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과 관계 강화 힘쓴 프라티니 前 이탈리아 외교장관 별세

김태훈 2022. 12. 2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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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외교부 장관을 두 번에 걸쳐 지내며 한국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또 두 나라 관계 개선에 힘썼던 프란코 프라티니 현 이탈리아 국가평의회 의장이 65세의 이른 나이에 갑자기 별세했다.

첫번째 외교장관 임기 도중인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에서 이탈리아가 연장 접전 끝에 한국에 1-2로 져 8강에 못 오르고 탈락했을 때 고인은 "비열하고 수치스럽다"며 해당 경기의 심판을 맹비난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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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루스코니 내각서 외교 책임져… 향년 65세
2009년 방한 시 "韓·伊, 모든 분야서 협력해야"
이탈리아 외교부 장관을 두 번에 걸쳐 지내며 한국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또 두 나라 관계 개선에 힘썼던 프란코 프라티니 현 이탈리아 국가평의회 의장이 65세의 이른 나이에 갑자기 별세했다.
프란코 프라티니(1957∼2022) 전 이탈리아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이 이탈리아 현지 언론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로마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암 진단을 받고 짧은 기간 투병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1957년 로마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법관 자격을 취득해 1980년 초중반 판사로 일했다. 이후 행정부로 자리를 옮겨 부총리 보좌관, 총리실 사무국장 등을 지낸 뒤 본격적으로 정계에 뛰어들어 1996년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가 총리실 사무국장으로 있을 때 모신 이가 바로 세 차례(1994년 5월∼1995년 1월, 2001년 6월∼2006년 5월, 2008년 5월∼2011년 11월)에 걸쳐 총리를 지낸 이탈리아 정계의 거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6)다. 고인을 눈여겨 본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의 두 번째 총리 임기 도중인 2002년 4월 그를 일약 외교장관에 발탁했다. 이후 3번째로 총리가 된 2008년 11월 다시 고인을 외교장관에 임명했다. 이렇게 해서 고인은 2002∼2004년, 그리고 2008∼2011년 이렇게 두 번에 걸쳐 5년가량 이탈리아 외교를 책임지게 됐다.

고인은 임기 동안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9년 9월 한국을 방문해 유명환 당시 외교부 장관과 양자회담을 갖고 한국·이탈리아, 그리고 한국·EU 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방한을 계기로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모든 분야에서 양국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이탈리아인들이 한국에 관해 더 많이 알기 위해 방송이나 영화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인은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는 한국과 뜻을 같이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도 규탄 입장을 분명히 하며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한국 정부 입장을 강력히 지지했다.
2009년 9월 방한한 프란코 프라티니 당시 이탈리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유명환 외교부 장관과 양자회담을 하기 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외교부 제공
물론 한국에 대한 고인의 태도가 늘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첫번째 외교장관 임기 도중인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에서 이탈리아가 연장 접전 끝에 한국에 1-2로 져 8강에 못 오르고 탈락했을 때 고인은 “비열하고 수치스럽다”며 해당 경기의 심판을 맹비난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당시 이탈리아팀의 프란치스코 토티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한 것, 한국 골대 앞 1대1 상황에서 오프사이드가 선언된 것 등을 놓고 ‘심판이 개최국 한국에 유리하게 편파적으로 경기를 진행했다’는 비난이 이탈리아 국내에서 들끓었는데 고인도 그런 움직임에 편승한 셈이다.

고인은 외교부를 떠나 있던 2004년부터 2008년까지는 EU의 법률담당 집행위원을 맡아 활동했다. 올해 초 이탈리아 국가평의회 의장에 임명됐으며 사망 시점에 이 직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국가평의회는 행정부의 각종 정책 집행이 적법한지 심사하는 일종의 감사기관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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