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에 빛이 열렸네, 새까맣던 열여덟에 내게 온 너처럼[나, 어린 엄마①]

조해람 기자 2022. 12. 25. 14: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있다.

외면받은 소녀들이 있다. 남들이 규정한 경로 밖에서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추방당한 엄마들이 있다. 사회는 ‘정상 가족’ ‘모성’ 따위의 이데올로기를 들이대며 이들의 존재를 주변화했다. 다른 쪽에서는 어린 임신을 대상화했다. 어쩌다 무대 위로 불러세우면 ‘불쌍한 피해자’ 또는 ‘철없는 문제아’의 역할만 부여했다. 구체적인 삶은 자주 납작해졌다.

경향신문은 이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고 전해보기로 했다. 청소년 한부모 2명과 머리를 맞대며 지나온 날들을 되짚었다. 이들의 삶은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었다. 청소년 한부모를 향한 우리 사회의 편견, 홀대, 폭력이 생의 경로 위를 숱하게 교차했다. 교육시스템, 주거, 복지 같은 제도는 이들을 아쉽게 빗겨가거나 때로 묵살했다.

그 속에서도 이들은 ‘나’였고, ‘어린 엄마’였다.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상황 속에서 아이를 가졌는지 들었다. 매 순간 닥쳐왔던 위기와 기회들 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물었다.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을 주려고 애쓴 경험들을 수집했다. 색안경 없이 바라봐준 주변인들은 누구였는지, 색안경은 어떻게 사라지는 것일지 함께 생각했다.

수차례의 구술생애사 인터뷰와 추가 취재를 통해 모은 두 사람의 삶을 세 편의 이야기로 엮었다. 두고 온 것들을 돌아보는 세밑에서, 사회가 놓친 이웃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옮겨 적는다. 기사에 나오는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목차
① 트리에 빛이 열렸네
② 잭나이프 들던 애가 엉엉 운다
③ 우리 같은 엄마들
서연(가명·21)이 8일 오후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된 거실에서 인디언텐트에 들어간 딸 은지(가명·3)와 놀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연은 택배 상자를 천천히 열었다.

가느다란 진초록색 플라스틱 잎이 빽빽이 달린 트리 가지들은 웅크린 채 접혀 있었다. 트리 옆으로는 비닐 포장이 된 장식들도 보였다. 반짝이를 코팅한 빨간 공, 금색 공, 루돌프를 수놓은 빨간 리본들, 트리 꼭대기에 얹을 별, 그리고 영어로 적힌 30cm 크기의 황금색 ‘메리 크리스마스’. 25일까지는 보름 넘게 남았지만 서연은 스물한 살의 크리스마스를 조금 일찍 준비하기로 했다.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배송된 트리를 서연은 거실에 앉아 한 단씩 조심조심 조립했다. 처음 하는 트리 만들기에 끙끙대는 서연의 옆에서, 서연의 세 살배기 딸 은지가 “우와, 우와!” 신이 나 떠들었다. 열여덟에 너를 낳고서 변변한 크리스마스 한 번 챙겨준 적 없는데, 그렇게 좋니. 서연은 기쁘고 미안했다. 1.8m 높이 트리를 기둥만 얼추 세우니 겨울해가 다 기울었다.

짜장라면과 계란찜을 나눠 먹은 모녀는 다시 트리 앞에 앉았다. “은지야 엄마가 이게 안 되네?” “내가 할 수 있어!” 꺾이듯 접힌 가지를 둘이서 하나씩 폈다. 트리는 이내 풍성해졌다. 서연은 트리에 빨간 공과 금색 공, 리본, 별을 달고 와이어 전구를 둘렀다. 은지는 신이 나 거실을 뛰어다녔다. 은지의 양손은 장식에서 떨어진 반짝이 펄가루로 범벅이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한부모가족전형으로 막 입주한 서연이 심플하게 꾸민 거실에서, 은지는 온 벽에 펄가루를 잔뜩 묻히며 까르르 웃었다.

조립은 저녁 여덟 시 반에 끝났다. 집의 모든 불을 끈 서연이 트리 전구 스위치를 켰다. 노란색과 주황색 사이의 작은 LED 불빛들이 트리를 화악 휘감았다. “꺄아아!” 은지가 소리쳤다. 은지가 놀다 간 벽마다 펄가루가 빛을 받아 은색으로 반짝였다. 둘은 한참 동안 트리를 바라봤다. 서연도 이런 트리를 처음 가져봤다. 트리 불을 끄고, 다시 생활의 형광등 아래에서 펄가루를 닦아내며 서연은 생각했다. 내가 받지 못한 가족의 사랑을 은지에게 주겠다고. 간절히 원했지만 갖지 못했던 것을. 필요로 할 때 옆에 있고,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은지(3)가 인형을 갖고 놀고 있다. 한수빈 기자
◆  

한강이 얼던 2013년 겨울, 세 아이는 경기 안산의 밤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언니, 나 너무 추워….” 초등학교 6학년 서연이 말했다. 그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가출팸’을 검색해 모인 셋은 거리 생활이 거의 처음이라 계속 걷기만 했다.

어린 서연은 무작정 집을 떠났다.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는 없었다. 아빠는 건설 일부터 붕어빵, 분식 노점까지 이런저런 일을 했는데 벌이가 시원찮았다. 술을 자주 마셨고 서연을 방임했다. 10대 초반을 시설에서 보내고 돌아와도 서연은 여전히 미래라거나 희망 같은 것들을 느끼지 못했다. 서연은 몰래 집을 나와 충청도에서 안산까지 혼자서 왔다.

어리숙한 가출팸은 며칠 만에 금방 해체됐다. 고모에게 잡혀들어온 다음 날 아침 아빠가 서연을 불렀다. “아빠가 예전처럼 널 방치하거나 하진 않겠지만…시설 가서 중학교도 나오고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서연은 전국의 시설을 떠돌며 살았다. 많은 곳이 체벌이 심했거나 밥을 굶겼다. 드물게 괜찮은 곳은 지낼 수 있는 기간이 금방 지났다. 얌전한 편이었던 서연은 한 번도 사고를 친 적 없었는데, 시설을 떠돌다 보니 중학교에선 제적돼 있었다.

원룸형 옥탑방을 얻어 독립했을 때 서연은 열여섯이었다. 서연은 짐을 정리하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다. 꼬마 때 서연은 막연하게 군인을 꿈꿨다. 큰 이유는 없었고 그냥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릴 때 기차역 앞 광장에서 넘어진 서연에게 약도 발라주고 밴드도 붙여줬던 군인 아저씨처럼. 혼자 지내게 된 첫날 서연은 무섭고 외로워서 울었다. 울다 지쳐 새벽에야 잠에 들었다.

서연(가명·21)이 지난 8일 침실에서 침구류를 정리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 ◆

후드티에 반바지를 입고 서연은 광주의 한 경찰서를 찾아왔다. 가을날 밤이었고 서연의 다리에는 피가 흘렀다. “폭행 강간 신고하러 왔는데요.” 서연은 안내 데스크에서 알려준 사무실로 향했다. 경찰서 사무실 앞에는 배달음식이 막 도착해 있었다. 형사들은 배달음식을 챙기러 우르르 나갔다.

“누구한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쓰고 계셔요.” 마지막 남은 형사가 서연에게 양식도 없는 A4용지를 던져주고 사무실을 나갔다. 서연은 혼자 남아 빈 종이를 바라봤다. 누구한테, 무슨 일을 당했냐고요. 안산의 옥탑방에서 저는 검정고시도 땄고 호텔 아르바이트도 시작했어요. 열심히 살아봐야죠. 남자친구도 생겼습니다. 열여섯이라던 걔가 사실은 성인이고,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일 줄은 처음엔 몰랐어요. 제 기분 나쁘면 저를 때리고, 걷어차고, 핸드폰을 부수는 사람일 줄도요.

열일곱 살이 된 올해 여름 저는 간호조무사 교육을 받으려고 여기 광주로 이사왔습니다. 걔도 따라왔습니다. 집은 물론이고 대낮 길거리에서도 머리채를 잡고 걷어찼습니다. 경찰서 앞이었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겨우 도망쳐서 어떤 아주머니에게 신고해달라고 빌었는데, 다른 아주머니가 “하지 마, 괜히 엮여”라며 말렸습니다. 온몸이 멍투성이였고 제 편이 없었습니다.

얼마 전 헤어지자고 했더니 그 새끼는 저를 패고 강간했습니다. 핸드폰이 부서져서 신고 못 했습니다. 신고해도 안 도와줄 것 같았습니다. 그 새끼는 미안하다고 빌면서 아이를 낳자고 했습니다. 그래놓고도 계속 때렸습니다. 오늘도 그래서….

서연은 이 말을 A4용지에 적지 않았다. 마지막 형사가 사무실을 나간 뒤 “지랄하네” 짧게 혼잣말을 뱉었다. 곧 눈물이 터졌다. 가을밤 경찰서에서 서연은 혼자 울다가 그냥 나왔다. 남자친구를 겨우 떼어내고 서연은 서울의 한부모시설 애란원에 입소해 간호조무사 공부를 다시 이어갔다. 배가 조금씩 불러오고 있었다.

서연(가명·21)의 집에 슬리퍼가 놓여 있다. 한수빈 기자
◆ ◆ ◆

강원 정선으로 이사한 아빠 집에서 설을 보내고 돌아오니 초봄이었다. 2019년 3월의 어느 날, 간호조무사 수업 쉬는 시간에 서연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임신했다면 어떡할 거야?”

“혹시 그 친구?”

“아니…, 그냥 어쩔 거냐고.”

“…나중에 얘기하자.”

중요한 이야기를 피하는 당신의 버릇은 여전했다. 서연은 1주일의 외출을 얻어 정선행 버스를 탔다. 아빠는 낡은 차를 끌고 서연을 데리러 왔다. 차 안에서 늘 담배를 피우던 아빠가 이날은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 처음으로 의자 히터를 틀어줬다. 하지만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아빠는 임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며칠 뒤 서연이 먼저 임신 사실을 말하자 아빠는 말없이 마당에 나가 담배를 물었다. 서연도 더 말하지 않았다.

서연(가명·21)이 지난 8일 부엌에서 집안일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외출 기간이 끝나고 서연은 아빠와 차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빠, 나 어떡했으면 좋겠어?” 아빠는 말했다. “낳아, 알아서 해. 그런데 아이 낳으면 난 너랑 연 끊을 거야.” 서연이 다시 물었다. “정말 나 안 볼 거야?” “응.”

두 사람은 터미널에 도착했다. 서연은 울먹이면서 서울행 표를 끊고 버스에 올랐다. 오른쪽 차창으로 아빠가 보였다. 아빠와 눈을 맞추며 서연은 전화를 걸었다.

“아빠, 정말 나 안 볼 거야? 내 아빠 안 해?”

승객을 반쯤 채운 버스가 천천히 출발했다. 버스가 터미널 입구를 나서니 아빠의 모습이 사라졌다. 수화기 너머로 아빠가 말했다.

“강하게 말하지 않으면 서연이 네가 섣불리 쉽게 결정할 거 같아서 그랬어. 아빠가 그동안 너에게 해준 것도 없고, 이래라저래라할 자격도 없는 거 안다. 그런데 강하게 얘기해줘야 신중히 선택할 거라 생각했어.” 아빠는 이어 말했다. “양육을 하든 입양을 보내든, 후회 없게 잘 판단해라.” 서울로 달리는 버스에서 서연은 엉엉 울었다.

◆ ◆ ◆

두 달 뒤 서연은 은지를 낳았다. 간호사들에게 들어보니, 서연은 갓 태어난 은지를 보며 “왜 저렇게 생겼어, 왜 저렇게 닮았어….” 울다가 곯아떨어졌다고 했다. 신생아실 창 너머로 은지의 자는 얼굴을 보면 ‘내가 쟤 없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양육을 결정한 서연이 은지와 함께 애란원에 돌아왔을 땐 여름이 중턱이었다.

지난 12일 서연(가명·21)이 어린이집 앞 길에서 은지(가명·3)를 데리고 귀가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연은 애기보에 은지를 꼭 동여매고 소아청소년과에 다녀오는 길에 자주 가던 시장 떡볶이집에 들렀다. 애란원의 엄마들과 나눠 먹을 떡볶이와 순대를 포장했다. 떡볶이집 아주머니와 인사를 주고받는데 한 할머니 손님이 쏘아붙였다. “어린 것이 발랑 까져갖고 애 낳았나 보네.” 서연은 숨이 콱 막혔다.

“정신 나간 여편네가, 왜 잘 사는 애한테 그딴 말을 해?” 떡볶이 아주머니가 대뜸 화를 냈다. “애 키울 수도 있지! 잘하고 있는데.” 애란원의 엄마들도 서연이 사 온 떡볶이와 순대를 나눠 먹으며 말했다. “왜 말을 그따구로 한대?”

고마운 사람들이었지만 서연은 비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지,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그때 경찰은 왜 나를 외면했지. 서연은 아이가 울면 따라 울고, 자해를 했다. “내가 너를 왜 낳았을까…” 멍하게 읊조리곤 했다. 9월의 어느 날, 시설 선생님의 판단으로 은지는 잠시 위탁기관에 보내졌다.

은지(가명·3)가 지난 8일 침실에서 놀고 있다. 한수빈 기자

떨어져 있는 동안 서연은 시설 선생님에게 심리상담을 받을 병원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새까맣던 지난 삶은 서연의 손목에 여러 개의 흉터를 남겼다. 그런 날들에 문득 들어온 은지는 서연에겐 어떤 이유가 됐다. 떨어져 지낸 뒤로 매일 더 선명해지는 이유였다. 서연은 다시 스스로를 추슬렀다. 양육교육을 들었고 일자리도 잡았다.

가산단지 한복판 30층짜리 빌딩 속 콜센터로 출근하면, 뻥 뚫린 사무실을 빼곡히 채운 칸막이 책상들에서 중년 여성들이 고객님, 사랑합니다 고객님, 통화하고 있었다. “아이구 서연이, 나는 남편이랑 같이 키워도 힘든데 어떻게 그걸 하니?” 선배들은 육아 정보를 알려주거나 서연의 도시락을 싸 줬다.

시설에서는 홈베이킹 수업도 들을 수 있었다. 서연이 처음으로 만든 빵은 플레인스콘이었다. 쉽게 만들 수 있는 입문용 빵이라고 했다. 밀가루와 소금을 반죽해 오븐에 넣으면 뭉게구름을 닮은 스콘이 됐다. 살기 위해 먹는 밥이랑은 다른, 몽글몽글한 따뜻함을 서연은 느꼈다.

◆ ◆ ◆

서연과 은지는 2021년 5월에 다시 합쳤다. 위탁시설 선생님은 다시 가정 복귀한 아이는 은지가 처음이라고 했다. 서연은 첫 식사로 미역국과 소시지야채볶음, 소불고기를 준비했다. 은지는 파프리카와 양파를 끝까지 먹지 않았다. 서연은 은지 양치를 시키는 것도 애를 먹었다.

지난 8일 서연(가명·21)이 딸 은지(가명·3)의 머리를 묶어주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연은 육아휴직 중이었다. 그해 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콜센터에서 정신없이 콜을 받던 서연에게 구급대원이 전화를 걸어 알려주었다. 농수로에 얼어붙은 얼음을 녹이다가 미끄러져 크게 다치셨다고 했다. 부친상을 치르고 또다시 마음이 무너져버린 서연을 위해 팀장님은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도와줬다.

심리 상담을 받던 서연에게 행정시스템은 ‘한부모 자격 박탈’을 알려왔다. 아버지의 보험금이 서연의 일시소득으로 잡혔다고 했다. 국가는 한부모의 자격을 소득으로 판단했다. 그 보험금은 아버지의 병원비와 카드빚으로 다 나갔는데 국가는 그것까지 계산해주진 않았다. “한부모치곤 재산이 많으신데?” 구청 직원은 짜증을 냈다.

서연은 억울했다. 그거 없는 돈인데, 내가 거짓말로 지원을 받으려는 것도 아닌데, 한부모 소득기준을 턱없이 낮게 잡아서 최저시급 넘는 일자리는 도전도 못 하는데…. 서연은 꼬깃꼬깃 모은 영수증으로 진짜 생활비를 소명하며 한부모 자격을 겨우 회복했다.

지난 8일 서연(가명·21)이 딸 은지(가명·3)와 거실에서 놀고 있다. 한수빈 기자

그동안에도 은지는 자랐다. 또래에 비해 말과 지능발달이 빨랐다. 떨어져 지낸 기간이 길어 ‘애착형성’은 조금 늦었다. 위탁시설에서 지낼 때 서연이 면회를 가면, 은지는 선생님들을 찾으며 자꾸 서연의 품을 떠나려 했다. 서연에게는 많이 서글픈 일이었다.

그래서 서연은 집에 돌아온 은지와 하루종일 놀아줬다. 시간이 허락하는 최대한을 아이와 함께하면서 서연은 은지에게 주고 싶었다. 필요로 할 때 누군가 옆에 있어준다는 느낌을. 지나온 삶에서 간절히 원했지만 갖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뛰고 떠들어도 지치지 않는 은지의 체력은 스무 살의 서연에게도 꽤 벅찼다. “이제 잠깐 쉬자!” 서연은 바닥에 누워 말했다. “나, 울 거야!” 은지는 칭얼댔다. “엄마도 울 거야, 어헝헝…” 서연이 장난으로 우는 척을 하자 은지는 서연의 배에 얼굴을 올리고 말했다. “울디 마! 우디 마아아…은지가 지켜줄꼬야.” 은지는 계속 자랐다. 돌아볼 때마다 자라 있었다.

지난 8일 은지(가명·3)가 놀이방에서 서연(가명·21)과 놀고 있다. 한수빈 기자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