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통계조작’ 거짓말…진짜 사기단은 국힘과 보수언론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공식통계는 민주사회의 정보시스템에 필수 요소를 제공함으로써 정부와 경제, 국민에게 봉사한다.” 2014년 유엔 총회에서 결의된 ‘공식통계 기본원칙’의 첫번째 내용이다. 우리나라 통계청도 국가통계의 기본원칙으로 신뢰성과 중립성을 최우선으로 강조한다. 최근 감사원의 통계조작 의혹 조사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정책실패를 감추기 위해 소득·고용·주택의 국가통계를 조작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중에도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과 관련한 통계청 가계동향조사가 논란의 핵심이다. 보수언론은 연일 ‘국기 문란’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대서특필한다. 국민의힘도 최근 열흘 동안 공식 보도자료와 논평만 10건 이상 쏟아냈다. 반면 조작 의심을 받는 인사들은 “터무니없다”며 펄쩍 뛴다.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 걸까?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하위 20% 소득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중략) 통계청장이 경질된 이후 통계청은 표본가구 수를 확대하는 등 조사방식을 바꿨다.” <중앙일보>가 지난 21일 쓴 ‘국기 문란 국정 통계조작 의혹, 철저히 규명하라’ 사설의 핵심 부분이다. 통계청이 하위 20% 소득이 8% 줄어들고, 소득분배지표인 5분위 배율(최상위 20%의 소득을 최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값)이 악화됐다고 발표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하지만 문 정부가 그 때문에 통계청장을 교체하고, 조사방식을 바꿨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과 배치된다. 조사방식 개편 방침이 확정된 것은 조사결과가 발표되기 6개월 이전인 2017년 말이기 때문이다.
가계동향조사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은 오래된 일이다. 소득 파악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분배지표가 분기별로 들쭉날쭉해 통계의 안정성이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2018년부터 지출부문 조사만 남기고, 소득부문 조사는 없애기로 했다. 하지만 2017년 말 국회 논의 과정에서 방향이 급선회했다. 신속한 소득동향 파악을 위해 분기별 소득통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면서 소득부문 조사를 계속 유지하는 대신 조사방식을 개선하기로 했다. 이미 2018년 1분기 조사 때도 표본가구 수를 5500개에서 8천개로 확대하고, 모집단도 2010년 인구총조사에서 2015년 인구총조사 기반으로 교체하는 등 일부 개편이 이뤄졌다.
<조선일보>도 21일치 의혹 기사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 악화됐던 소득분배지표가 통계청장이 경질된 뒤 개선된 것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중략) 2019년 1분기 5분위 배율이 5.8배로 2018년 1분기(5.95배)보다 낮아졌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한국경제> 등도 사설에서 비슷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 역시 객관적 사실과 배치되는 황당한 주장이다.
통계청은 청장 경질 이전인 2018년 초부터 조사방식 개편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새 방식을 적용한 조사결과는 2년 가까운 준비 과정을 거친 뒤 2020년 1분기부터 발표됐다. 보수언론이 조작 증거로 제시한 2019년 1분기 5분위 배율은 통계의 연속성을 고려해 2018년 1분기와 동일한 방식으로 산출된 것이다. 처음부터 조사방식 개편을 통한 통계조작은 불가능했다.
당시 통계청은 조사방식 개편 과정을 수차례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소상히 밝혔다. 국힘과 보수언론이 이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엉터리 조작 의혹은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힘과 보수언론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의혹을 제기했다면, 책임 있는 여당과 언론을 자처할 자격이 없다. 만약 알고서도 거짓을 말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 기만과 국기 문란이다.
통계 조사·작성에는 수많은 공무원이 참여한다. 또 개편 작업은 면밀한 과학적 검토를 해서, 최종적으로 통계법에 따라 국가통계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친다. 국힘에서 주도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유경준 의원은 통계청장 출신이다. 누구보다 이런 사정을 잘 안다고 봐야 한다. 국힘과 보수언론의 황당한 통계조작 의혹 제기를 단순한 실수나 무지의 소치로 보기 힘든 이유다.
국힘과 보수언론은 의혹 제기에서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다. 보수언론이 조작 의혹을 보도하면, 국힘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기정사실화하며 “국민을 속인 빅 브러더 정권” 등의 현란한 표현을 동원해서 정치공세를 편다. 그러면 다시 보수언론이 사설이나 칼럼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권·언 유착을 통해 근거도 없이 통계조작 의혹을 부풀려 국민의 눈을 속인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문재인 전 정부에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2018년 2월 언론에 “2017년 4분기 조사결과 하위 20%의 소득이 10.1%나 크게 증가하는 등 소득분배가 개선됐다”고 적극 홍보했다. 통계 신뢰성이 떨어져 개편을 준비 중이었다는 점에서 경솔했다. 이는 석달 뒤 문재인 정부에 덫으로 작용했다. 그해 5월 2018년 1분기 분배지표가 반대로 악화된 것으로 나오자 보수언론은 일제히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린 데 따른 ‘고용참사’, ‘분배참사’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국책연구소의 분석 결과 통계청이 표본가구 수를 대폭 늘리는 과정에서 신규 표본 비중이 크게 커지고, 빈곤층이 많은 노인가구와 1인가구의 비율이 대폭 높아져서, 통계적으로 2017년과 2018년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드러났다. 통계청이 처음 발표할 때부터 조사방식 변화와 해석상의 유의점을 세심하게 설명했다면 불필요한 혼선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통계청이 뒤늦게 “2017년과 2018년 통계수치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표본가구 구성의 변화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기-승-전-소주성(최저임금 인상)’ 식으로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 정책을 공격하는 데 혈안이 됐던 보수언론에는 좋은 먹잇감이 됐다. 국민의 눈에도 문 정부가 조사결과가 좋으면 홍보하고, 나쁘면 조사방식을 문제삼는다는 오해를 살 수 있었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낙수효과’가 실종된 상황에서 중장기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은 옳은 정책이다. 하지만 문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취약계층의) 고용과 소득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했다. 정책 방향은 옳았으나 집행 과정이 미흡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힘과 보수언론이 ‘통계조작’이라는 허구적 프레임을 씌워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어떤 이유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고용통계 조작 의혹에도 비슷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힘과 보수언론의 말처럼 정확하고 객관적인 통계 산출은 국가 정책수립의 근간이다. 기업과 가계가 합리적 선택을 하는 데도 기초가 된다. 통계가 왜곡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에게로 귀결된다. 불순한 정치적 목적으로 근거도 없이 ‘통계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불장난이다. 정진석 국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가통계 조작은 국정농단을 넘어 국정 사기극에 가깝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진짜 사기단은 국힘과 보수언론이다.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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