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죽음을 마주하고 … 고독을 벗삼아 헤쳐나가다
혼란스러운 세상일수록 사람들은 현자를 찾아 헤맨다. 시대를 풍미한 큰 스승, 한평생 삶과 교육을 탐구해온 학자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던 한 해였다. 매일경제와 예스24가 선정한 '올해의 책'을 통해 때로는 따스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때로는 앞날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으로 가르침을 전하기도 했던 이들과 만나보자.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시대의 지성' '지식인의 빛과 소금'으로 불리던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 석좌교수가 생전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깨달음을 써낸 책이다. 한국 사회 대표 지성으로 불리던 고인이 죽음을 앞둔 순간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지막 수업이 담겼다.
책은 1년 사계절 동안 진행된 열여섯 번의 인터뷰를 통해 완성됐다. 스승은 저자인 김지수 작가를 매주 화요일에 만나 사랑과 용서, 종교, 과학 등 여러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끌어 나간다.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에 대해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제자와 이 세상에 남겨질 모든 제자를 위해 지혜를 전수하는 시간으로 남았다. 문화부 초대 장관을 비롯해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을 지내며 최고 지성으로 불렸던 그는 간암 판정을 받은 뒤 항암 치료를 거부한 채 오랜 시간을 저서 집필에 매진해왔다. 고인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독자에게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전한다. "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이어령 선생의 말대로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생각과 말은 우리 곁에 남아 여전히 생기를 띤다. 선생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한다"며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남겼다. 이어령·김지수 지음, 열림원 펴냄.
▷ 최재천의 공부
오직 자연과 생태계만을 연구해오던 생태학자가 작심하고 인생 교육에 대한 책을 펴냈다. 2016년 한 시상식에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 수상자에게 무릎을 꿇고 상장을 전달한 장면으로 화제가 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얘기다.
권위를 내려놓고 손수 배려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그는 '공부'라는 주제로 자기 생각을 전한다. 실제로 수많은 청소년과 부모, 정부와 기업이 그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어떻게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나요?" "전 지구적 재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떤 인재를 뽑고 길러야 할까요?"
이에 최 교수는 "우리 인간은 사실을 많이 알면 알수록 결국엔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답을 내놓는다. 책은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와 최재천 교수가 1년 동안 나눈 가감 없는 인터뷰 대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작가는 입시지옥, 취업 경쟁으로 이어지는 비극에서 벗어나 아이들 인생에 힘을 길러주는 '동물스러운' 교육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돌아보고 앞으로 미래 세대의 공부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뿌리, 시간, 양분, 성장, 변화, 활력이라는 주제로 방향을 제시했다. 자식의 실패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엄마 침팬지의 교육법부터 최 교수가 하버드대 재학 시절 기숙사 사감을 하면서 배운 경청의 기술까지, 저자가 인생을 지나오며 배운 교훈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재천·안희경 지음, 김영사 펴냄.
▷ 세대 감각
'요즘 젊은 세대는 끈기가 부족해 자주 퇴사한다.' '노인들은 환경 문제에 관심이 없다.' 오늘날 각 세대의 정체성은 출생 연도에 따라 나뉘고 정의된다. 집단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한 뒤 그것으로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정말 밀레니얼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퇴사율이 높을까. 뚜껑을 열어보면 현실은 정반대다. 영국 싱크탱크 레졸루션재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젊은 층에겐 안정된 일자리가 귀해졌다. 자연스레 밀레니얼 세대의 자발적 이직률은 기성세대의 신입사원 시절 대비 25%나 감소했다. 중장년층은 기후변화나 윤리적 소비 문제에 흥미가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마찬가지다. 책에 따르면 X세대는 오히려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보다 젊은 시절 윤리적 소비 경향이 더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정책연구소 소장이자 공공정책학 교수인 저자는 이렇듯 '가짜' 세대 감각이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키우고 갈등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한 세대를 쉽게 구별 짓고 쉽게 가정한 분석들이 그보다 더 중요한 사회 변화의 신호를 놓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작가는 전 세계 300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 데이터를 바탕으로 10개 분야를 파헤친다. 자산, 주택문제에서 교육과 노동, 기후변화, 정치 양극화까지 많은 사람이 놓치고 있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포착해냈다. 바비 더피 지음, 이영래 옮김, 어크로스 펴냄.
▷ 낭만적 은둔의 역사
세계적인 역사학자 데이비드 빈센트가 제안하는 낭만적 은둔을 즐기는 방법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속도에 맞춰 혼자 걷고, 둘째, 몸이 움직이는 동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게 손을 놀리며, 셋째, 잠시 멈춰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라.
휴식 없는 현대사회에서 혼자만의 여유를 갖거나 홀로 사색에 빠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책 '낭만적 은둔의 역사'는 케임브리지, 옥스퍼드대에서 역사를 공부해온 작가가 지난 400년 동안의 문학과 자료를 거슬러 혼자 있기를 최초로 다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고독은 영혼을 새롭게 하고, 생각을 다듬고, 기존의 일하고 사는 방식에 맞서는 상황이자 장소"다.
역사적으로 독서, 우표 수집, 자수와 같은 유행이 탄생한 배경부터 '단독 세계일주'라는 강도 높은 은둔 생활까지 혼자 있는 시간이 여가 활동으로 탄생한 과정을 서술했다.
1장과 2장에서는 산책과 여가 활동의 역사를 다룬다. 3~5장에서는 '독방'의 기원과 각종 취미 산업이 자리를 잡아온 과정, 회복의 성격을 지닌 자연 탐험, 마음챙김 등의 맥락을 살핀다.
6장에서는 고독과 차별화되는 외로움에 대해, 마지막 7장은 디지털 시대까지 이어진 고독에 관해 썼다.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더퀘스트 펴냄.
▷ 위어드
서구사회를 서구적으로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책 '위어드(WEIRD)'는 현대 서구 문명의 번영을 가져온 5가지 키워드를 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회로 꼽는다. 개인주의적이고 통제 지향적인 동시에 낯선 사람을 신뢰하며, 사회적 역할보다 자신의 성취에 집중하는 이들은 어떻게 이 같은 심리를 가지게 된 것일까.
책은 지난 몇 세기에 걸친 가족 구조, 결혼, 종교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탐구한 끝에 이 제도들이 결국에는 어떻게 인간의 사고방식을 바꿔냈는지 보여준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결혼과 친족제도 등을 변화시킴으로써 어떻게 오늘날의 일부일처 핵가족이 탄생했는지부터, 18세기 말 서유럽에서 산업혁명을 기폭제로 삼은 경제 성장이 세계화의 물결을 일으켰는지까지 설명한다.
저자는 문화, 심리, 종교, 협력 등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을 연구해온 조지프 헨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교(UCLA)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심리학과 및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조지프 헨릭 지음, 유강은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고보현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꼬박꼬박 국민연금 낸 우린 뭔가”…기초연금 인상에 뿔난 서민들 왜? - 매일경제
- 韓관광객 1순위 日, 日관광객 1순위는 어디? - 매일경제
- “이 값엔 못 팔아”...아파트 증여 강남 아닌 이곳서 가장 많았다 - 매일경제
- “집 더 사봐야 뭐하나”…다주택자들이 시큰둥해진 이유는 - 매일경제
- 매경이 전하는 세상의 지식 (매-세-지, 12월26일) - 매일경제
- 디자인 탓이 아니었나…갤럭시 원신 에디션 ‘14분 완판’된 진짜 이유 - 매일경제
- 올해 매출 600억 넘는 돌풍…‘비타민계 에르메스’ 뭐길래 - 매일경제
- “돌아가신 부모님이 실제처럼 다시 내 앞에”…이 기술이 온다 - 매일경제
- 내년 강남에 쏟아지는 입주물량...최악의 역전세 온다 [매부리레터] - 매일경제
- 김민재 EPL 겨울 이적 없다…나폴리 구단주 결정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