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안정이 곧 세계평화”… 필리핀에서 통일을 외치다
● “필리핀, 통일 한국 든든한 지원군 될 것”
● 평화는 인류 최우선 가치
● 1만5000명 함께 외친 ‘원 코리아’
● 문현진 “통일 한국 세계 5위 도약 가능”
냉전이 불러온 한파는 한반도에 유난히 더 가혹하다. 중·러와 국경을 맞대고 바다 건너엔 일본이 있다. 강대국 틈바구니 작은 땅은 그마저 반으로 쪼개졌고,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다. 2022년 12월 8일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북한 김정은은 집권 10년 동안 146회 핵·미사일 활동을 감행했다. 2022년에만 39회, 조사 기간(38년) 가운데 최다 횟수를 기록하며 한반도 안보 리스크를 키웠다.
위기 극복을 위한 논의가 절실한 때 필리핀에서 한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2022년 12월 1일부터 3일까지 필리핀 클라크, 팜팡가에선 글로벌피스재단(GPF·Global Peace Foundation) 주최로 '글로벌피스페스티벌 2022'가 열렸다.
GPF는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두고 세계 23개국에서 활동 중인 비영리단체다. 2009년 문현진(53) GPF 의장이 인류 보편 가치를 바탕으로 세계평화와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설립했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자문 지위를 획득했고, 유엔 공보국(DGC) 협력단체로도 활동하고 있다. GPF 평화운동의 골자는 '한반도 평화통일'이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 교육을 중시한다. 평화운동 기반이 된다는 게 이유다. 사회 공헌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올라이츠빌리지(All lights Village·자립형 마을개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저개발 지역에 태양광 랜턴 등을 설치해 주는 사업이다. 2014년 7월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피스페스티벌 2022'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 실현을 위한 비전'을 주제로 한다. 크게 서비스 러닝 프로그램, 글로벌 피스 리더십 콘퍼런스(GPLC·Global Peace Leadership Confernce), '글로벌피스페스티벌'로 구성됐다. 세계 오피니언 리더들과 민간단체, 청년이 모여 인류애와 평화를 논하고 나아가 '한반도 통일'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폭력을 멈춰주세요"
강순옥 글로벌피스우먼(GPW·Global Peace Women) 한국회장은 행사 취지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최우선하는 어젠다는 '평화'다. 평화를 이루는 방식이 관건인데, 평화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 시작돼야 한다. 가정이 안정돼야 사회가 안정되고 궁극적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무를 심어 더 많은 농작물을 수확하도록 해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고, 의료지원을 통해 가정의 붕괴를 막고 있다."
GPF는 필리핀에서 벌이는 구호 활동이 궁극적으로 한국에 도움이 될 거라 보고 있다. 라인길 GPF 아시아태평양 회장은 "한국과 필리핀은 닮은 점이 많다. 모두 동·서아시아의 관문으로서 식민 지배를 겪었다. 또 필리핀은 한국과 긴밀한 나라다. 6·25전쟁 때 유엔 참전국으로 한국을 도왔다. 아시아 국가로서 가장 빠른 참전이다"라고 했다. 이어 "필리핀은 평균연령이 30대로 젊은 나라다. 교육을 통해 이들이 깨어난다면 통일 한국의 든든한 응원군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필리핀 젊은 층의 의식을 깨기 위한 교육 변혁(transformation)이 필요하다. GPF가 교육, 의료지원 등 각종 구호 활동에 힘쓰고 있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한반도 안보는 전 세계의 문제"
문현진 의장은 기조연설에서 "한국은 아직도 분단돼 있다. 내가 꿈꾸는 한국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나라다. 이 꿈의 물결이 한국에서 시작돼 필리핀까지 왔다"며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칭기즈칸의 말이다.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꿈에 불과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다. 우리가 위대한 꿈, 주인이 돼 미래 평화 번영 지도자를 길러내야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이어 "과거 세대가 이루지 못한 평화를 실현하고 이끌어 내려면 우리 스스로 그 꿈의 주인이 돼야 한다. 우리는 이 자리의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꿈과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딸 사라 두테르테 필리핀 부통령은 "GPF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평화에 대한 공통의 비전을 추구하도록 사람들을 격려하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평화 리더십을 강화하고 평화의 가치에 헌신하는 지도자를 모으면 경제·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평화 구축에 가치를 둔 리더 양성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쟁'은 갈등 해결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노나 리카포트 전 필리핀 교육부 차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정말로 승리를 얻었는가. 일부 지역을 점령했을지 몰라도 국민의 열정과 사기를 꺾고, 지지 철회로 이어졌다"며 "평화 실현은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혁신적 일이다. 우리 모두 평화를 위해 도전하자"고 제언했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한국은 북핵 위협으로부터 한반도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평화를 지켜내고 있다. 필리핀 또한 중국과의 해상 영토 분쟁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분쟁과 갈등은 지역과 세계평화 실현에 장애 요소로 작용하고 세계 번영과 국가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평화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가운데 가장 우선시돼야 할 가치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 실현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대만 갈등, 북핵 위협으로 전 세계가 불안해하고 있다. 통일 한국은 평화와 안보의 상징으로 세계 안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 남북한은 경제 분야에서 단계적 통합을 위한 협력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오후엔 포럼이 열렸다. 평화와 안보, 교육 변혁, 여성 역량 증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종교 간 평화 구축, 청소년 의회, 미디어 역할 등 7개 주제로 진행됐다. 특히 평화와 안보 포럼에서 한반도 안보에 대한 의견이 집중됐다.
데이비드 맥스웰 GPF 선임연구원은 "전쟁이든, 북한 정권 붕괴든, 통일이든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 안보 상황은 우리 모두의 관심사가 돼야 한다"며 "국제사회는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자유롭고 통일된 한국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백산 지구촌평화연구소 대표는 통일을 이룬 독일과 예멘 사례를 짚으면서 "북한 주민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외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통일 한국을 지지한다"
이날 참가자는 약 1만5000명으로 대부분 대학생 등 MZ세대였다. 2018년 미스유니버스 우승자 카트리오나 그레이의 기조연설로 막이 열렸다. 카트리오나 그레이는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정신과 헌신을 늘 마음속에 품고, 한반도 평화 구축과 미래 세대를 위해 다 함께 힘쓰자"고 말했다. 이어 문현진 의장이 한국 통일과 세계평화를 주제로 연설했다. 필리핀 마발라카트대 학생들의 공연을 시작으로 한국 4인조 혼성그룹 '카드(KARD)', 필리핀 걸그룹 '비니(BINI)'의 무대가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떼창'하며 열띤 반응을 보였고, 축제 내내 "1 Dream 1 Korea 1 World(하나의 꿈, 하나의 한국, 하나의 세계)" "We support One Korea(우리는 통일 한국을 지지한다)" 구호로 화답하며 "통일 한국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지름길이다. 우리도 뜻을 모아 한국의 평화통일을 지원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문현진 GPF 의장
"‘헬조선'이라면서 왜 통일 관심 없나"
문 의장은 "통일을 이루면 한국은 세계 5위로 도약할 수 있다. 한국은 식민 지배, 전쟁, 분단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극복하고 한국이 통일을 이룬 이야기는 세계, 특히 개발도상국에 엄청난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통일은 결혼과도 같다. 남한에 필요한 것은 북한에, 북한에 필요한 것은 남한에 있다.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낳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자에게 "한국의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는 말을 쓴다. 점점 살기 힘들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통일에 관심을 갖지 않느냐"고 물었다.
통일에 실질적 이득이 없다고 여기는 것 아닐까. 통일 비용이 삶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문 의장은 "왜 그것을 젊은이들이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나"라며 말을 이어갔다.
"북핵은 미국에 최대 안보 위협이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쓴 돈이 2조5000억 달러에 달한다. 통일하면 북핵 위협을 제거할 수 있다. 미국이 돈을 안 쓰겠나. 전쟁에 들이는 돈에 비하면 '껌값'이다. 또 통일이 되면 많은 기업이 한국에 투자할 것이다. 현재 한국 상태론 젊은이에게 미래가 없다.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없고 대기업만 혜택을 누리는데, 비용 문제로 해외에 공장을 짓는다. 실업률은 더 심각해질 것이고, 노조는 점점 더 강성해진다. 이는 파멸로 이어지는 구조다. 통일, 즉 '코리안 드림'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 통일은 정쟁 및 이념 갈등 소재로 전락하곤 하는데.
"한국 사회가 좌익·우익으로 갈라진 원인은 한국인 스스로의 선택 때문이라기보다 서구 열강의 의지였다고 생각한다. 가장 보수 성향을 띄는 사람이라도 통일을 원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김일성, 김정은은 싫어해도 북한 주민까지 미워하진 않을 테니까. 북한 지도부만 코리안 드림에 전향적 태도를 보여준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이다. 한 가지 말하고 싶은 점은 한국인은 정치인의 영향을 너무 크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국민이 훨씬 더 힘 있다."
‘보텀-업' 방식 통일운동을 지향하나.
"역사에서 큰 변화는 언제나 시민운동으로부터 발생했다. 예컨대 인도 독립만 봐도 간디의 평화운동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모든 한국 사람이 주인 의식을 갖고 통일을 염원한다면 가능하다."
언제쯤 가능하다고 보나.
"젊은이들이 더 많이 동참할수록 더 빨라진다. 기성세대의 통일운동은 '모닥불'이다. 젊은이들은 '가솔린'이다. 젊은이들이 통일을 염원하면 불에 기름을 끼얹듯 통일 움직임은 활활 타오를 것이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도 있다. 2023년엔 GPF가 한국에서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통일이 젊은이들에게 일생일대의, 역사적 기회임을 일깨우고 싶다. '글로벌피스페스티벌 2022'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필리핀 청년들의 열정과 환호가 얼마나 컸나. 당사자인 한국인은 더 기쁘게 맞이해야 하는 것 아닐까."
클라크=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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