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아, 눈 참 좋아했잖아”…눈물바다 된 이태원 ‘성탄 추모 미사’
희생자 79명 이름 부르며 추모 기도
성탄절을 맞아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추모 미사가 이태원 광장 시민분향소에서 진행됐다.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과 나눔의집협의회는 성탄절인 25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광장에 차려진 시민분향소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추모와 연대의 성탄절 연합 성찬례’를 거행했다. 나눔의집협의회 쪽은 이날 성찬례에 20여명의 유가족을 포함해 200여명의 시민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빨간 목도리와 귀마개,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자리에 앉은 유가족들은 성찬례가 진행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특히 유족들이 동의한 희생자 79명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하는 순서에서는 유족들과 시민들이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분향소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날 ‘현장의 증언’ 순서에서 발언에 나선 유족 진세빈씨는 참사 희생자인 동생 진세은씨에게 직접 쓴 편지를 낭독하고 참사 책임과 진실규명을 회피하는 정부를 비판했다. 진씨는 “이 참사를 그저 덮어두기만을 바라고 진실을 회피하며 유가족을 모욕하기까지에 이르는 많은 분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국가는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노력을 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은 졌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길거리에서 158명의 청년이 숨졌다. 우리가 매일 지나다니는 그 길거리에서 희생됐다. 카메라 앞에서 막말하면서 분향소에는 극우주의자들의 온갖 현수막이 걸리고, 기어이 그들로부터 유가족들이 쌍욕을 듣게 하는 게 이게 당신들이 생각하는 보호인가”라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40분께 성찬례가 끝나자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가 마련된 분향소 앞에서 한참을 오열하는 유가족들도 있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이날 저녁 7시부터 시민분향소에서 ‘10·29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성탄 대축일 미사’를 진행한다. 저녁 미사 후에는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인근 참사 현장 앞까지 행진한 뒤 위령 기도도 올릴 예정이다.
다음은 유족 진세빈씨가 이날 오전 미사에서 낭독한 희생자 진세은씨에게 보내는 편지 전문.
세은아 안녕. 벌써 크리스마스다. 우리 작년에 같이 벽에 크리스마스 장식 꾸며놓고 사진 찍었는데… 기억나? 네가 눈 참 좋아했잖아. 올해는 이렇게 눈 많이 쌓인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우리 지금쯤이면 원래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눈사람 만들고 있어야 하잖아.
독일, 체코,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 프랑스. 그 아름다운 유럽의 풍경들을 너한테도 언니가 꼭 보여주고 싶었어. 비행기를 무서워했던 너한테 이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어. 그런데 이렇게 순식간에 무너져 버릴 줄 몰랐어. 언니는 아직도 너한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은데…. 삶이 참 덧없고 부질없다. 그치? 네가 올해 들어서 언니한테 계속 ‘머리카락 좀 자르라’고 잔소리했잖아. 그래서 며칠 전에 머리카락 40cm 소아암 환자들한테 기부하기로 했어. 네가 병원에서 너무 아파할 때. 그 기억이 아직도 너무나 생경해서. 오늘도 힘겹게 병과 싸워내는 아이들이 모두 다 너처럼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네 이름 진세은으로 기부하려고 해. 너 관심받는 거 엄청 부끄러워했지만 이번엔 좋은 일이니까 웃으면서 넘어가자. 몇 달이 지난 요즘은 이제는 많이 아프진 않아? 추운데 옷은 따뜻하게 입고 다녀? 너 좋아하던 미니스커트는 가끔씩만 입어. 그러다 감기 걸리니까. 늘 웃으면서, 행복한 일만 기억하면서, 그렇게 살자. 언니랑 엄마랑 아빠도 조금만 힘들고 조금만 아파할게. 어제도 언니 꿈에 나와줘서 진짜 고마웠어. 계속 기다릴 거니까 심심하면 또 나와서 언니한테 재잘재잘 수다 떨어줘. 사랑해 세은아 아프지 마.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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