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100일의 시련, 100일의 기적 [송호근의 현장관찰기]

2022. 12. 2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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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동력 ‘나의 기계’를 살려라
롤러 위를 다시 흐르는 쇳물은 안다
철강인의 열정은 힌남노보다 강했다

[송호근 교수의 현장관찰기]

포스코에 다시 불이 켜졌다. 영일만 수평선을 향해 일자로 뻗은 세계 최고의 공장, 한국의 자부심이자 산업 동맥인 포스코 굴뚝에서 맑은 증기가 뿜어지는 풍경은 50년 동안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불이 꺼졌다. 쇳물을 쏟아내던 고로도 멈춰 섰다. 수마가 덮쳤다는 뉴스가 타전됐다.

포스코 임직원들은 물에 잠긴 현장에서 망연자실했다. 포항시민과 일반 국민은 절망과 희망이 엇갈리는 시간을 보냈다. 공장을 폐쇄하고 다시 지어야 한다는 비탄의 신음도 들렸다. 공장폐쇄는 한국 산업의 파산을 뜻한다. 지상 1~2미터까지 차오른 물이 지하 15미터 공간을 채우고도 모자라 땅 위로 솟구친 것임을 알아챈 시민은 거의 없었다.

세계철강사에 기록될 침수 사태에서 결국 희망을 건져낸 것은 포스코의 저력이었다. 임직원은 공장에서 밤을 샜다. 100일의 사투였다. 그리고 불을 켰다. 생산시설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시련 100일 끝에 기적을 건져낸 그들의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얼룩졌다.

100일의 기적을 일궈낸 현장을 필자가 둘러봤다. 지하엔 진흙 얼룩이 묻은 기계들이 굉음을 냈고, 작업반원의 표정은 조심스레 밝아졌다.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여기에 내놓는 현장 관찰기가 신년을 맞는 국민의 마음에 희망의 불빛이 되기를 바래 본다.

침수피해 복구 브리핑을 듣고 있는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 [사진제공=포스코]
◆ 물이 차오릅니다!

이백희 제철소장은 재직 35년 차 베테랑이다. 굴뚝 연기 색깔만 봐도 뭐가 잘못됐는지 단번에 안다. 힌남노가 포항 상공을 거쳐 울릉도로 빠져나가던 작년 9월 6일 새벽 6시경 집무실에서 밤을 새운 이소장은 최고 경영진에게 무사함을 보고했다. 밤을 꼬박 지샌 서울 본사 최고경영진들도 한숨을 놨다. 폭우도 잦아들었다. 안도감도 잠시, 이소장은 폭발음을 들었다. 제철소 압연공장 인근에 있는 수전변전소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전등이 나갔고 공장 전역이 깜깜해졌다.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장님, 물이 차오릅니다!” 이소장은 창문으로 공장을 가로지르는 중앙대로에 뭔가 넘실대는 흐름을 목격했다. 희미한 새벽 여명 속에서 그게 뭔지 정확히 가름하기 어려웠는데, 물!임을 직감했다. 물은 이미 공장 전역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주차된 자동차가 나뭇잎처럼 둥둥 떠다녔다. 창사 이래 초유의 수마(水魔)였다.

◆격류로 돌변한 냉천(冷川)

포항시민들이 찬내로 부르는 냉천은 지난 100년간 그 존재감을 드러내 본 적이 없다. 포스코 왼편을 흐르는 형산강에 비해 그 존재 자체가 미미했다. 건천(乾川)이라 불릴 만큼 수량은 적었다. 주변에 수변공원을 꾸미고 산책로와 체육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더 유용해 보인 까닭이다.

강폭을 좁히고 양안에 시설을 유치해도 범람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형산강이라면 몰라도 ‘냉천과 범람’은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짝이었다. 그 고정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건천은 물을 불렸고 급기야 격류로 돌변했다.

포스코 인근에 위치한 냉천은 지난 100년간 존재감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다. 멀리 보이는 다리는 냉천교. [송호근 교수]
6일 새벽부터 쏟아진 폭우는 시간당 101mm, 4 시간에 354mm를 기록했다. 기상청에 의하면 200년 기록을 갈아치운 폭우였다. 포스코 서쪽 담장에서 약 10킬로 떨어진 가뭄 방지 오어사지(池)가 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냉천의 수원지인 오어사 저수지를 떠난 물이 포스코 서쪽 3문과 담장에 도달하는 데에는 약 90분 정도, 이소장의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 그 시각이었다.

격류는 거칠 것이 없었다. 통나무와 바윗돌을 굴리고 주변 펜션을 격타했다. 통나무, 냉장고, 가재도구가 포스코 담장에서 불과 50미터 떨어진 냉천교 교각에 걸렸다. 교각이 댐으로 변했다. 물길이 막힌 격류가 새 길을 뚫었다. 왼쪽 이마트를 강타했고 포스코 담장을 무너뜨렸다. 620만 톤의 물이 인근 일대를 수장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 280만평 부지 중 110만평이 물에 잠겼다. 고압 15만 볼트 전압이 걸린 2열연공장 변압기가 그때 터졌고, 지하설비가 진흙물에 묻혔다. 순식간이었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 포항에는 비가 잘 내리지 않는다. 건천이 많고 저수지는 절반가량 말라 있다. 포스코 왼편을 흐르는 형산강은 수중보가 설치돼 수량과 유속이 통제된다. 냉천은 애초에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신체 전면 근육과 옆구리가 단단한 권투선수가 등 쪽 중간 부분을 무심결에 강타당한 것이다. 권투경기라면 반칙이겠지만 기후 위기가 어디 그런 걸 가리겠는가. 올해 포항 강수량이 유난히 많은 것은 기후 위기 탓도 있겠는데, 냉천이 성난 격류가 될지 모른다는 상상을 아예 지워버린 지역의 통념도 이제 점검을 필요로 한다.

◆신(神)의 한수!

이소장은 즉시 상황대책반을 꾸렸다. 그날부터 현재까지 김학동 부회장 주재로 아침 8시, 오후 5시 두 차례 대책 회의가 계속됐다. 서울 최고경영진과 직원들도 비상대기했다. 초유의 사태 앞에 제철소 현장 임원진은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전원과 에너지원이 모두 차단되고 생산시설이 물에 잠긴 공장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기록적인 폭우로 물에 잠긴 공장을 되살리기 위한 복구공정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
‘이제 끝난 건가?’ 임직원의 가슴 속에 고인 두려운 질문이었다. 전날 오후 5시, 제철소 전 공장가동을 잠시 중단한다는 경영진의 결단이 내려진 상태라서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공장 컴퓨터에 조업중단 지시가 몇 차례 떴다. 최소한의 비상 근무 인원만 남고 모두 귀가해서 사태를 관망해야 했다. 작업반장들도 의아해했다. ‘태풍을 한 두번 맞은 것도 아닌데 왠 조업중단?’

365일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작업을 일시 중단한다는 것은 일 10만톤의 생산 손실을 감수하는 비상 결단이었으니 현장 직원들의 의구심이 터져 나올 만했다. 그래도 현장 임원진은 조업 중단을 관철했다. 고로를 세웠고, 전원을 내렸다. 그게 ‘신의 한 수’였음을 물 바다가 된 현장을 보고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원이 걸린 설비가 폭발했을 것이다.

실제로 물바다가 된 도금공장 지하 용융아연도가니(Pot)가 6일 새벽에 폭발했다. 460도 용융아연이 물과 뒤섞이면서 두어 차례 폭발했는데 그 충격으로 로봇 팔이 떨어져 나갔고 천장에 매달린 기계가 파손돼 무너져 내렸다. 당시 15명 작업반원은 통제실로 황급히 대피해서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파괴된 도가니를 채운 물속에 오어사 저수지에서 떠내려온 잉어와 자라가 헤엄치는 모습이 발견됐다.

물고기는 수해공장 전역에서 발견됐다. 전원이 켜진 상태였다면 그놈들은 감전으로 죽었을 것이었다. 전 공장에 설치된 전동 모터 44,000개, 전력으로 작동하는 설비 수만 개 역시 합선 때문에 폐기 처분해야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하에서 작업하던 직원들이 감전되거나 익사하는 상상은 몸서리가 쳐진다. 참사가 달리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공장폐쇄를 뜻한다. 포항제철소가 폐공장이 되는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으랴? 한국 산업의 동맥이 끊어진 것과 다름없다.

◆명장님, 어떻게 해요?

그런데 초기에는 심정이 그랬다. 직원들이 막힌 길을 돌아 물에 잠긴 작업실로 들어선 것은 정오 무렵, 지옥을 목격했다. 지상 물은 바다로 빠져나갔는데 지하엔 여전히 물이 찰랑거렸다. 내 인생의 동반자, 내 가족 생계를 책임진 ‘나의 기계(my machine)’가 수장된 것을 목격한 마음은 어땠을까? 대책이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재직 46년 차 손병락 전기명장도 같은 심정이었다. 46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현장 작업반장이 울면서 물었다. “명장님, 이제 어떡해요?” 명장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명장의 낙담은 모두를 주저앉힌다. 몇 초가 흘렀다. 손명장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겨우 말했다. “뭘 어떡해? 어찌해 봐야지!” 손명장은 바로 2열연공장으로 달려갔다.

포스코 2열연 부문의 침수 피해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관계자들. [사진제공=포스코]
◆암흑천지 제철소

변압기 폭발로 변전소가 기능을 멈추고 제철소는 암흑이 됐다. 전화는 물론 핸드폰도 먹통이었다. 장비와 도구가 물에 잠겼다. 손전등과 촛불로 길을 밝혔다. 변전소의 물을 퍼내고, 부품을 교체하고, 흙탕물을 닦아낸 지 삼일째, 암흑천지에 불이 들어왔다. 공장간 통화가 재개되자 복구 작업이 시작됐다. 전등이 달린 안전모를 쓰고 물을 퍼내던 직원들은 그제야 한시름을 놨다. 젖은 부품을 말리는 드라이어가 속속 공수됐고, 물펌프가 가동됐다.

협력사 직원과 광양과 서울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그룹사 직원들이 삽과 양동이를 들고 지하에 내려가 뻘흙을 퍼 날랐다. 제철소 압연지역, 길이 400미터 지하통로를 두더지처럼 파고들었다. 끝도 없는 수작업이었지만 침수된 설비가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처참한 광경이 따로 없었다고 했다. “저걸 다시 쓸 수 있을까?” 며칠 밤을 새운 직원들의 가슴 속엔 그런 근심이 물결쳤다. 잠시 쉬는 시간에 잠도 오지 않았다.

◆고로를 살려라!

제철소는 고로가 생명이다. 고로는 쉬지 않는다. 고로가 서면 제철소도 정지된다. ‘고로를 세운다’는 말은 전원과 에너지 공급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다만 쇳물을 뽑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다행히 냉천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고로지역은 물에 잠기지 않았지만 휴풍(고로 정지)이 문제였다.

휴풍은 길어야 7일을 넘기지 못한다. 7일을 넘기면 내부에서 연소되던 코크스와 철광석 용융물이 내화벽에 엉켜 결국 폐기해야 한다. 고로를 건조하는 데에만 5,000억 원이 들고 기간은 2년 남짓 소요된다. 휴풍은 7일이 생명선이다. 그런데 용선(용융된 철광석)을 실어 나르는 잠수함 모양의 토페도래들카(TLC) 속 용선이 시간지체와 폭우로 이미 굳었다는 문제에 봉착했다. 고로에서 분출된 용선량은 임의로 조작할 수 없기에 그것을 감당할 TLC를 충분히 마련해야 하는 게 고로반의 철칙이다.

포스코 도금공장에서 관계자들이 복구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
시간이 되면 용선은 쏟아진다. TLC가 없다면 고로를 세워야 하고, 7일을 넘기면 고로를 폐기해야 한다는 이 운명적 법칙 앞에 고로반은 난상토론에 들어갔다. 이미 TLC 54대 중 10여 대는 수리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포크레인을 동원해 굳어버린 용선을 깨뜨리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난상토론 끝에 사(沙)처리를 시도하기로 했다. 용선을 모래 위에 쏟아 일단 간수하는 것. 그러나 용선량을 감당할 수 없었고 사철을 제강 공장에서 그대로 쓸 수도 없었다.

한 번도 휴풍을 경험해보지 않은 대가는 컸다. 시간이 되면 고로는 용선을 쏟아낸다. TLC에 실리지 않은 용선이 지하 철로에 그냥 쏟아지면 그야말로 대형 사고다. 지하 침수처럼 용선 침수가 일어나 고로를 더이상 운용할 수 없다. 처음에는 적재용량이 절반 정도 남은 TLC를 급하게나마 투입했는데 가동되기 시작한 고로를 감당하기란 불가능했다.

“이제 고로를 죽여야 하는가?” 고로를 책임지고 있는 김진보 부소장은 혼란스러웠다. 왜 이런 시련을 나에게 내리는지 원망하기도 했다. 래들카를 구하는 것! 수소문해보니 다행히 광양제철소에 12대가, 현대제철에 5대가 있었다. 바지선으로 급히 운송하여 제철소로 공급됐다. 17대가 확보되자 한숨을 돌렸다고 했다.

휴풍 6.5일을 경과한 마지막 고로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침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제강, 압연 공장의 설비들이 문제였을 것이다. 필자가 고로반을 방문한 그 시각, 토페도래들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선로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제강 공장으로 가는 용선은 추운 날씨에도 열기를 뿜어냈다.

◆My Machine을 지켜라!

포스코 직원들의 기계 사랑은 유별나다. 가족 다음으로 소중하게 다룬다. 평생 그 기계와 생사를 같이한다는 신념은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렵다. ‘나의 기계’ 상태는 항상 컴퓨터에 기록되고 공개된다. 문제가 발생하면 새벽에도 달려온다. 내 기계이고, 국민의 기계이고, 후손들의 기계다. 성장과 풍요를 생산하는 기계가 잠겼다. 뻘흙을 뒤집어썼다. 재가동이 가능한지 불투명하다. 지상 설비들은 닦아내면 충분하지만 물에 잠긴 기계는 어찌하랴?

흙을 닦아내고 부속품을 갈아 끼우고 분해조립을 계속했던 지난 100여일 동안 포스코 임직원들의 마음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100일 동안 현장과 사무실에서, 집무실에서 새우잠을 잤다. 압연공장과 도금공장, 복구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시각에도 수십킬로 미터나 되는 전선뭉치와 수천 개 전기설비와 변압기, 수만 개 모터, 로봇시설과 롤러, 계기판과 제어 장비를 꼼꼼히 수리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시설 현장을 둘러보는 필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났다. 바닥은 미끄러웠고, 벽면에 진흙이 묻어 있었고, 설비는 제자리를 찾아 새로 설치한 흔적이 역력했다. 제강공장은 지하 20미터, 무거운 쇳덩이라도 물속에서는 부력을 받아 조금씩 흔들린다.

기계를 연결한 파이프가 헐거워지기도 하고, 덩치가 큰 기계는 수압에 밀려 자리 이동을 한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 철강 생산과정에서 기계설비가 제대로 작동해야 함은 불문가지, 수십일 째 물에 잠긴 기계들이 어떤 오작동을 일으킬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임직원들은 묵묵히 복구 작업에 매진할 따름이었다.

포스코 공장 내부의 복구 상황을 둘러보고 있는 송호근 석좌교수와 포스코 관계자들. [사진제공=포스코]
배수 작업의 공신은 이철우 경상북도 지사. 지하 공간 물을 빼는 데에 포스코가 보유한 펌프로는 효율성이 없었다. 진흙 때문에 펌프가 고장나기 일쑤였다. 침수 이틀째에 현장을 방문한 이 지사가 소방청에 긴급 지원요청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용량이 큰 방사포 2대가 도착했다. 방사포를 가동한 소방관은 불과 이틀 만에 주요 공간의 물을 빼냈다. ‘대한민국의 경제 기둥이 살아야지요!’ 임무를 마친 소방관이 떠나면서 남긴 그 말에 임직원들은 다시 기운을 냈다. 흙탕물 제거는 수작업이어야 했다. 협력사 직원과 그룹사 직원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와 손을 빌려 줬다. 복구 작업 100일간 연인원 130여만 명이 십시일반 힘을 보탰다. 휴일을 빼면 하루 1만5000명꼴. 김경석 노조위원장은 노조대의원들과 함께 음료수, 커피, 빵과 타월을 들고 작업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임원, 직원, 노조가 한 몸이 됐다. 침수된 My machine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공장 110만평 침수, 모터 13,500개 및 설비 수천 개 피해가 집계됐다. 상공정(제선과 제강)이 그나마 가동되기 시작했으니, 하공정(압연, 냉연, 도금)의 정상화가 시급했지만 침수된 기계들이 제대로 작동할지 확신하는 사람은 없었다.

◆140톤 모터를 살려라!

복구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선 모터를 뜯어 물기를 제거했다. 흙을 닦아냈다. 쓸 수 있을지 의구심을 버렸다. 건조기로 말렸고 분해와 조립작업을 반복했다. 손병락 명장은 2열연공장 대형모터 앞에 섰다. 140톤짜리를 포함하여 모두 13대. 압연과정의 동력을 만드는 주기 모터가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서 있었다.

포스코 직원들이 후판제품야드 등에 쌓인 진흙을 치우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
일본 기술자들은 새로 주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제작에만 12개월, 한 대당 50억 원, 그동안 압연공장은 가동을 중단해야 한단다. 주기 모터를 응시하던 손명장이 말했다. “해보지요, 뭘”. 일단 커버를 벗겨내고 동체를 분리한 후 오물을 제거했다. 코일 사이 오물은 오작동을 일으킨다. 평생 전기 모터를 다뤄온 손명장의 눈에는 살아날 것 같아 보였다고 했다. 며칠간 주기 모터의 부품을 뜯고 만지고 살핀 결과는 기적이었다.

시운전을 해보니 이전과 동일한 굉음을 내며 돌았다고 했다. 눈물이 돌았다. 상공정과 후공정의 대형모터 45대와 전기설비, 제어 장비들이 그렇게 살아났다. 침수된 13,500개 중 3%가 죽었는데 신속히 교체됐다. 손이 모자랐다. 침수공정 모터와 장비들을 전국 각지 정비소로 보내 수리했는데 대부분 살아서 돌아왔다. 10월 중순 경 자신감이 희미하게 움텄다고 했다. 마치 저승사자에게 불려갔다가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포스코플랜텍 어느 직원이 말했다. “운명을 걸고 했어요.”

이제는 모터를 돌리기 위한 대형 판넬(전기제어판) 복구가 관건이었다. 그 판넬은 일본 제품, 모터작동에 필요한 대형 드라이버로 제작하는 데에만 6개월이 걸리는 첨단 장비였다. 매주 현장을 지휘했던 최정우 회장이 직접 나섰다. 다행히 일본 회사에 완성된 제품이 출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목적지는 인도 철강회사(JSW)였다.

최회장이 인도 경영진에 긴급타전을 했다. 철강협회 부회장인 그는 고맙게도 최회장의 절박한 요청을 들어줬다. 삼일 후 판넬을 실은 비행기가 착륙했고 급히 공수됐다. 드디어 2열연공장에도 불이 들어왔다. 행운이었다.

◆고객사가 낭패하지 않게

생산시설 부분 복구와 동시에 포스코 경영진은 고객사 관리에 나섰다. 공급 차질을 빚으면 전국 산업체에 생산 차질이 야기되고 시장 혼란을 가중시킨다. 침수 초기, 심각한 경제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음을 떠올려야 했다. 사실 공급 차질을 빚지 않는다는 각오는 침수 초기부터 결정한 전략 1호였다.

473개 고객사와 수십 개 납품사를 직접 방문해서 수급계획을 알렸다. 우선, 광양제철소를 풀가동하고, 인도, 중국 소재 해외공장을 가동해서 추가생산에 들어갔다. 다음, 포스코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생산하지 못한 제품을 공급해서 고객사를 안심시켰다. 소재 납품이 막힌 업체에는 대출을 늘리거나 철강ESG펀드 1,707억원을 활용할 기회를 부여했다.

송호근 석좌교수(왼쪽)가 포스코 3고로를 방문해 공장 상황을 청취하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
포스코는 이 과정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 해외 글로벌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됐다는 것, 그리고 광양제철소가 이중 생산(dual production)의 효율적 파트너라는 사실이다. 포항제철소의 고유제품이 광양에서도 생산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광양 역시 유사시 포항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는 확신을 얻었다. 복구 작업 동안 광양의 직원들과 협력사 직원들은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 왔었다. 두 공장은 일란성 쌍둥이다.

◆불빛이 차례로 돌아왔다

상공정 불빛이 다시 들어온 것은 9월 중순, 후공정은 그로부터 차례로 가동이 재개됐다. 마치 금강산 12,000봉을 넘는 숨 가쁜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포항시민들도 일부 켜진 포스코 야경에 한숨을 돌렸다. 맑은 증기가 뿜어지는 광경이 그렇게 반가울 줄 그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후공정에도 차츰 불이 켜져서 침수 100일째인 12월 15일에는 전 공정의 90%가 정상 가동에 진입했다. 18개 공장 중 15개가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나머지 공장도 부분 가동을 시작했다.

STS 1냉연과 도금공장은 1월말 완전 회복을 예정하고 있다. 제품 선적을 담당한 야적장에도 활기가 돌아왔다. 저 멀리 영일만 근해에 철광석을 실은 선박이 입항하고 있었다. 현장을 둘러보는 필자에게 직원들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이젠 자신이 있습니다!” 100일의 시련, 100일의 기적이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포스코는 이번 사태로 천문학적 액수의 손실을 봤다. 약 2조원으로 추산되는 손실, 그러나 2조가 아깝지 않다는 말도 들렸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얻었다는 것, 위기 극복에 십시일반 한마음이 되는 포스코 유전자를 재확인했다는 사실이다.

침수 첫날, 속옷 이십여 벌을 챙겨 들고 오는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아예 밤을 새울 작정을 했을 것이다. 신발, 유니폼 등이 물에 잠겼으니 장기출장을 가는 짐을 꾸렸을 것이다. 피로에 지친 이소장은 인상적인 풍경을 기억하며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열연공장 지하 15미터에서 진흙을 퍼내던 젊은이. 물어보니 22세, 입사 2개월 신입사원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포스코 DNA는 살아있다! 협력정신을 재확인한 불행이었다.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분명 저 자발적 헌신유전자가 미래 개척의 동력임을 누구나 실감했다고 했다. 복구는 매뉴얼이 없다. 직원들이 배양한 경험지(知)가 매뉴얼이었다. 죽어가는 기계 앞에 직원들은 두려운 선택을 했다. 죽거나, 살리거나. 경험지, 암묵지가 기계들에 생기를 찾아줬다.

침수 피해를 극복하고 재가동에 들어간 포스코 공장의 야경. [사진제공=포스코]
어느 현장이든 MZ세대를 다시 봤다는 말에도 강한 동감을 표시했다. 분해는 기성세대, 수리에 필요한 새로운 착안은 젊은 세대의 몫이었다고 했다. 손발이 맞았다. 평소의 소원감을 떨치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에 서로 감동했다는 것이다.

“개인주의라고 치부했던 평소의 내 생각이 틀렸나 봅니다. 복구 현장에는 MZ세대나 기성세대 구분이 없었지요!” 상호신뢰가 물난리로 생겨났다. 아니 원래 잠복하고 있던 그것이 비상사태를 계기로 발현된 것인지 모른다. 상호신뢰, 자발적 헌신, 세대교감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직원 뿐 아니라 고객사, 공급사, 협력사 등 이해관계자 모두가 하나로 뭉쳤다.

해병대의 출현은 사기를 북돋았다. 수륙양용차가 물길을 내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군부대, 시민 등 지역사회의 격려와 응원은 엄청난 힘이 됐다. 기업시민 포스코의 가치를 빛낸 원군들이다. 포스코가 앞장서 그 시민적 가치를 무한 생산해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데에 일조하라는 시민적 명령이다.

◆100일의 기적

시뻘건 쇳물이 롤러 위를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육중한 압착기가 굉음을 내며 슬라브를 눌렀다. 증기가 뿜어져 올랐다. 기계는 모른다. 100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포기와 체념과 희망 사이를 어떻게 오갔는지를. 한국 제조업이 바닥에 추락했다가 다시 생환했다는 사실을. 냉연 공장에는 1미리로 얇아진 강판이 빠른 속도로 수직 공정을 돌았다. 자동차 공장과 전기제품 공장에 납품되는 강판이었다.

고로가 서고, 제강 공정과 압연공정이 폐기됐다면 어떤 사태가 발생했을까.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상상이었다. 100일의 시련은 100일의 기적으로 끝났다. 힌남노 태풍보다 강했던 철강인들의 땀과 열정이 시련을 이겼다. 포스코는 이제 향후 100년 내구력을 갖출 준비에 돌입했다.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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