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땐 中企 '금융 주치의'… 글로벌 기관들 협력 제안해와
취임후 3년간 비상경영체제로 소상공인·中企에 189조 대출
자산 400조·당기순익 2조원 … 글로벌 100대은행 이름 올려
2020년, 취임하자마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자금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이 IBK기업은행으로 몰려들었다. 평소보다 몇 배 늘어난 업무량에 당황한 것도 잠시, 기업은행은 역대 최고 수준의 대출을 신속 정확하게 공급하며 대한민국 중소기업을 지켰다. 지난 3년간 기업은행이 중소기업에 대출해준 금액은 189조원에 달한다. 이 중 10조원은 39만명의 소상공인에게 저금리로 공급됐다.
역대급 위기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달 이상 소요되던 대출심사 기간을 10분의 1로 줄인 덕분이었다. 직원들이 해법과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면,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관계부처와 직접 협의해 물꼬를 텄다. 윤 행장은 "코로나19로 상황은 엄중했지만 훌륭한 직원들과 즐겁게 일했다. 비상상황이다 보니 좌고우면하지 않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공을 돌렸다. 기업은행은 윤 행장 취임 직후부터 매주 월요일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어 해결책을 논의하고, 목요일에는 현안을 점검하면서 대응해왔다. 특명은 '하루라도 빨리 대출을 진행하라' '비가 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였다.
윤 행장은 재임 내내 정책금융기관 역할론을 강조했다. 단순히 신청받은 자금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 안목으로 대한민국 대표 산업을 키운다는 차원에서 다양한 대책을 내놨다. '금융주치의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기업은행이 기업의 경영·재무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진단한 뒤, 건강검진 결과처럼 차트 형식으로 만들어서 어디가 취약한지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금융권 최초로 실리콘밸리식 벤처대출을 도입하고 기업용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금융 서비스 혁신에도 힘썼다.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해 혁신 품목을 생산하는 기업을 선별해 집중 지원하는 '혁신산업 지원체계'를 구축한 것도 눈에 띈다. 정보통신기술(ICT), 의료·제약·바이오, 지식 기반 서비스 등 신성장과 혁신 분야에 모험자본 공급을 두 배 이상 늘린 것도 윤 행장 의지였다. 환경·책임·투명경영(ESG)과 녹색금융에 국내 은행권에서 최고 수준인 수조 원의 자금을 공급했고 개인예금과 가계대출, 카드 사업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을 출시하며 전략적으로 소매금융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도 중소기업 근로자의 자산 증대와 생활 안정 지원 등 기업은행만의 차별성을 놓치지 않았다. 최근에는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8000억원 규모 금리 감면 프로그램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국책은행 소임에 집중하면서도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당기순이익 '2조클럽'에 이름을 올렸고, 자산 400조원을 달성하면서 글로벌 100대 은행으로 도약했다. '바른 경영'을 강조하며 성과와 역량에 기반을 둔 인사스코어링제도를 구축했고, 불필요한 보고와 의전 문화를 없앴다. 이 회사의 여성 관리자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3%보다 높은 35%다. 장애인 고용률도 윤 행장 취임 1년 만에 목표치를 넘어섰다.
경제정책 실무통인 윤 행장이 폭넓은 인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공익과 실적, 조직문화 개선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선봉에 섰던 경험과 이코노미스트로서 전문성도 그의 드라이브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윤 행장은 "코로나19 때문에 기업은행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시킬 잠재력을 충분히 펼치지 못해 아쉽다. 사모펀드 문제가 마무리되지 못했고, 성숙한 노사 관계 정착도 추가 노력이 필요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특히 기업은행의 잠재력에 비해 글로벌 위상이 낮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윤 행장은 OECD 지속가능 중기금융플랫폼 운영위원회 공동의장을 맡아 녹색전환 금융지원 사례를 공유하고 협력을 강화했다. 사우디아라비아 SME뱅크 출범 지원, 미얀마 현지법인 개설, 동유럽 전초기지로 폴란드사무소 설치, 베트남 현지법인화 추진 등이 대표적 성과다. 윤 행장은 "최근 국제중소기업금융포럼(SMEFF),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같은 국제기구와 금융기관에서 협력을 제안해오고 있는데 이런 모멘텀을 잘 이어가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암울한 경제 전망이 줄줄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윤 행장도 "어려운 경제 상황이 이어질 경우 수면 아래에 있던 기업 부실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했다. 그는 "경제가 어렵고 불확실할수록 기본에 충실한 정책 대응이 중요하다"면서 "노동·재정·교육 등 핵심 개혁으로 경제 체질을 강화하고 불황으로 힘든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기 연장과 이자 유예 지원 기업 관련 연착륙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부실우려 기업을 선별하고 신용위험을 점검하면서 충당금도 선제적으로 충분히 적립하고 있다. 구조 개선 지원이 필요한 기업들에는 맞춤 지원을 하는 등 안전판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신찬옥 기자·사진/이충우 기자]
▷윤 행장은… 1960년생으로 인창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 UCLA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1983년 행정고시(27회)에 합격하며 공직에 입문했고,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에서 재무와 금융정책 실무를 두루 맡았다. 1997~2000년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2001년부터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과장, 재정정책과장, 재정경제부 산업경제과장과 종합정책과장을 역임했다. IMF선임자문관을 지낸 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일했다. 2012년 IMF 상임이사, 2015~2018년 OECD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를 지낸 국제금융통이다. 2018~2019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을 거쳐 2020년 1월부터 제 26대 기업은행장으로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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