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우승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단장 교체’로 시끌벅적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2. 12. 2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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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 사태로 본 프로야구 단장의 현주소
감독·선수 못지않게 전력 강화에 절대적 역할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SG 랜더스는 2022년 가장 환상적인 한 해를 보냈다.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와이어 투 와이어(개막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1위를 유지하는 것) 우승을 차지했다. 정규리그뿐만 아니라 한국시리즈 왕좌에까지 올랐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난 12월 중순, SSG 일부 팬은 신세계백화점 앞 등에서 트럭 시위를 했다. SK 와이번스 인수 뒤 창단 첫 우승을 거둔 지 불과 한 달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팬들의 트럭 시위는 류선규 SSG 단장이 갑자기 '자진사퇴'(라 쓰고 경질이라 읽히는)를 한 뒤 불거진 비선 실세 의혹 때문이었다. 정용진 구단주와 친분이 있는 모 인사가 직위도 없이(SSG 구단은 그를 '고문'으로 칭했다) 구단 내에서 실력 행사를 했다는 것이었다. 트레이드와 FA 계약에 관여했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왔다. SSG 구단은 '비선'은 없다고 얘기하지만 직위나 직책 없이 구단 업무에 깊숙이 관여했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전형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SSG 시즌 성적이 좋다고 어물쩍 넘어가서도 안 될 일이다. 위계가 무너지면 반드시 나중에 탈이 난다.

지난 11월8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KBO리그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에서 키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SSG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필이면 우승 직후 단장 경질…교체 타이밍 문제

사실 비선 의혹과는 별개로 류선규 단장의 퇴장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보통 스포츠 구단이 매각되면 기존의 사장·단장은 물러나고 새로운 소유주의 사람들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SK에서 SSG로 구단이 인수된 시기였던 2021년 1월은 새 시즌을 바로 코앞에 뒀던 터라 기존의 민경삼 사장-류선규 단장 체제가 그대로 유지됐다. 이전 쌍방울 레이더스나 현대 유니콘스처럼 모그룹 사정 때문에 구단이 완전히 팔린 경우가 아니라서 100% 고용 승계가 약속된 점도 없지 않았다. 이들은 SK의 마지막 사장, 단장이자 SSG의 초대 사장, 단장이 됐다.

약속된 계약 기간이 만료됐을 때 구단의 미래 방향성에 따라 재임용 등이 결정될 수 있는데, 교체 타이밍이 아쉬웠다. 우승의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우승 단장을 잘랐다'는 부정적 인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시즌 6위에 머물렀던 2021 시즌 말에 경질했다면 모양새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을 터다. 항간에는 류 전 단장이 시즌 내내 퓨처스(2군) R&D 센터장이었던 김성용 현 단장을 경계했다는 설도 있다. 김 단장은 24년 동안 야탑고 감독을 지내다가 2021년 11월 SSG로 스카우트됐다. 차기 단장 혹은 또 다른 1군의 직책을 염두에 두고 SSG그룹 쪽에서 영입했다고 볼 수 있다. 비선으로 지목된 인사와 김성용 단장의 친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우승팀 단장이 경질된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2021년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이룬 KT 위즈의 이숭용 단장도 오프 시즌 때 단장직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2군 육성총괄을 맡고 있는데 사실상 강등인 셈이다. SSG 랜더스 전신인 SK 와이번스 때도 구단 창단 첫 우승 이후 명영철 단장이 타의에 의해 직을 내려놨다. 신영철 당시 SK 사장이 "후배들에게 길을 터줄 때가 됐다"며 사퇴를 종용했다. 명 전 단장 이후 민경삼, 염경엽, 손차훈 등 야구인 출신 단장으로 꾸려가던 SK는 2020년 11월 비(非)야구인 출신인 류선규 전 단장을 임명했었다. 김성용 현 단장은 프로 지명은 받지 못했지만 실업야구 선수로 뛴 야구인 출신이다.

류선규 SSG 랜더스 단장이 지난 12월8일 오전 서울 강남구 호텔 리베라 청담 베르사이유홀에서 열린 '2022 뉴트리디데이 일구상' 시상식에서 프런트상을 수상 후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뉴스1

최근 낙하산 대신 야구인 출신 단장 선호하는 추세

2010년 이전만 하더라도 프로야구단 단장은 비야구인 출신의 모그룹 인사가 내려왔다. 하지만 2008년 히어로즈가 창단될 때 박노준 현 안양대 총장이 프로야구 최초 선수 출신 단장이 됐고, 2010년 민경삼 SK 단장, 그해 8월 김태룡 두산 단장으로 이어졌다. 민경삼·김태룡 단장이 성공적으로 구단을 운영하면서 야구인 출신 단장은 점차 늘어났다. 감독 출신으로 단장(박종훈·염경엽·장정석·손혁)이 되거나 반대로 단장 출신으로 감독이 되는 사례(양상문·염경엽)도 나왔다. 야구인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현시점에서 10개 구단 단장들 면모를 보더라도 홍준학 삼성 라이온즈 단장, 임선남 NC 다이노스 단장, 나도현 KT 단장 정도만 비야구인 출신이다. 삼성은 비야구인 출신 단장이 계속 임용되고 있는데, 홍 단장의 경우 2016년 10월 취임해 현재까지 직을 유지 중이다. 비야구인 출신 단장이라 해도 예전처럼 모그룹에서 내려온 낙하산 인사가 아닌 구단 프런트에서 잔뼈가 굵은, 내부 승진 사례가 대부분이다. 임선남 단장이나 나도현 단장은 NC·KT 야구단 창단과 함께한 인물이다. 나 단장은 비야구인 출신 최초 프로 스카우트이기도 했다.

오히려 야구인 출신이 구단 밖에서 영입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장정석 KIA 단장은 히어로즈에서 매니저·운영팀장·감독 등을 역임했다. 염경엽 LG 감독 또한 SK 단장 시절 외부에서 영입됐다. 2019년 9월부터 롯데 자이언츠 단장을 맡은 성민규 단장도 그룹 출신 낙하산이나 내부 승진이 아닌 순수하게 인터뷰를 거쳐 단장으로 발탁됐다. 손혁 단장 또한 지난해 전력 강화 코디네이터로 영입되기 전까지는 공주 출신이라는 점 외에는 한화 이글스와 연이 없었다. 동기생인 정민철 단장이 3년 임기 만료로 물러난 뒤 단장으로 임명됐다.

야구인이든 비야구인 출신이든 최근에는 야구 전문성을 갖춘 단장을 중용하는 추세다. 데이터 야구가 득세하면서 현장 사령탑인 감독 못지않게 프런트 역량도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선수단 구성은 전적으로 단장의 몫이다. 메이저리그와 달리 KBO리그는 구단 내 수입이 아닌 모그룹 지원에 많이 의존한다는 점에서 단장의 행보가 제한되는 점은 있다.

일례로 류선규 전 단장은 정용진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추신수(연봉 27억원), 김광현(연봉 80억원·이상 2022년 기준)을 메이저리그에서 데려올 수 있었다. 반면 정민철 전 단장은 한화그룹 지원 부족으로 3년 내내 어려움을 겪다가 물러났다. 취임 전 구상했던 바대로 구단 운영을 할 수 없는 여건이었다.

프로구단 단장을 평가하는 잣대에는 여러 개가 있다. 팀 성적이 제일 우선이겠지만 사실 투자 없이 단장의 역량만으로 팀 성적이 날 수는 없다. 신인 드래프트나 트레이드, 외국인 선수 구성 등으로 전력을 메울 수는 있겠으나 이 또한 KBO리그 선수층 자체가 엷어서 한계가 있다. 모그룹 지원 없이 꼴찌 팀을 재건한 드라마 《스토브리그》 속 백승수 단장은 그저 환상 속 인물에 불과하다. 물론 궁금한 점은 있다. 만약 그룹 지원마저 훌륭한 구단에 백 단장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긴 그런 야구단에서 백 단장 같은 사람을 영입했을 리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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