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예산안 국회 통과…쟁점 법안도 신속·합의 처리해야
(서울=연합뉴스) 여야의 힘겨루기로 진통을 겪던 내년 예산안이 마침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국회는 24일 본회의에서 정부 원안보다 3천억 원가량 줄어든 638조7천276억 원 규모의 수정안을 찬성 251표, 반대 4표, 기권 18표로 통과시켰다. 협상 막판 최대 쟁점이었던 소위 '윤석열표 예산'과 '이재명표 예산'은 각각 절반씩 감액됐다. 윤석열 정부가 신설한 행정안전부 경찰국·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이 50% 삭감된 수준으로 타결된 것이다. 국회는 법인세법, 소득세법,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 등 예산 부수 법안 19건도 의결했다. 초부자 감세라는 비판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반박이 맞부딪쳤던 법인세의 경우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서 세율을 1%포인트씩 인하하는 것으로 조율됐다. 한때 준예산 편성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거론됐으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한 발짝씩 양보해 최종 합의에 이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체적으로 여야가 주고받기식으로 각자의 명분과 실리를 챙긴 것으로 평가된다. 여·야·정 모두 불만이 있겠지만 대승적으로 수용하고 이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몇몇 문제점은 꼭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법정 처리 기한을 22일이나 넘긴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헌법 제54조는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날이 지난 2일이었다. 2014년 소위 '국회 선진화법'을 도입 이후에는 예산안이 기한 내에 처리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길어야 8일 이내에 처리됐는데 이번에는 무려 3주 이상 늦어 '최장 지각' 처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법정 기한이 지나면 소수의 여야 지도부가 비공개 협상을 통해 타결을 모색하게 된다. 이 때문에 올해도 결국 '밀실 합의'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게 됐다. 한 해 나라 살림의 청사진인 예산안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등 정쟁의 소모품으로 활용되는 듯한 모습도 반복됐다. 2024년도 예산안을 다루게 될 내년 말은 총선을 수개월 앞둔 시점이라 여야의 대립이 더욱 첨예화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예산 설계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민생을 다루는 신성한 작업이다. 여야는 예산안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이 국민의 마음을 얻는 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예산안 통과로 세밑 정국이 한고비를 넘겼지만, 정치권은 아직 첩첩산중이다. 일몰 조항 때문에 연내에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과 근로기준법 등 쟁점 법안들이 남아 있고 이태원 국조의 연장 여부도 논란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여야의 정책과 노선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예산안 합의처럼 협치의 정신을 발휘한다면 상생의 해법을 찾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의 안전운임제, 국민의힘은 근로기준법의 추가연장 근로제 연장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두 제도의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면 일몰 시한에 쫓겨 졸속 처리할 것이 아니라 1∼2년 만이라도 연장해 차분히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한국전력공사법과 가스공사법 개정안은 초당적으로 신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천문학적인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과 가스공사는 회사채 발행 한도를 당장 늘리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전기나 가스를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통과한 한전법 개정안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돼 충격을 준 바 있는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이태원 국조 연장 여부의 경우 진행 경과를 지켜본 뒤 판단해도 늦지 않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지난 21일에야 첫 현장 조사를 했을 정도로 지지부진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시작해보기도 전에 연장을 얘기하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으로 비친다. 다음 달 7일인 기한까지 정쟁을 배제한 채 내실 있고 압축적으로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우선이고 미진하다면 그때 가서 국민 여론을 듣고 판단하면 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할 소지가 큰 국면이다. 때가 때인 만큼 여야가 정치의 본질인 민생을 최우선 가치로 머리를 맞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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