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안양시 흙탕물 유입 사태 진실 … 수자원공사의 거짓말
2126세대 아파트 주민 피해 입어
수공 “공사 중 수도관 파손 때문”
수공이 주장한 원인 거짓말로 밝혀져
공업용수관을 생활용수관에 잘못 연결
피해 주민에게 진실 숨긴 채 보상 협의
수공 “잘못한 건 맞지만 보도 미뤄달라”
"수도관 파손 때문에 공업용수가 유입됐다." 지난 10월 안양시 일대에서 발생한 탁수 현상을 두고 한국수자원공사는 안양시에 이렇게 설명했다. 거짓말이었다. 1년 전 한국수자원공사 측이 공업용수 수도관을 생활용수 수도관에 잘못 연결했던 게 탁수의 원인이었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자 수공 측은 "주민 피해 보상이 완료된 이후에 보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더스쿠프가 한국수자원공사의 황당한 거짓말 논란을 단독 취재했다.
지난 10월 24일 경기도 안양시 갈산동과 호계3동에선 큰 소란이 벌어졌다. 맑은 수돗물이 흘러야 할 수도꼭지에서 혼탁한 빛의 탁수濁水가 나왔기 때문이다. 2126세대의 아파트와 170세대의 상가ㆍ다가구주택, 안양교도소, 5곳의 학교와 어린이집 한곳이 피해를 봤다. 주민들은 식수는 물론 목욕과 세탁도 제대로 못 하는 불편을 겪었다. 특히 인근 학교는 급식을 만드는 데 차질을 빚으면서 애먼 학생들이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탁수의 원인이 밝혀진 건 이틀 뒤였다. 10월 26일 안양시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자. "…안양시는 갈산동 일대 수도에서 나타난 탁수가 한국수자원공사(이하 수공)의 광역상수도 공사 중 안양시의 수도관 200㎜가 파손돼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
미디어는 이 자료를 받아 같은 맥락으로 보도했다. '안양시 탁수 발생 원인은 수도관 파손 때문…피해현황 파악' '안양시 수돗물 탁수는 수도관 파손 때문…정비 완료' '안양 흙탕물 급수사고는 수자원공사 공사 중 수도관 파손 탓'….
보도의 근거는 공사 주체인 수공이 안양시에 보고한 내용이었다. 안양시는 수공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었다. "안양교도소 인근에서 수공이 관리하는 공업용수관을 복구하는 광역상수도 공사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시공사가 안양시가 관리하는 수도관을 파손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도시 일대에 탁수가 유입됐다."
쉽게 말해, 시공사가 수공이 발주한 공사를 진행하다가 불운하게도 수도관을 파손했다는 거였다. 원인이 드러나자 사건은 금세 마무리 수순을 밟았다. 수공은 피해 주민들과 올해 안으로 보상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협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안양시 탁수' 사태는 이렇게 원만하게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수공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로 밝혀졌다. 더스쿠프의 취재 결과에 따르면, 탁수가 발생한 원인은 '오접誤接'이었다. 수공이 자신들이 관리하는 공업용수관을 안양시 생활용수관에 잘못 연결하면서 흙탕물이 발생했다. 공사 중에 벌어진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 탁수의 진짜 원인 = 복잡한 문제를 좀 더 쉽게 풀어보자. 수돗물 정수와 배급은 원칙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소관이다. 하지만 수돗물 정수에 필요한 원수原水는 수공이 공급한다.
그 결과, 상수도관을 관리하는 주체는 지자체와 수공, 둘로 나뉜다. 땅 밑에 묻힌 수도관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란 거다. 어떤 수도관은 지자체 관할이고, 또 어떤 수도관은 수공이 관리한다. 수도관의 종류도 여럿이다. 대표적으로 생활용수관이 있고, 공업용수관이 있다. 생활용수관엔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물인 생활용수가 흐르고, 공업용수관엔 제조업종의 작업공정에 주로 쓰이는 물이 흐른다.
사고 당시 수돗물을 오염시킨 문제의 수도관은 안양교도소 앞을 지나는 직경 200㎜의 '생활용수관'이었다. 이 수도관은 안양시가 관리한다. 원래는 호계3동 방향으로 깨끗한 물이 문제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사건 당일인 지난 10월 24일엔 이 생활용수관 한가운데에서 정체불명의 물이 침투했다. 엉뚱하게도 수공이 관리하는 공업용수관에서 흘러나온 물이었다.
안양시의 생활용수관에서 왜 수공이 관리하는 공업용수관의 물이 흐른 걸까. 답은 간단하다. 지난해 7월께 수공은 자신들이 관리하던 공업용수관(안양교도소로 들어가는 관)을 안양시로 흐르는 생활용수관에 잘못 연결했다. 공교롭게도 두 수도관의 직경이 200㎜로 같은 데다, 구멍을 뚫는 작업(천공)을 했기 때문에 시공사는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 후 1년간 수공은 문제의 수도관을 밸브로 잠가 놨다. 그러다 사건 당일이던 10월 24일 수공 공업용수관에서 누수가 감지됐다. 이를 복구하기 위해 잠가놨던 밸브를 열자 안양교도소로 흘러 들어가야 할 공업용수가 안양시내로 흘러 들어갔다. 오접 공사는 시공사가 했지만, 명백한 수공의 과실이었다.
익명을 원한 전문가(토목환경공학 교수)는 "수도관의 지름이 같기 때문에 실수가 잦을 듯하지만 관로 경고 테이프나 관체 페인트 등 오접을 방지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면서 "수공 측이 공사를 진행하면서 제대로 관리 감독을 했다면 이런 황당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 진실 덮으려는 수공 = 더 심각한 건 지금부터다. 수공은 과실을 감추기 위해 실체적 진실을 알리지 않았다. 지금도 사고를 겪은 많은 피해 주민은 탁수가 흘러나온 원인을 '수도관 파손'으로 이해하고 있다.
더스쿠프 취재진은 수공 측에 여러 질문을 던졌다. 오접 사고의 구체적인 원인과 경위, 관리 감독 책임자와 당시 시공사, 안양시에 거짓 보고를 한 이유, 주민들에게 오접 사고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이유 등이었다. 수공 관계자는 "답변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피해 주민들의 보상이 모두 완료된 이후에 보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공 측의 은밀한 요청엔 이유가 있었다. 탁수 사태의 진짜 원인이 세간에 드러나 주민 여론이 악화하면, 보상을 신속하게 마무리하기 어려워진다는 거였다. 주민들이 지금 논의 중인 방안보다 자칫 더 큰 규모의 보상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보상 집행을 완료하면 사태 원인이 드러나더라도 사태를 이미 수습했기 때문에 수공으로선 책임질 일이 줄어든다. 사태의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 재발 방안을 마련하는 데엔 관심이 없고, 피해 보상에 따른 득실만 따지고 있다는 거다.
피해 주민 보상 방안을 대부분 마무리한 수공은 올해 안에 비용을 집행할 계획이다. 세대별로 일정하게 수도요금을 공제하는 게 골자다. 급식에 차질을 빚은 학교엔 학생 수대로 기부금을 조성하거나 필터 훼손 등의 개인 피해도 영수증을 첨부하면 보상이 가능한 방안으로 협의하고 있다.
안양시의회 관계자는 "탁수 사태 초기 수공 측이 공식적인 사과나 보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주민 여론이 좋지 않았다"면서 "진짜 이유가 과거의 오접 사고 때문이었고, 오접된 것도 모르고 있다가 발생한 사고라면 수공 측 책임론의 무게가 더 실릴 수 있다"고 꼬집었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생명선인 상수도시설을 관리하는 우리나라 전문 공기업의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게 믿기진 않지만, 이게 수공의 민낯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