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woman] 날카롭지만 ‘따뜻한’ 천문학자 심채경
천문학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글과 말로 풀어내며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는 천문학자 심채경.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TV에도 모습을 비치고 있는 그를 만나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일정 조율 과정에 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연말이라 일정이 빡빡하다"며 '번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기자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기위해 사전을 찾아봐야 했다. '번다(煩多)’는 번거롭게 많다는 뜻. '역시 글쓰기로 이름을 알린 사람의 어휘력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채경 박사는 천문학자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 모음집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로 대중에게 본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책은 2021년 2월에 나왔지만 서점가에서는 꾸준히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부업인 수려한 글솜씨 덕에 인지도를 높였지만, 본업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그는 대학원에서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을 연구했고 이후에는 달을 연구하고 있는데, 2019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가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어갈 차세대 과학자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현재는 국내 달 탐사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2022년 8월 발사한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KPLO)’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 심채경 박사가 다시 주목받은 계기는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인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잡학사전)’에 패널로 합류하면서다. 방탄소년단(BTS)의 RM, 김영하 작가,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등 쟁쟁한 출연진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가운데,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참신한 관점을 제시하며 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그의 방송 출연을 계기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천문학자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
제 연구실 번호로 제작진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자문할 내용이 있다"며 "찾아와도 되느냐"고 불쑥 묻더라고요. 그래서 "자문 말고 다른 걸 부탁하시려는 건 아니고요" 하고 물었는데, 답을 못 하시더라고요(웃음).
섭외 전화라는 느낌이 왔군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천문학자한테 자문 구할 일이 많지 않잖아요. 오시더니 이미 섭외된 출연진 목록을 보여주면서 합류해줄 수 있냐 여쭤보시더라고요. 사실 좀 주저했고 바로 확답은 못 드렸어요.
박사님이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도 출연하는데, 망설였다니 의외네요.
촬영하면서 김영하 작가님을 보면 아직도 TV를 보고 있는 느낌이에요. 주저한 이유는 본업이 아닌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 같아서였죠.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 '쟤는 공부 안 하고 다른 일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요. 촬영이 바쁜 연말과 겹치기도 했죠. 그래도 제 말에 경청하는 제작진이 좋아서 출연하기로 결정했어요.
학계에 여전히 외부 활동에 대한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나 봅니다. 그럼에도 방송 출연을 자주 하고 기고도 활발하게 하는 이유가 궁금한데요.
사실 제가 하려고 해서 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책을 쓰게 된 것도 출판사에서 제 칼럼을 보고 먼저 제안하셨고요. 당시 칼럼도 전공자들이 돌아가면서 쓰는 단발성이었어요. 태양계 행성 전공자가 국내에 별로 없다 보니 저희끼리 돌아가면서 쓰거든요(웃음). 방송도 불러주시니 갔죠. 아무래도 한국이 본격적으로 달 탐사에 뛰어든 시기와 겹치다 보니 많이 불러주신 것 같아요.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우주과학에 대한 인기가 높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박사님이 자주 '소환’되는 걸 보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네요.
대중의 수요는 매우 높다고 생각해요. 쏟아지는 각종 제안을 혼자 다 소화하지 못해 많이 돌려보낼 정도예요. 과학자들이 연구실 밖으로 나와 말하거나 글 쓰는 일을 많이 하지 않으니 수요에 비해 공급이 굉장히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죠. 특히나 여성 과학자는 더욱 없는데, 저 같은 경우 여성에 엄마에 과학자이다 보니 찾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은 우주를 신기해하고 재밌어하는 분은 많은데, 직접 연구해보고 싶다는 수요는 적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여전히 천문학자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어서인 것 같네요.
네덜란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독보적인 연구 실적으로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높은 대중적 인지도에는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가 한몫했다. 그는 주로 자신이 연구한 유인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재밌고 쉽게 풀어낸 대중서를 쓴다. 저서 '침팬지 폴리틱스’의 서문에 드 발은 대중서를 쓰는 이유에 대해 "대중서는 학문의 얼굴이 되고, 책을 읽은 학생들이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적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스테디셀러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천문학도의 꿈을 키운 이도 많다.
심채경 박사가 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좀 결이 다르다. 학술서라기보단 과학적 성격이 강한 에세이인데, 책 속에는 하늘을 보며 공부하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현실이 드러나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짊어진 대학원생의 이야기,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이어지는 비정규직 생활, 한국의 열악한 연구 환경…. 그가 "더 많은 천문학자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자칫 예비 천문학도들이 뒷걸음질칠 만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박사님 책을 읽으면 자칫 천문학을 꿈꿨던 학생도 겁에 질려 도망갈 것 같던데요.
그런가요(웃음). 제가 최근에 정규직이 되긴 했지만, 일부러 비정규직이란 사실을 좀 더 얘기한 면도 있어요. 천문학자들에 대해 잘 모르시는데, 저같이 알려진 사람도 푸대접받는 현실을 많은 분께 알리고 싶었거든요. 어렵게 박사학위를 따도 햇병아리로 커리어를 시작해야 하고, 국가 차원에서 지원도 충분하지 않은 게 현실이죠.
해외 사정은 좀 나은 편인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오히려 서구가 정규직 비율은 더 낮을 수 있겠지만 비정규직 연구자라도 과학자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 제약이 없어요. 한국의 경우 천문대 관측 계획서나 사업 과제 계획서를 낼 때 소속이 없거나 정규직이 아니면 자격 제한에 걸려요. '학위 여부, 박사학위를 받은 지 몇 년이 경과해야 한다’ '비전임 교원은 안 된다’ 등등 여러 제약이 있죠. 서구에서는 대학원생도 자유롭게 제출할 수 있거든요. 한국은 박사학위를 받고 정규직이 되기까지 안정적인 생활을 할 만한 기회가 적어요.
어떻게 해야 상황이 바뀔 수 있을까요.
어디 가서 직업이 천문학자라고 하면 "밥은 먹고 사니"라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천문학자들이 넉넉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 월급 받고 살거든요. 서양 친구들에게 "부모님께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반응이 어땠어?"라고 물어보니 모두 굉장히 축하해주셨대요. 한국은 보통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하면 걱정부터 하시죠. '천문학자라면 가난할 것 같고 속세를 떠나 어디 구석에 있을 것 같다’는 인식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이 상황이 바뀌려면 제도가 먼저 개선돼야 하는지,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지는 저도 여전히 고민 중이에요.
달 탐사가 다시 부상하는 이유
인류가 달을 탐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단순한 호기심일까요.
과학은 원래 자연을 탐구하는 거잖아요. 천문학자에게는 우주가 자연이죠. 인류는 높은 산에 오르려고 하고 아주 깊은 바다에 들어가 보려고 하잖아요. 우주에 가려고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순서라는 생각이 들어요. 반세기 전에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달 탐사를 많이 이용했죠. 최근에는 '우주가 돈이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산업계에서 뛰어들고 있어요. 대개 민간 기업이 뛰어들기 시작하면 판도가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생각나는 건 달로 가는 패키지여행뿐인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뭐가 있나요.
지금 가장 활발한 사업은 달에 물건을 보내는 거예요. 유해라든지 변하지 않는 사랑의 징표, 위대한 고전들을 모은 USB, 타임캡슐 같은 것들이요. 많은 사람이 변치 않을 것 같은 물건을 우주 공간에 갖다 놓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듯해요.
장기적으로는 달에서 비즈니스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요.
달에 착륙선도 보내고 우주 비행사도 보내고 있잖아요. 좀 멀리 보면, 달에 도착한 착륙선과 우주 비행사가 달에서 통신을 하려면 기지국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노키아’ 같은 통신망 구축 사업자도 많은 관심을 보여요. 달에 위성을 띄워 궤도를 선점하겠다는 기업도 있고요. 광물 자원을 채취해 건설 자재나 다른 천체로 가기 위한 연료로 가공하려는 시도도 있어요.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죠. 달 환경에서 움직일 수 있는 탈 것이나 우주인을 보조할 로봇들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고요. 우주는 굉장히 가혹한 환경이잖아요. 우주에서 사용이 가능하면 지구의 극한 환경에서도 쓰임새가 많아요. 원자력 폐기물 처리장이라든지 화염이 강한 동굴 안 같은 곳이죠.
상업적인 이유와 별개로, 인류가 달을 연구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이 있을까요.
달은 지구랑 거의 비슷한 시기에 생겨났어요. 비슷한 물질로 만들어져있는데 대기가 없다 보니 역사가 잘 지워지지 않았어요. 지구는 비바람이 불고 초목이 자라고 사람도 살다 보니 흔적이 지워지잖아요. 달에는 40억 년 이상의 흔적이 남아 있기에 지구의 과거를 연구할 때 도움이 돼요. 오히려 지구를 연구하는 것보다 달을 연구하면 지구의 과거를 더 많이 알 수가 있죠. 최근에는 지질학자들도 달을 주목하고 있어요. 또 달 형성 과정의 비밀을 푼다면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태양계 역사를 알아내는 데 힌트가 될 수 있죠.
최근 과학계에서는 남성 편향적인 과학적 사실을 다시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천문학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진행 중인지 궁금합니다.
천문학에서는 과거에 여성들을 수단으로만 사용해온 전력이 있어요. 연구 내용을 기록한 사람들을 레코더, 연구에 필요한 계산을 한 사람들 컴퓨터라고 불렀어요. 이 중에 여성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름이 남지 않았죠. 예를 들어 지금처럼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유리 건판에 천체 사진을 찍어 밤하늘에 변화가 있는지 매일 비교해야 했는데, 이 작업을 여성들이 수작업으로 다 했어요. 현대에 들어서는 남성, 여성을 딱히 구분하고 있지 않지만 대다수의 천문학자가 남성이긴 하죠. 현실이 이렇다 보니, 여성이 많아지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겪어보지 않아 말하기 어려운 단계예요.
"성과 없다고 성취 없는 것 아니에요"
박사님 글을 보면 좋은 말만 하지 않아요. 방송의 모습이 '부캐’고, 글을 쓰는 심채경 박사는 '본캐’인 건가요.
말씀을 들어보니 '제가 그랬나’ 싶네요. 저는 책 속의 모습과 방송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서요. 이소연 박사에 관한 글을 썼을 때에도 어떤 사람은 "네가 진짜 작정하고 썼구나"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특별한 동기 없이 그저 있는 대로 썼어요. 이소연 박사가 처한 상황이 저희에게는 그냥 사실이에요. 할 말이 있으면 해야죠(웃음).
박사님은 어떻게 남의 시선으로부터 그렇게 초연한가요.
그렇게 초연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웃음). 제가 천문학자들을 대부분 초연한 사람처럼 그리다 보니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천문학계에도 다양한 사람이 있죠. 관종도 있고 내성적인 분도 있고요. 저는 워낙 내성적이라 원래부터 그랬던 것 같네요.
요즘 젊은 세대는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중시해요. 천문학 연구는 오랜 시간을 쏟아부어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요. 박사님은 어떻게 즐기면서 무던하게 연구에 몰두하나요.
천문학은 짧은 연구도 10년이 넘어서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선배님들이 우스갯소리로 "이 프로젝트가 실현될 때쯤 난 은퇴하고 네가 하고 있겠네"라는 말을 자주 하세요. 호흡이 워낙 길다 보니 내가 하던 일을 다른 사람이 이어받는 경우가 흔하죠. 중요한 건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달린 것 같아요. 목표하는 지점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과정에서 단계적인 성취는 있기 마련이죠. 성패 여부에 따라 성과가 있고 없고를 판단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심채경 박사는 "나는 거창하게 큰 목표를 꿈꾸며 사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지금 행복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행복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하루에 계획한 일을 다 해냈을 때 뿌듯하고, 그렇게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낼 때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흔히 행복한 사람은 행복의 역치가 낮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일상의 작은 것에서 자주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높은 목표를 설정한 뒤 이루지 못해 불만족해하는 사람보다 행복한 삶을 산다는 얘기다. 유달리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 사회에 심채경 박사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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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시스 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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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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