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상품수지는 '흑자' 무역수지는 '사상 최대 적자'…같은 듯 너무 다른 통계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면서 무역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고 곳곳에서 난리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상품수지는 95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심각한 위기 상황은 아니라는 진단을 하고 있다. 같은 대한민국의 수출과 수입을 토대로 작성한 '무역수지'와 '상품수지'에 대한 판단이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관세청은 이달 들어 지난 20일까지 수출은 8.8% 줄어든 336억 달러, 수입은 1.9% 증가한 400억 달러였다고 발표했다. 무역적자는 64억 달러에 달한다. 수출 증가율은 10월 -5.8%, 11월 -14%를 기록한 데 이어 이달에도 줄어 3개월 연속 감소하고, 무역수지는 9개월 연속 적자를 내는 진기록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수지가 9개월 연속 적자를 나타내는 것은 외환위기 발생 7개월 전인 1997년 5월 이후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20일까지 올해 누적 무역적자는 489억 달러로, 2022년 한 해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5백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확실시된다. 올해 예상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사상 최대치인 것은 물론 종전 최대치였던 1996년 206억 달러 적자의 배를 넘는 수치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으로의 수출이 줄어들고,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마저 가격하락과 수요 부진에 고전하고 있다. 철강과 무선통신기기의 수출도 크게 감소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21일 '2023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우리나라의 상품수지는 95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내년에는 상품수지 흑자 규모가 230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행도 지난 9일 발표한 우리나라의 '10월 국제수지'에서 올들어 지난 10월까지 상품수지는 131억2천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집계했다. 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같은 기간 무역수지는 355억8천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올들어 지난 10월까지 같은 대한민국의 상품 수출입을 토대로 작성한 상품수지와 무역수지가 무려 487억 달러나 차이가 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통계로 추정하면 올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5백억 달러 이상의 적자가 예상되는데 정부는 95억 달러의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하는 상황, 올해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상품수지와 관세청의 통계를 바탕으로 산업부가 발표하는 무역수지의 격차는 6백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수량, 같은 종류의 상품 수출입을 토대로 작성하는 '무역수지'와 '상품수지' 통계가 이처럼 큰 격차를 나타내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상품수지와 무역수지의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상품수지와 무역수지가 다르게 나타나는 가장 큰 요인은 통계를 작성하는 가격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산업부가 발표하는 무역수지는 관세청이 통관시점의 가격을 기준으로 집계하는 속보치로 수출은 FOB(Free On Board: 본선 인도 가격) 가격 기준으로 하지만, 수입은 CIF(Cost Insurance Freight: 운임과 보험료 포함 가격) 기준으로 작성한다. 무역수지 작성 시 수출은 상품 가격만을 반영하는데 반해, 수입은 상품 가격에 운송료와 보험료를 더하는 만큼 더 비쌀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은행이 작성하는 상품수지는 수출과 수입 모두 FOB 기준으로 작성한다. 수출은 산업부의 무역수지나 한국은행의 상품수지 모두 FOB 기준이지만, 수입 통계에서 한국은행의 상품수지는 FOB 기준으로 관세청의 무역수지는 CIF 기준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관세청이 작성하는 무역수지 상 수입 금액에는 운임과 보험료가 포함되는 만큼 한국은행이 작성하는 상품수지 상 수입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결국 관세청의 무역수지 통계상 적자 규모는 한국은행의 상품수지 적자 규모보다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계상 시점의 차이다. 무역수지는 통관 시점을 기준으로 작성하는 만큼, 수출입 신고 시점을 기준으로 통계를 작성하지만, 상품수지는 소유권 이전 시기를 기준으로 통계를 작성한다. 대부분 통관 시점과 소유권 이전 시점이 같지만, 수주한 뒤 2-3년 뒤 인도할 때까지 선수금과 중도금, 잔금을 차례로 지급하는 선박 같은 상품은 통관 시점과 소유권 이전 시점이 다르다. 상품수지는 수출입 대금을 순차적으로 받을 때마다 받은 만큼을 수출 통계에 반영하지만, 무역수지는 상품을 완성해 최종 인도하는 통관 시점에 수출 통계에 반영한다.
마지막으로 포괄 범위의 차이다. 관세청의 무역수지는 통관하는 상품을 모두 통계에 반영한다. 통관기준 수출입에는 우리나라의 관세선을 통과한 모든 실물자산의 이동상황, 즉 국내외로 유출입되는 상업적 거래에 의한 물품의 이동뿐만 아니라 비상업적인 물품의 이동도 모두 포함한다. 자동차 수출입과 같은 상업적 거래뿐만 아니라 해외전시회 참가나 바이어와의 상담을 위해 국내에서 해외로 보내는 전시품 또는 견본품, 유학생이 국내로 들여오는 이사화물 등 관세선을 통과하는 것은 모두 수출입으로 잡는다.
반면 해외 중계 무역처럼 국내 관세선을 통과하지 않는 상품의 수출입은 무역수지 통계에서 제외된다. 한국은행은 포괄범위조정을 통해 통관수출입에서 국제수지 기준 수출입이 아닌 재수출입, 견본물품 수출입 등을 제외하고, 밀수출입 적발실적 등을 더해 상품수지를 작성한다.
한국은행 국제수지팀 임인혁 팀장은 "무역수지는 속보성 수치로 우리나라의 산업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쓰입니다. 반면 상품수지는 국제수지의 일부로 한 국가의 지급 능력의 변화 측면을 중요시합니다. 교역 규모가 커질수록,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짓는 등 글로벌화가 확대될수록 상품수지와 무역수지의 차이는 커집니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긴축에 따른 경기 침체, 대한민국의 주력상품인 반도체의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 미국의 대중 금수조치에 따른 중국으로의 수출 감소,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원유와 광물 등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에 의존하는 원자재의 가격 상승으로 우리나라의 교역조건은 상당기간 어려움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10월에는 관세청이 작성하는 무역수지는 물론 한국은행이 작성하는 상품수지도 14억8천만 달러의 적자를 나타냈다. 하지만 올해 5백억 달러를 넘어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보다 무역적자 규모가 크다며, 대한민국의 대외 지급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위기의식은 지나치다.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지난 10월 1천450원에 육박했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부터 급격히 하락해 지난 23일에는 1달러에 1천280원을 기록했다. 경제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는데도 환율이 안정세로 돌아선 것은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가 완화된 데도 원인이 있지만, 우리 경제 현실에 대한 지나친 위기의식이 완화된 것도 한 요인이다. 연기금의 해외투자에 대한 환헤지 한도를 확대해 달러 공급을 늘리도록 하는 등 정책당국의 노력도 한몫하고 있다.
다가오는 2023년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간 갈등으로 대표되는 지정학적 위기, 이로 인해 촉발된 에너지 위기, 미국 연준의 긴축에 따른 부채 위기가 한꺼번에 닥치면서 1970년대 3고 시대, 나아가 1940년대 2차 대전 시기 이후 가장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책당국이 정확한 통계를 작성해 현실을 제대로 알리고, 그 통계를 바탕으로 과감한 정책을 수행하는 위기의 파도를 헤치고 항해하는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용철 기자yc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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