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고, 관리 귀찮아” 은행나무 가로수 40그루 베어낸 함평군 월야면[현장에서]
“나무는 가꾸고 보호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누가 죽인 거예요?”
지난 20일 전남 함평군 월야면 종합사회복지관 앞을 지나던 한 아이가 밑동만 남은 가로수를 가리키며 이렇게 물었다. 인근 도로에 심어져 있던 가로수 수십여 그루로 모두 베어진 상태였다.
왕복 4차선의 이 도로 양쪽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름 30~40㎝, 높이 10m쯤 되는 은행나무 40그루가 10m 간격으로 심어져 있었다. 이 나무들은 도로가 확정됐던 2000년 초 처음 심어졌다.
광주광역시와 함평군을 잇는 이 도로는 광주시 등 외지에서 함평을 찾는 방문객들이 이용하는 주요 도로다. 은행나무 가로수 길은 매년 가을 단풍이 노랗게 물들어 주민은 물론 외지인들에게도 볼거리를 제공해 왔다.
아름드리 가로수가 갑자기 베어진 것은 지난 16~17일이다. 전기톱을 든 인부들이 나타나 나무의 몸통과 가지를 베고 트럭에 실었다.
함평군은 인근 상인 등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부 주민들이 가로수에서 낙엽이 날려 도로와 인근 가게 등을 어지럽히고, 은행 열매의 악취가 심하다며 군청에 수년간 지속적인 민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낙엽과 은행 열매 등이 주변 하수구를 막히게 한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가로수 제거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 함평균의 입장이다. 지난달 15일부터 30일까지 보름간 주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으며 이들 중 90% 가까이가 가로수를 없애는데 동의했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설문조사에는 월야면 주민 3600여명 중 70여명만이 참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주민들은 설문조사가 진행됐는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주민들은 수십년 된 가로수를 마구잡이로 잘라낸 행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한 주민은 “은행나무를 두고 몇몇 상인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루 사이에 싹둑 잘라버릴 줄은 몰랐다”면서 “나무도 다 자기 역할이 있는 것인데. 냄새나고 낙엽 치우기 귀찮다고 없애면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함평군 관계자는 “(은행나무 벌목과 관련해) 면사무소 등에 현수막을 걸고 주민들에게 최대한 알린다고 노력했는데 설문조사 참여율이 낮아 아쉽다”면서 “최대한 많은 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가로수 문제에 따른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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