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진 시야, 솔직해진 글투···새 일상이 된 ‘위기’를 그리는 방법[2023 경향 신춘문예]

김종목 기자 2022. 12. 2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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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생 응모자가 압도적 다수
팬데믹 등은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소수자·동물 등 주제로 다룬 평론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2023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위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인숙, 강동호, 강지희, 정지아, 김미월 심사위원. 김창길기자

2023 경향신문 신춘문예는 주제, 소재의 경향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줬다. 기후위기와 동물 등 ‘비인간’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가상공간의 이미지를 소재로 쓴 작품도 늘었다. 코로나19에 따른 온라인 영상 네트워크 확대와 일상화로 이뤄진 변화로 보인다고 심사위원단은 전했다. 환상성 등 SF적 요소를 다룬 작품들은 올해도 많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우울의 근원이나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으로 다룬 것도 변화의 한 부분이다. 이태원 참사 영향을 받은 듯 ‘애도’에 관한 응모작도 여러 편 나왔다

시와 소설의 경우 노동, 청년, 퀴어 문제를 다룬 작품은 예년보다 줄었다. 문학평론은 젠더, 퀴어 주제·소재 선호의 경향을 이어갔다.

올해 응모 편수는 소설 511편(500명, 중복 포함), 시 2700편(540명)이다. 지난해(소설 565편, 시 3050편)보다 줄었다. 평론은 32편(31명, 중복 포함)으로 지난해보다 10편 늘었다. 응모자는 1990년대생이 압도적으로 많다. 10대와 80대 지원자들도 나왔다. 미국과 호주, 독일에서도 원고를 보냈다. KCI 문헌 유사도 검사와 표절 검사 결과 확인서를 보낸 이도 있다.

올해도 시·소설·문학평론 전 부문을 예·본심 통합으로 진행했다. 인적 사항 등 개인정보를 가리고, 작품 제목만 적힌 원고를 심사위원단에 전달했다. 김미월·김인숙·정지아(이하 가나다순) 소설가, 강동호·강지희 평론가가 소설 부문 심사를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응모작을 나눠 읽고 각각 1~2편씩 추천했다. 총 7편의 후보작을 두고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심사했다.

지난 9일 열린 시 부문 심사엔 김행숙·송경동·황인숙 시인과 이경수 평론가가 참석했다. 양윤의·차미령 평론가가 지난 14일 문학평론 응모작을 심사했다.

우리 사는 세계를 지구 단위로 생각하는 공통 감각

시 응모작의 한 경향은 기후위기 등 지구 문제를 디스토피아로 그려내는 것이다. 김행숙 시인은 “거주 불가능한 지구라는 공간에 대한 위기의식이 많이 작동한 것 같다. SF적인 시대를 두고 SF적 문법으로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지구 단위로 생각하는 공통 감각 같은 게 생긴 듯하다”고 했다. 김 시인은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가상공간이 많이 등장했다. 줌이나 스크린으로 연결되는 비대면 시대를 산 영향을 받은 듯하다. 가상공간이나 스크린이 우리 시대를 얘기해주는 키워드 같다”고 말했다.

송경동 시인은 “팬데믹으로 소통 안 되는 시대를 3년 경험했다. 삶 감각의 변화나 답답함 같은 게 반영돼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 시인은 “불안정 노동 시대인데, (자본뿐 아니라) 노동에서도 배제된 삶을 반영한 작품이 많이 없어 아쉬웠다”고 했다. 황인숙 시인도 “청년의 고난과 고통을 다룬 시가 없어진 듯하다”고 말했다.

이경수 평론가는 “ ‘이태원 참사’에 관한 시는 많지는 않았는데, 애도의 느낌을 드러내는 시도 몇 편 있었다”고 전했다. 김 시인은 “(몇몇 원고는) ‘애도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듯했다. 이태원 참사를 두고 정부가 ‘애도만 하라’고 지정하는 것에 대한 반감 같은 게 작용한 듯하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2023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김행숙, 황인숙, 이경수, 송경동 심사위원(왼쪽부터)이 심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날것의 대사 쓰는 웹문학 영향

소설은 환상성 같은 SF적 요소를 도입한 소설이 늘었다. 강지희 평론가는 “환상성과 매체를 연결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동호 평론가는 “SF 계열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다만 본심에 많이 올라오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이 우울함이나 공포의 분위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실의 풍경으로 나타나는 것도 많이 봤다”고 했다.

소설 기법 변화도 뚜렷했다. 정지아 소설가는 “장르적 요소를 도입한 소설이 많아졌다.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도 무너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순수문학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직접적 설명이므로 웬만하면 대사를 쓰지 말라’고 배웠는데, 응모작들은 대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사만으로 이루어지는 소설도 있다”고 했다. “뭔가를 감추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다 까고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 평론가는 “장르문학도 순수문학도 아닌 웹소설문학이 오히려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굉장히 날것의 대사를 쓰는 방식이 (전반적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미월 평론가는 “조금 신기했던 게 최근 몇 년 성소수자가 주요 인물이나 소재로 부각되는 작품이 많았는데, 한때 유행이었나 싶을 정도로 없어졌다”고 했다.

스펙트럼 넓어지고, 안목도 깊어져

문학평론 분야는 최근 수년의 경향이 이어졌다. 여성, 성소수자, 동물을 주제로 하거나 소재로 쓴 글들이 두드러졌다. 차미령 평론가는 “주제를 더 구체적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동물 글에선 비거니즘에 관한 얘기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여성 글에서 여성의 역사 쓰기를 들여다보며 더 심화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양윤의 평론가도 글의 깊이와 함께 안목의 확장 등을 평가했다. 그는 “비인간 네트워크, 젠더나 퀴어, 인류세 논의 등으로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했다. 이어 “최근 젠더 이슈 등은 문단 중심 이슈를 따라가거나 동시대적 감각만 두드러지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이번 여러 응모작은 문학적 맥락, 배경을 살피면서 시의적인 문제를 놓치지 않았다. 안목과 시야를 보여준 작품들을 본 것은 흥미로운 발견”이라고 했다.

차 평론가는 “허수 지원작들을 빼고 논의 대상이 된 작품들은 수준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양 평론가도 “밀도 있게 쓴 작품들이 당선권에 많았다는 게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당선작은 심사평과 함께 내년 1월2·3일자 신문에 게재된다.

14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양윤의·차미령 문학평론가(왼쪽부터)가 2023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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