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아들 두고 재혼 80대 친모... 54년 만에 나타나 사망 보험금 수령
선원법 시행령 등에 따라 친모가 상속 우선순위
유족 "세 자녀 버리고 재혼… 할머니·고모가 키워"
'구하라법' 국회 통과 못해 보험금 수령 못 막아
남편이 죽자 3세 아들 등 자녀 3명을 두고 재혼한 뒤 54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80대 친모가 2억 원이 넘는 아들 사망 보험금을 수령하게 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법원이 친모 손을 들어주자, 다른 자녀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부양 의무를 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하는 이른바 '구하라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제도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지난해 1월 침몰 대양호 선원 유족 갈등
부산지법은 지난 13일 "아들 사망 보험금 등 2억3,776만 원을 지급해달라"는 80대 A씨의 청구를 인용했다.
A씨가 54년간 떨어져 있던 아들 보험금을 수령받게 된 사연은 이렇다. 지난해 1월 23일 경남 거제 인근 바다에서 A씨의 아들(사고 당시 57세) B씨가 승선했던 127대양호가 기상악화로 침몰했다. 선원 10명 중 7명은 구조됐고 1명은 숨진 채 발견됐지만, B씨 등 2명은 실종돼 사망으로 추정됐다. 이후 B씨 앞으로 유족 급여와 행방불명 급여, 장례비 등으로 2억3,776만 원 지급이 확정됐고, 친모 A씨가 지급대상이란 사실이 알려졌다.
선원법 시행령 29조 1항에 따르면, 유족 범위는 선원의 사망 당시 그에 의해 부양되고 있던 배우자(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던 자를 포함한다)와 자녀, 부모, 손 및 조부모로 돼있다. B씨 유족들은 주민등록상 미혼이었던 B씨가 사고 직전 6년간 여성과 동거하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고, 한 달에 보름 정도 배를 타지 않을 때는 여성과 같은 집에서 사실상 부부로 생활해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B씨와 사실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여성과 주민등록상 같은 주소에 거주한 적 없어 사실혼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결국 선원법 시행령 29조 2항 '선원 사망 당시 그에 의해 부양되고 있지 아니한 배우자와 자녀, 부모, 손 및 조부모' 규정에 따라 A씨가 보험금 등을 수령하게 됐다.
A씨가 보험금 수령을 위해 나타나자, B씨 누나이자 A씨 딸인 C씨는 "어머니 자격이 없다"며 A씨에 대해 보상금 지급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이에 A씨가 다시 소송을 걸어 1심 판결이 나왔다. C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재혼한 후 우리 형제들은 친척 집을 전전하며 힘들게 살았다. 할머니와 고모가 우리를 키워주셨다"며 "자식을 버리고 평생 연락도 없이 살다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나타난 사람을 어머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C씨는 또 "A씨에게 유족보상금을 반씩 나눌 것을 제안했지만 모친은 모두 갖겠다고 한다. 너무 양심이 없는 처사"라며 "보상금은 동생을 길러준 할머니와 고모, 그리고 사실혼 관계의 올케가 받아야 한다. 너무 부당한 상황이라 집을 팔아서라도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법상 상속결격 사유 제한 '구하라법'은 계류 중
양육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모에게 자녀의 재산 상속을 제한하는 민법 개정안(구하라법)은 2019년 가수 구하라 사망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구하라 사망 이후 20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모가 구하라가 소유했던 부동산 매각 대금의 절반을 요구하자, 구하라 친오빠가 이를 막는 법안을 청원했다. 20대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관련법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민법 개정안에는 상속인의 결격 사유를 규정한 1004조 6항에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으로서 피상속인에 대한 양육을 현저히 게을리하는 등 양육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자'가 신설돼 있다.
공무원들의 경우 ‘공무원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공무원 재해보상법·공무원연금법이 지난해 6월 개정돼 양육의무 불이행자에 대한 상속이 제한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응급구조대원으로 일하다가 2019년 순직한 고 강한얼 소방관 친모에게 해당 법이 최초로 적용됐다.
부산= 이동렬 기자 d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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