출지원(-350억원) 등도 감액 리스트에 올랐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예비비 감액이나 코로나19 관련 사업 감액은 지출을 줄이려는 노력이라기 보다 실질 지출 금액을 새롭게 추산해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며 “감액 대부분이 감액 규모를 늘리기 위한 기술적 감액”이라고 했다.

부실한 국세수입 예측도 여전한 문제로 꼽힌다. 법인세율은 과세표준 구간 별로 각각 1%포인트씩 인하되는데, 법인세율 조정에도 불구하고 국세 수입 예산금액은 이전과 같았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법인세 세율 변화라는 큰 변화가 있었음에도 이를 국세수입 예산금액에 반영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안이한 세입추계”라며 “국세 세수추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보다 더 은밀하게 이뤄진 ‘비공개’ 예산안 심사·합의 과정도 도마에 올랐다. 그간 예산안은 극소수만 참여하는 비공개 협의체(소소위)에서 밀실 심사를 통해 합의하는 관행이 반복돼 왔는데, 올해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 평가다. 공식 예결위 회의 마지막에 여야 협의 내역을 집계한 뒤 남은 논의를 소소위로 넘겼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감액 사업 리스트조차 집계되지 않았다. 나라살림연구소는 “비공개 밀실 협의체는 아예 속기록 자체를 작성하지 않고 있다”며 “공개 수준과 범위는 협의하더라도 속기록 작성은 즉시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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