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공포에 현금방파제 '올인'···'트리플A' 기업도 2배 증액 액셀
KT, 내달 회사채 3000억↑ 검토
포스코·LG화학·이마트 등도
줄줄이 수천억 규모 발행 계획
채안펀드·국민연금 등도 활용
'유동성 공급' 최대한 나서지만
저신용 기업은 자금조달 양극화
연초부터 회사채 발행 시장에 큰 장이 선 것은 대기업들마저 내년 경기 침체 공포에 자금시장 위축을 우려하며 현금 방파제 쌓기에 나선 때문이다. 고금리·고물가 기조 속에 수출과 내수 부진까지 겹칠 가능성에 기업들은 잔뜩 웅크리며 비상경영 태세다. LG·롯데 등 5대 그룹은 물론 은행·증권사 등이 대거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비용 줄이기에 나선 한편에서는 비유동자산을 처분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늘리고 있지만 충분치 않다고 보는 것이다.
회사채 등 채권시장은 연중 1월이 가장 투자수요가 풍부해 기업들은 이를 최대한 활용해 조기에 현금 곳간을 채워두려고 하고 있다. 정부가 앞장선 채권시장안정펀드와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도 회사채 매입 등에 적극 나설 계획이어서 금리 등 자금 조달 비용을 조금이라도 낮출 기회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자본시장 경색이 여전하고 은행 대출도 어려운데 시장 유동성이 대기업에 집중되는 양극화가 심화해 중소·중견기업의 자금난은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25일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내년 1월 가장 먼저 회사채 발행을 구체화하고 나선 곳은 신용등급이 AAA로 국내에서 가장 우량한 KT(030200)다. 올 10월 터진 레고랜드발 자금시장 경색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아 회사채 발행도 여전히 대기업 중심으로 가능하지만 상징성은 적지 않다. KT는 다음 달 4일 기관 수요예측을 거쳐 같은 달 12일 1500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인데 투자수요가 넉넉할 경우 3000억 원까지 증액해 현금을 조달할 방침이다.
KT와 같은 시기에 이마트(139480)(2000억 원)와 연합자산관리(700억 원)가 회사채 발행에 나서고 포스코(3500억 원)와 LG유플러스(032640)(1500억 원), CJ ENM(035760)(1700억 원), 롯데제과(1500억 원), 신세계(1000억 원), LG화학(4000억 원) 등이 내년 1월 중 회사채 발행의 바통을 이어받게 된다. 시장의 한 관계자는 “신용등급 국내 최고인 KT가 새해 제일 먼저 회사채를 발행해 현금을 확보할 만큼 내년 경영 환경은 만만치 않다”며 “포스코·LG화학·이마트 등도 수요만 있으면 발행 계획보다 두 배가량 늘려 현금을 확보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호텔롯데(2000억 원) △롯데렌탈(3000억 원) △롯데하이마트(1000억 원) △SK(034730)브로드밴드(1000억 원) △대상(001680)(1000억 원) △SK(3000억 원) △GS에너지(1000억 원) △롯데칠성음료(1000억 원) 등도 내년 1~2월 중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 일정을 잡을 것으로 알려졌다. 또 GS파워와 CJ대한통운·SK에너지·한화솔루션·SK이노베이션·한화토탈·SK지오센트릭·호텔신라 등 역시 내년 1분기 내 채권을 발행할 예정인데 시기를 앞당기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그간 대기업들은 코로나19 쇼크에 따른 초저금리를 활용해 회사채 신규 발행을 늘려 회사채 순발행 규모가 2020년 19조 2000억 원, 2021년 16조 7000억 원 등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 시중금리가 급등하면서 회사채 투자수요가 급감하자 시장은 2016년(1조 6000억 원 순상환) 이후 6년 만에 7조 8000억 원 순상환으로 전환됐다. 회사채를 신규 발행한 기업보다 보유 현금으로 회사채를 갚는 곳들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한 대기업 자금 담당 임원은 “만기 회사채 물량이나 은행 대출 등은 대개 차환 발행하거나 만기를 연장해 계속 쓰지만 올해 금리가 급등해 그간 쌓아온 현금을 이용해 상당 부분 갚았다”고 말했다.
올 4분기 찾아온 자금시장 경색에 내년 경기 침체 공포가 커지자 대기업들은 연중 시장 유동성이 가장 풍부한 1월을 노리고 대거 회사채 발행을 준비하는 것이다.
마침 채권시장도 투자수요를 빨아들이던 한전채 부담이 줄어들면서 우량 회사채의 경우 12월에도 발행에 성공하는 등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의 회사채 투자 심리를 보여주는 국고채와 회사채(AA-등급 3년물 기준)간 신용 스프레드는 지난달 말 178bp(1bp=0.01%포인트)를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22일 기준 158bp로 축소됐다.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을 지원하는 채안펀드와 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도 적극적으로 회사채 매입을 이어가고 있다. 채안펀드는 현재 △AA-등급 이상 △3년 만기 이하 회사채 수요예측에 대부분 참여해 인수 주문을 넣고 있다. 그간 높은 가산금리를 요구하며 회사채 투자에 소극적이던 국민연금도 이달 발행한 SK와 SK텔레콤의 회사채 수요예측에 참여해 발행금리를 낮추는 데 일조했다.
다만 자금시장의 훈풍은 AA등급 이상 우량채에 한정돼 신용도가 낮은 중견기업의 자금 조달은 여전히 어렵고 이는 중소기업의 대출 등에 금리 상승으로 작용해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특히 프로젝트파이낸싱 자산유동화증권(PF ABCP)의 만기가 다가오는 건설사부터 증권사와 캐피탈사, 중소형 석유화학사 등에는 투자 기피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대형 증권사의 자금 조달 담당 임원은 “실적 악화에 따른 기업들의 신용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A등급 이하 저신용 회사채 수요는 여전히 씨가 말랐다”며 “업황과 재무 안정성, 계열사 지원 가능성 등에 따라 연초 필요 자금 조달에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민경 기자 mk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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