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 하나로 뻘흙과 맞선 철인들…경제의 심장 다시 뛰게 했다
포스코 침수 복구현장 르포
격류로 돌변한 냉천(冷川)
포항 시민들이 찬내로 부르는 냉천은 지난 100년간 그 존재감을 드러내 본 적이 없다. 포스코 왼편을 흐르는 형산강에 비해 그 존재 자체가 미미했다. 범람한 냉천은 건천(乾川)이라 불릴 만큼 수량이 적었다. 주변에 수변공원을 꾸미고 산책로와 체육시설을 설치하는 것에 우려는 없었다. 그 고정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건천은 물을 불렸고 급기야 격류로 돌변했다.
9월 6일 새벽부터 쏟아진 폭우는 시간당 101㎜, 4시간에 354㎜를 기록했다. 기상청에 의하면 200년 기록을 갈아치운 폭우였다. 포스코 서쪽 담장에서 약 10㎞ 떨어진 가뭄 방지 오어사지(池)가 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 물이 포스코 서쪽 3문과 담장에 도달하는 데에는 90분 정도 걸렸다. 그때 이백희 제철소장의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격류는 거칠 것이 없었다. 통나무, 냉장고, 가재도구가 포스코 담장에서 불과 50m 떨어진 냉천교 교각에 걸렸다. 교각이 댐으로 변했다. 격류가 새 길을 뚫었다. 왼쪽 이마트를 강타했고 포스코 담장을 무너뜨렸다. 620만t의 물이 인근 일대를 수장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 280만평 용지 중 110만평이 물에 잠겼다. 고압 15만볼트(V) 전압이 걸린 2열연공장 변압기가 그때 터졌고, 지하설비가 진흙물에 묻혔다. 순식간이었다.
신(神)의 한 수!
이 소장은 즉시 상황대책반을 꾸렸다. 그날부터 현재까지 김학동 부회장 주재로 아침 8시, 오후 5시 두 차례 대책 회의가 계속됐다. 서울 최고경영진과 직원들도 비상 대기했다. '이제 끝난 건가?' 임직원의 가슴속에 고인 두려운 질문이었다. 전날 오후 5시, 제철소 전 공장의 가동을 잠시 중단한다는 경영진 결단이 내려진 상태라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조업 중단은 일 10만t 생산 손실을 감수하는 비상 결단. 그래도 현장 임원진은 고로를 세웠고 전원을 내렸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그는 물바다가 된 현장을 보고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지 않았다면 전원이 걸린 설비가 폭발했을 것이다. 실제로 물바다가 된 도금공장 지하 용융아연도가니(Pot)가 6일 새벽에 폭발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파괴된 도가니 물속에 떠내려온 잉어와 자라가 헤엄치는 모습이 발견됐다. 물고기는 침수 전역에 산재했다. 전원이 켜진 상태였다면 감전으로 죽었을 것이었다. 전 공장에 설치된 전동 모터 4만4000개, 설비 수만 개 역시 합선으로 폐기 처분해야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하 작업반원들이 감전되거나 익사하는 상상은 몸서리가 쳐진다. 참사가 달리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공장 폐쇄를 뜻한다.
암흑천지 3일
제철소는 암흑이 됐다. 전화는 물론 휴대폰도 먹통이었다. 장비와 도구가 물에 잠겼다. 손전등과 촛불로 길을 밝혔다. 변전소의 물을 퍼내고, 부품을 교체하고, 흙탕물을 닦아낸 지 3일째, 암흑천지에 불이 들어왔다. 공장 간 통화가 재개되자 복구 작업이 시작됐다. 협력사 직원과 그룹사 직원들이 삽과 양동이를 들고 지하에 내려가 뻘흙을 퍼 날랐다. 제철소 압연 지역, 총 길이 40여 ㎞ 지하 통로를 두더지처럼 파고들었다. 끝도 없는 수작업이었지만 침수된 설비가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처참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고 했다. "저걸 다시 쓸 수 있을까?" 며칠 밤을 새운 직원들의 가슴속엔 그런 근심이 물결쳤다.
고로를 살려라!
제철소는 고로가 생명이다. 고로가 서면 제철소도 정지된다. 다행히 고로 지역은 물에 잠기지 않았지만 휴풍(고로 정지)이 문제였다. 휴풍은 길어야 7일을 넘기지 못한다. 7일을 넘기면 내부에서 연소되던 코크스와 철광석 용융물이 내화벽에 엉켜 결국 폐기해야 한다. 고로를 건조하는 데에만 5000억원, 기간은 2년 남짓. 그런데 용선(용융된 철광석)을 실어 나르는 잠수함 모양의 토페도레이들카(TLC) 속 용선이 시간 지체와 폭우로 이미 굳었다는 문제에 봉착했다. TLC 54대 중 10여 대는 무용지물이었다. 난상 토론 끝에 사(沙)처리를 시도하기로 했다. 용선을 모래 위에 쏟아 일단 간수하는 것. 그러나 용선량을 감당할 수 없었고 사철을 제강공장에서 그대로 쓸 수도 없었다.
한 번도 휴풍을 경험해보지 않은 대가는 컸다. 시간이 되면 고로는 용선을 쏟아낸다. TLC에 실리지 않은 용선이 지하 철로에 그냥 쏟아지면 그야말로 대형 사고다. "결국 고로를 죽여야 하는가?" 고로 책임자 김진보 부소장은 혼란스러웠다. 토페도레이들카를 구하는 것! 수소문해보니 다행히 광양제철소에 12대가, 현대제철에 5대가 있었다. 바지선으로 급히 운송해 제철소로 공급했다. 17대가 확보되자 한숨을 돌렸다고 했다. 휴풍 6.5일을 경과한 마지막 고로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필자가 고로반을 방문한 그 시각, 토페도레이들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선로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내 기계(My Machine)를 지켜라!
포스코 직원들의 기계 사랑은 유별나다. '나의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새벽에도 달려온다. 내 기계이고, 국민의 기계이고, 후손들의 기계다. 100일 동안 현장과 사무실, 집무실에서 새우잠을 잤다. 지하 10m, 수십 ㎞ 전선 뭉치, 수천 개 전기 설비와 변압기, 모터와 장비를 둘러보는 필자는 식은땀이 났다.
배수 작업의 공신은 경상북도 이철우 지사. 침수 이틀째에 현장을 방문한 이 지사가 소방청에 긴급 지원 요청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용량이 큰 방사포 2대가 도착했다. 방사포를 가동한 소방관은 불과 이틀 만에 주요 공간의 물을 빼냈다. '대한민국의 경제 기둥이 살아야지요!' 소방관이 떠나면서 남긴 말이었다. 복구 작업 100일간 연인원 130만여 명이 십시일반 힘을 보탰다. 휴일을 빼면 하루 1만5000명꼴. 김경석 노조위원장은 노조 대의원들과 함께 음료수, 커피, 빵과 타월을 들고 작업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임원, 직원, 노조가 한 몸이 됐다. 침수된 기계가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공장 110만평 침수, 모터 1만3500개 및 설비 수천 개 피해가 집계됐다.
특명, 140t 모터 살리기
재직 46년 차 손병락 전기명장은 2열연공장 대형 모터 앞에 섰다. 140t짜리를 포함하여 모두 13대. 압연공장의 주동력이었다. 주기 모터를 응시하던 손 명장이 말했다. "해보지요, 뭘". 평생 전기 모터를 다뤄온 손 명장의 눈에는 살아날 것 같아 보였다고 했다. 며칠간 주기 모터의 부품을 뜯고 만지고 살핀 결과는 기적이었다. 시운전을 해보니 이전과 동일한 굉음을 내며 돌았다고 했다. 눈물이 돌았다. 상공정과 후공정의 대형 모터 45대와 전기 설비, 제어 장비들이 그렇게 살아났다. 침수된 1만3500개 중 3%가 죽었는데 신속히 교체됐다. 임직원들은 10월 중순께 자신감이 희미하게 움텄다고 했다. 마치 저승사자에게 불려 갔다가 온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모터를 돌리기 위한 대형 패널(전기 제어판) 복구가 관건이었다. 그 패널은 모터 작동에 필요한 일본제 대형 드라이버로, 제작하는 데에만 6개월이 걸리는 첨단 장비였다. 매주 현장을 지휘했던 최정우 회장이 직접 나섰다. 다행히 일본 회사에 완성된 제품이 출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목적지는 인도 철강 회사(JSW)였다. 최 회장이 인도 경영진에 긴급 타전을 했다. 철강협회 부회장인 그는 고맙게도 최 회장의 절박한 요청을 들어줬다. 3일 후 패널을 실은 비행기가 착륙했고 급히 공수됐다. 드디어 2열연공장에도 불이 들어왔다.
고객사가 낭패하지 않게
생산시설 부분 복구와 동시에 포스코 경영진은 고객사 관리에 나섰다. 사실 공급 차질을 빚지 않는다는 각오는 침수 초기부터 결정한 전략 1호였다. 473개 고객사와 수십 개 납품사를 직접 방문해서 수급 계획을 알렸다. 우선 광양제철소를 풀가동하고, 인도·중국 소재 해외 공장을 가동해서 추가 생산에 들어갔다. 다음, 포스코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생산하지 못한 제품을 공급해서 고객사를 안심시켰다. 소재 납품이 막힌 업체에는 대출을 늘리거나 철강ESG펀드 1707억원을 활용할 기회를 부여했다.
불빛이 차례로 돌아왔다
상공정 불빛이 다시 들어온 것은 9월 중순, 후공정은 그로부터 차례로 가동이 재개됐다. 후공정에도 차츰 불이 켜져서 침수 100일째인 12월 15일에는 전 공정의 90%가 정상 가동에 진입했다. 18개 공장 중 15개가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나머지 공장도 부분 가동을 시작했다. STS 1냉연과 도금공장은 1월 말 완전 회복을 예정하고 있다. 제품 선적을 담당한 야적장에도 활기가 돌아왔다. 저 멀리 영일만 근해에 철광석을 실은 선박이 입항하고 있었다. 현장을 둘러보는 필자에게 직원들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이젠 자신이 있습니다!" 100일의 시련, 100일의 기적이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포스코는 이번 사태로 천문학적 액수의 손실을 봤다. 약 2조원으로 추산되는 손실, 그러나 2조원이 아깝지 않다는 말도 들렸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얻었다는 것. 위기 극복에 십시일반 한마음이 되는 포스코 유전자를 재확인했다. 침수 첫날, 속옷 이십여 벌을 챙겨 들고 오는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지하 15m에서 진흙을 퍼내던 젊은이는 입사 2개월 신입사원이었다. 포스코 DNA는 살아 있다! 협력정신을 재확인한 불행이었다.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분명 저 자발적 헌신 유전자가 미래 개척의 동력임을 누구나 실감했다고 했다. 복구는 매뉴얼이 없다. 직원들이 배양한 경험지(知)가 매뉴얼이었다. 죽어가는 기계 앞에 직원들은 두려운 선택을 했다. 죽거나, 살리거나. 경험지, 암묵지가 기계들에 생기를 찾아줬다. 어느 현장이든 MZ세대를 다시 봤다는 말에도 강한 동감을 표시했다. 분해는 기성세대, 수리에 필요한 새로운 착안은 젊은 세대의 몫이었다고 했다. 손발이 맞았다. 평소의 소원감을 떨치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에 서로 감동했다는 것이다.
상호 신뢰가 물난리로 생겨났다. 아니 원래 잠복하고 있던 그것이 비상사태를 계기로 발현된 것인지 모른다. 상호 신뢰, 자발적 헌신, 세대 교감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직원뿐 아니라 고객사, 공급사, 협력사 등 이해관계자 모두가 하나로 뭉쳤다. 해병대의 출현은 사기를 북돋았다. 수륙양용차가 물길을 내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군부대, 시민 등 지역 사회의 격려와 응원은 엄청난 힘이 됐다. 기업시민 포스코의 가치를 빛낸 원군들이다. 포스코가 앞장서 그 시민적 가치를 무한 생산해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데에 일조하라는 시민적 명령이다.
100일의 기적
시뻘건 쇳물이 롤러 위를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육중한 압착기가 굉음을 내며 슬래브를 눌렀다. 증기가 뿜어져 올랐다. 기계는 모른다. 100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포기와 체념과 희망 사이를 어떻게 오갔는지를. 한국 제조업이 바닥에 추락했다가 다시 생환했다는 사실을. 냉연 공장에는 얇은 강판이 수직 공정을 돌았다. 자동차 공장과 전기 제품 공장에 납품되는 강판이었다. 고로가 서고, 제강 공정과 압연 공정이 폐기됐다면 어떤 사태가 발생했을까.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지는 상상이었다. 100일의 시련은 100일의 기적으로 끝났다. 힌남노 태풍보다 강했던 철강인들의 땀과 열정이 시련을 이겼다. 포스코는 이제 향후 100년 내구력을 갖출 준비에 돌입했다.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
※송호근 교수의 현장르포 전문은 인터넷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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