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살이 780만명의 성탄절…새해 소원은 딱 하나 “평화” [현장]

노지원 2022. 12. 2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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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 침공]

12월2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바흐무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군인이 최전방 참호에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서 무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난민 나탈리아 키리첸코(47)는 올해 성탄절을 집이 아닌 곳에서 보내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기 전이었던 지난 크리스마스 때 가족들은 이브부터 이틀 동안 꼬박 함께 시간을 보냈다. 따뜻한 음식을 먹고, 저녁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다 같이 예배를 보러 갔다. 평화로운 명절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 침공 전까지만 해도 율리우스력에 따라 크리스마스를 1월7일에 축하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1년 만에 모든 게 바뀌었다.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현지시각) 나탈리아와 딸 마리아(20), 아버지 올렉산드르(73)는 독일 베를린의 한 교회에 마련된 임시 거처에서 성탄 전야를 맞았다. 모두가 행복한 연말이지만 나탈리아 가족은 또 거처를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금 사는 집에 더는 머물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새해 날이 밝자마자 꽤 안락했던 숙소를 떠나 베를린 테겔 난민 보호소로 옮겨가야 한다.

세 식구는 지난 2월24일 러시아의 침공 2주께 만인 지난 3월10일 베를린에 닿았다. 고향 자포리자에서 차로 국경을 넘어 꼬박 나흘이 걸렸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난민과 집을 공유하겠다’고 적은 손팻말을 든 독일인을 만났다. 운이 좋았다. 넉 달 동안 신세를 졌다. 하지만 집 한켠을 내어준 독일인 역시 세입자였다. 베를린에는 집을 구하는 이는 많고, 남는 집은 적다. 집세는 날로 높아만 간다. 인심 좋은 독일인도 치솟은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난민과 계속 함께할 수 없었다. 나탈리아 가족이 다른 거처를 찾던 지난 여름, 다시 한 번 운이 따랐다. 한 교회가 제공하는 시설에 입주했다. 공용 공간을 개조해 만든 임시 숙소에서 다섯 달을 지냈다. 하지만 교회도 이 공간을 무기한 제공하기 어려웠다. 새해 1일 난민 보호소에 들어가면 독일 정부가 새 보금자리 찾기를 도와줄 테지만, 보장은 없다. 옛 테겔 공항을 개조한 난민 보호소에는 난민 3000여명이 머물며 집을 찾고 있다.

“주거난은 모든 난민이 겪는 문제예요.” 나탈리아는 자기가 겪는 고통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기에 좌절하지 않는다고 했다. 열 달 동안 안락한 곳에서 가족끼리 살 수 있었던 것 자체만으로 다행으로 여긴다.

2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의 임시 숙소에서 머물고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 나탈리아(47·맨 왼쪽), 올렉산드르(73), 마리아(20)가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2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의 임시 숙소에서 머무는 우크라이나 난민 나탈리아(47)가 현지 정착 과정에 쓰인 서류들을 보여주고 있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우크라이나에서 독일로 온 난민들은 비자 없이 90일 동안 체류할 수 있다. 90일 안에 등록을 마치면 의료 혜택, 주거비 등 정부의 경제 지원도 받을 수 있다. 독일 정부는 구직 활동과 거처를 찾는 일도 도와준다. 베를린에 등록한 난민이 지낼 곳이 없을 경우 테겔 난민 보호소에 신고해 이용할 수 있다. 지난달 말 기준 독일에 등록한 우크라이나 난민 수는 102만여명이다. 유럽 전역에 퍼진 우크라이나 난민 수는 20일 기준 786만여명, 실제 정부에 임시 보호 등을 신청한 난민은 486만여명이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의 에너지 기반 시설을 집중 공격하며 시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전기, 물, 난방이 끊기는 일상을 살고 있다. 집 떠난 피란민의 삶도 녹록치 않다. 지난 20일 영국 <비비시>(BBC)는 영국에 등록된 난민 10만여명 중 약 3000명이 노숙자가 된 상태라고 이달 기준 영국 정부 발표 통계를 인용해 보도했다. 최근 급격한 물가상승 등으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자 집주인들이 더이상 난민을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탓이다. 나탈리아 가족이 거처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이진 독일 정치+문화연구소 소장은 “자발적으로 연대를 실천하려는 시민이 많고 정부에서 주거비도 지원해주지만, 베를린은 주거난이 심해 날이 갈수록 세가 치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 주인이 난민에게 기약 없이 집을 내어주기란 사실상 쉽지 않은 형편이다”라고 말했다.

2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난민 나탈리아(47·), 올렉산드르(73), 마리아(20) 가족이 머물고 있는 독일 베를린의 한 임시 숙소. 한쪽에 놓인 피아노 위에 마리아의 스무살 생일을 축하하는 풍선이 보인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보슬비가 내렸지만 기온이 6∼7℃로 포근했던 베를린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은 딸 마리아는 아빠에게 사진을 보냈다. 사진 속 트리에선 전구가 반짝였다. 거리는 알록달록한 조명 장식이 화려했다. “매일 전화를 해서 일상을 공유해요. 예쁘고 행복한 사진을 많이 보내요.” 엄마와 딸은 이런 “긍정적인 사진”들이 전쟁 한 가운데 남아 있는 가족들의 “기분을 전환”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주의를 돌린다”고 했다. 마리아의 아빠와 삼촌을 비롯한 친인척 상당수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아빠는 전투가 벌어지는 전선으로 편지를 전한다. 미용사인 삼촌은 나라를 위해 할 일을 하겠다며 현재는 군인의 머리칼을 잘라주는 일을 자처했다.

언제쯤 다시 고향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독일에 머물 생각인지,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 있는지에 묻는 말에 나탈리아는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조만간 끝날 것 같지가 않다”며 “독일에 사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마리아는 “언젠가 가족과 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다”면서도 “당장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러시아 침공 초기 2주 동안 고향에서의 경험이 아직 트라우마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공사 하는 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라고 너무 무서워요.” 자포리자 국립대에서 광고홍보학을 공부하던 3학년 마리아는 독일에서 학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엄마 나탈리아는 역사 선생님이었다. 현재 독일어를 공부하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나탈리아 가족에게 새해 소원이 무엇인지 물었다. “딱 하나예요. 평화.”

마리아(20)가 고향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에 남아 있는 아빠에게 보낸 사진 독일 베를린 현지 연말 풍경.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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