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제대로 안 써"…탈레반, 女 대학교육 이어 NGO활동도 금지

정혜인 기자 2022. 12. 2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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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NGO에 "여성 활동 금지" 성명 발신… 이슬람 사원 종교 수업의 여성 참석도 금지해…유엔 "여성 탄압·인권 침해, 탈레반 만나겠다"
/로이터=뉴스1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의 여성 권리 및 자유 침해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탈레반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여성 인권 보호를 촉구했다.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AP·AFP통신·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탈레반 정부는 이날 경제부 장관 명의로 국내외 비정부기구(NGO)에 보낸 성명에서 여성 직원들의 활동 및 출근을 중단하라고 통보하며, 이를 어길 시 해당 NGO의 면허를 취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이슬람 사원에서 여성들이 종교 수업에 참석하는 것도 별도 금지했다.

탈레반 정부는 NGO서 활동하는 여성들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 이슬람 법률과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을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압둘 라만 하비브 탈레반 정부 대변인은 CNN에 보낸 서한에서 "최근 NGO 여성 직원들이 이슬람 히잡 및 이슬람법과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심각한 불만이 제기됐다"며 "그 결과 국내 및 국제 NGO 내 모든 여성 직원의 업무를 정지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금지 조치가 NGO 내 외국인 여성에도 해당하는 것인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번 조치는 최근 탈레반 정부가 이슬람 법률과 규정을 앞세워 보인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행보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탈레반은 지난 20일 고등교육부 명의로 공·사립 대학에 서한을 보내 여학생들의 수업 참여 금지를 명령했다. 탈레반은 이때도 여학생들의 이슬람 복장 규정 위반 등을 이유로 들었다.

NGO 여성 직원들은 탈레반의 조치에 즉각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청소년들에게 성 기반 폭력과 같은 문제를 가르치는 NGO의 말리하 나아자이는 "가슴 아픈 발표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가. 왜 그들은 우리를 이렇게 잔인하게 대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NGO 활동으로 가족 생계를 책임졌던 여성들은 이번 금지 조치로 당장 수입이 끊겨 가족 부양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이들 중 일부는 BBC에 탈레반의 엄격한 복장 규정을 준수했는데도 이런 조처가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아프가니스탄 대학생들이 24일(현지시간) 파키스탄 퀘타에서 탈레반 정부의 '여성 대학교육 금지령'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서고 있다. /AP=뉴시스


일부 단체는 이번 조치가 겨울철 생명과 직결되는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한 국제구호단체는 "25일부터 활동을 중단할 것이다. 조만간 모든 NGO 관계자가 참석하는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식량 직원 단체도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돕는 인도주의 활동은 대부분 여성 직원이 맡고 있기 때문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내비쳤다.

유엔, 미국, 유럽연합(EU)은 이번 조치가 여성에 대한 탄압이자 인권 침해라고 탈레반의 공개 비난했다. 유엔은 이날 공식 성명에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여성의 자유 의지를 빼앗고, 공공 및 정치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그들을 무력화하고 배제하는 것은 국가를 퇴보시키고, 국가의 의미 있는 평화나 안정을 위한 노력을 위태롭게 한다"며 탈레반 지도부를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트위터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적 직원을 제공하는 여성에 대한 탈레반의 금지 조치는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는 필수 지원을 방해하는 것으로 깊이 우려한다"며 "여성은 전 세계 인도주의 활동의 중심이다. 탈레반의 이번 결정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적었다.

나빌라 마스랄리 EU 외교안보정책 담당 대변인은 AFP에 보낸 성명에서 "탈레반의 이번 금지는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능력에 대한 또 다른 가혹한 제한으로 인도주의적 원칙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한편 탈레반의 여성 대학 교육 금지령 이후 주요 도시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이는 지난해 탈레반의 권력 장악 이후 보기 드문 시위라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탈레반은 정부의 금지령을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사용했고, 일부 여성들이 물대포를 피해 소리를 지르며 샛길로 숨는 모습이 AP통신 영상에 포착되기도 했다.

정혜인 기자 chim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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