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8조원 밀실 협상…‘지역구 예산’ 착착 챙겨간 실세 의원님들

송채경화 2022. 12. 2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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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최장 지각 합의’ 오명 국회
지난 24일 새벽 0시55분께 국회 본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이 의결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가 지난 24일 새벽 본회의를 열어 638조7천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및 부수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법정 처리 기한(12월2일)을 22일이나 넘기면서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장 지각처리’라는 오명을 얻었다. 특히, 예산안 막판 협상에 소수당을 제외한 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만 참여하면서 거대 양당의 ‘밀실 졸속 협상’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여야 실세 의원들은 정부안에 없던 지역구 예산안을 따내며 실속 챙기기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당 원내 지도부가 독점하는 주고받기식 막판 협상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법정 활동 기한인 지난 11월30일까지 예산안을 조정하지 못한 채 양당 지도부도 공을 넘기면서 시작됐다. 양당 원내대표간 협상에서는 기존에 정상적인 여야 심사를 거쳐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조정안마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예컨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11월17일 전체회의에서 행정안전부 경찰국 예산 삭감폭을 20%로 줄이는 대신, 민주당의 지역화폐 예산을 5천억원 증액하기로 의결했다. 하지만 이후 원내 지도부간 협상에서 이 조정안은 사라지고 ‘경찰국 예산 50% 삭감 및 지역화폐 예산 50% 증액’으로 마무리됐다. 국회 예결특위 소속인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지난 24일 본회의에서 예산안 표결에 앞서 “올해 예산안 심사와 합의 과정이 더욱더 비공개로, 더 은밀하게 진행됐다”며 “저를 포함한 예결특위 위원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대다수 의원들 모두 예산 심사 상황을 알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특히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소득세 등 쟁점이 큰 예산부수법안도 소관 상임위에서 제대로 된 논의를 거치지 못한 채 거대 양당의 협상으로 조정된 데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정의당 의원들은 24일 본회의장에서 “법인세 개정안이 도깨비처럼 등장해 민주주의 헌법 정신을 위협했다”(이은주 원내대표), “소득세법 개정안은 밀실 협상만을 통해 정해진 조세양당주의의 산물”(장혜영 의원), “두 당의 비공식 협상 테이블에서 갑자기 등장한 종부세법 개정안이 합의안이란 외피를 쓰고 본회의에 올라왔다”(류호정 의원)고 성토했다.

이런 가운데 여야 실세 의원들은 정부안에 없던 지역구 예산을 챙겼다. <한겨레>가 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내년도 예산을 살펴보니,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충남 공주·부여·청양)은 부여군이 추진하고 있는 동아시아 역사도시진흥원 건립 예산을 0원에서 12억5천만원을 순증시켰다. 세종시와 공주역을 연결하는 광역 간선급행버스(BRT) 구축 예산도 애초 정부안 43억8천만원에서 14억원 증액됐다. 같은 당 성일종 정책위의장(충남 서산·태안)도 정부안에 없던 대산-당진고속도로 건설 예산 80억원을 확보했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권성동 의원(강원 강릉)은 지역구 하수관로 정비 예산 등으로 15억원을 순증했고,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은 재해위험지구 정비사업 예산을 정부안보다 23억4500만원 늘렸다.

민주당에선 위성곤 원내정책수석부대표(제주 서귀포)가 정부안에 없던 서귀포시 유기성바이오가스화 사업 예산 62억2200만원을 챙겼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박정 의원(경기 파주을)도 0원이던 파주 음악전용공연장 예산 30억원과 문산-법원 도로확장 설계 용역비 2억원을 확보했다.

‘예산안 22일 지각 처리’라는 기록으로 인해 2014년 시행된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도 무력화됐다. 헌법에 명시된 예산안 의결 기한(12월2일)을 지키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은 11월30일까지 여야가 예산안 합의를 이루지 못 할 경우 정부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했다. 그러나 정부안 자동 부의 이후에도 여야가 얼마든지 수정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어, 앞으로도 ‘지각 예산안’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 의원은 <한겨레>에 “이번 예산안 사태로 국회선진화법의 실효성이 사라졌다”며 “국회법 개정 등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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