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주역 항우연은 '수퍼 을'…서글픈 집안싸움의 본질

김인한 기자 2022. 12. 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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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체-위성-항공' 한국 우주개발 이끌어온 항우연기술개발 매진하며 연구 책임 다했지만 권한은 부족나로호 1·2차 발사 실패 뒤 책임 추궁에 원장 사퇴도갈등 원인은 조직개편, 양측 모두 우주개발 대의 진심'발사체 조직' 별도 관리해온 과기부 문제해결 나서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인사 내홍. / 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승자 없는 내부싸움이 거듭되고 있다. 로켓(발사체) 개발 자립을 이끈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야기다. 갈등은 발사체 조직 개편으로 촉발됐다. 조직 개편을 통해 인력을 효율화하자는 주장과 발사체 연구개발 특성상 그럴 수 없다는 반대가 평행선을 달린다. 첨예한 입장 차이지만, 양측 모두 '미래 우주개발' 대의를 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항우연 내부 갈등을 빚게 한 시스템과 원인에 관심이 쏠린다.

24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항우연 내부 갈등을 촉발한 발사체 조직 개편 필요성은 2018년 이후 꾸준히 제기됐다. 오래전부터 논의돼 온 해묵은 의제다. 항우연의 연구개발 분야는 크게 '발사체-인공위성-항공' 3가지로 나뉜다. 발사체를 제외한 두 분야는 위성연구소와 항공연구소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와 달리 발사체는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로 독자 조직으로 움직여왔다.

"발사체 연구개발 수요 늘어 인력 효율화" vs "하나씩 몰두해도 성공 장담 어려워"
항우연 내 조직 구성이 다른 배경은 연구 특성 때문이다. 위성과 항공 분야는 발사체와 달리 위성, 항공기 등 관련 산업이 태동했다. 연구개발 수요가 발사체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한정된 인력으로 2~3개 이상 연구개발 사업을 참여하려면 전문 분야별로 사업에 유기적으로 참여하는 구조가 필요했다. 연구소 체제로 조직을 개편해 다양한 사업에 참여하는 '매트릭스 구조'를 만든 이유다.

반면 발사체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기술로, 하나부터 열까지 독자개발하는 숙명을 지닌다. 해외로부터 기술을 가져올 수 없었고 한 가지 연구개발 사업에만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나로호(KSLV-I) 사업(2002.08~2013.04)이 끝날 쯤 누리호(KSLV-II) 사업(2010.03~2023.06)이 시작된 이유다. 기술 개발 하나가 끝나면 다음 기술을 개발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누리호 1·2차 발사가 끝난 후 발사체도 다양한 연구개발 수요가 생겼다. 당장 내년부터 2032년까지 총 2조132억원을 투입해 누리호 후속 '차세대 발사체'(KSLV-III) 개발 사업이 시작된다. 여기에 누리호 기술을 고도화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이전하는 '고도화사업'은 내년부터 2027년까지 총 6874억원이 투입된다. 재사용 발사체 기술 등 미래 기술 개발 수요도 있다.

항우연이 조직개편에 나선 이유는 이처럼 다양한 발사체 연구개발 수요를 효율적으로 대비하자는 취지다. 위성과 항공 분야가 이미 전문 분야별로 다양한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하며 운영되고 있으니 발사체도 확대 개편하자는 근거다. 이를 위해 이상률 원장은 발사체연구소를 신설하고 그 산하에 발사체 체계 설계부, 고도화사업단, 차세대 발사체 사업단 등을 뒀다.

반면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을 비롯해 보직 사퇴서를 제출한 일부 부장들은 발사체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내부 발사체 인력은 270여명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부족하다는 근거다. 매트릭스 구조처럼 설계, 제작, 시험평가, 체계종합, 발사 준비 등 인력이 따로 있지 않고, 한 사람의 담당자가 설계부터 발사 운영까지 전(全) 과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항우연 조직개편 전후. /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실패하면 옷 벗어야 한다는 전례, 항우연 집안싸움 싹 틔웠다

이번 사태에서 주목할 부분은 고 본부장이 보직 사퇴서를 항우연이 아닌 과기정통부에 제출한 점이다. 고 본부장이 이끌고 있는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는 과기정통부 운영관리지침에 따라 별도 관리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이상률 원장 조차 항우연 소속인 고 본부장 사퇴 소식을 과기정통부를 통해 알았다고 한다. 발사체 조직이 항우연 소속이지만 사실상 원장을 패싱하는 조직이 됐다는 사실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전임 임철호 원장도 같은 목적으로 조직 개편을 시도했다가 무산된 전례가 있다.

항우연 발사체 조직이 과기정통부 관리 형태가 된 건 나로호 실패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로호는 2단 로켓으로 2002년 8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총 5025억원이 투입됐다. 2009년 8월과 2010년 6월 1·2차 발사에 실패하고, 2013년 1월 3차 발사 만에 극적 성공했다.

그러나 항우연 주무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는 나로호 발사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그 결과 이주진 전 원장(2008.12~2011.02)이 임기 10개월을 남기고 중도 사퇴했다. 당시 이주진 전 원장은 정부의 사퇴종용이 있었는지 묻는 말에 "코멘트하지 않겠다"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다수의 항우연 관계자는 교과부 책임 추궁을 받아들여 이 원장이 자진 사퇴하는 모습으로 사태가 일단락됐다고 한다.

2010년 6월 10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나로호가 2번째 발사되고 있다. 우주의 꿈을 담고 발사된 나로호는 발사 137분, 70㎞ 상공에서 통신이 두절되며, 정부 발표 폭발로 추정됐다. / 사진=뉴시스


또 교과부는 나로호 발사 실패 원인을 '국내 전문가 역량 미결집'으로 봤다. 항우연 내부 인원으로만 발사체를 개발하니 외부 기술이 결집될 수 없다는 분석이었다. 그래서 3단 발사체 누리호를 개발하는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단을 개방형 사업단(외부 독립기관)으로 조정했다. 외부 독립기관으로 두면서 사업단장은 항우연이 아닌 과기정통부가 선임하도록 운영관리지침을 만들었다.

운영관리지침 취지는 개발 독립성을 둔다는 것이었다. 임기 3년인 항우연 원장이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를 흔들지 못하도록 부처가 인사 관리하는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현재는 원장이 통제할 수 없는 조직이 됐다. 당시 사업본부는 2010년 3월부터 사업기간 12년을 3번에 나눠 본부장을 선임하기로 했다. 외부 독립기관으로 출범했기 때문에 초기 4년은 외부 출신 박태학 국방과학연구소(ADD) 박사가 이끌었다.

그러나 외부 인사가 조직을 운영하며 각종 난관에 부딪혔다고 한다. 2015년 중간 4년을 맡을 책임자로 내부 출신 고정환 박사가 48세 나이로 발탁됐다. 당시 과기정통부 운영관리지침이 개정되면서 발사체본부도 외부 독립사업단에서 항우연 내부 조직으로 개편됐다. 다만 본부장 임면권은 여전히 부처가 쥐도록 했다.

고 본부장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발사체본부장을 맡고 있다. 그가 사퇴서를 낸 이유는 다수의 연구개발 사업을 앞두고 있지만, 책임만 막중하고 권한은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현재 고 본부장은 사퇴서를 제출하고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 과기정통부와 항우연이 사표를 수리하지 않아 발사체본부장과 고도화사업단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항우연 일각에선 고 본부장 노력과 역할엔 이견이 없지만, 조직개편 필요성을 언급해온 원장들과 소통이 전무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 원장은 2021년 3월 취임 이래 전 구성원 대상으로 4차례 조직개편 필요성을 소개하고, 주간경영 회의에서도 여러 차례 관련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이 원장은 누리호 1·2차 발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조직개편 시점을 미뤄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과학계에선 '항우연 운영관리지침'으로 이번 사태를 초래한 과기정통부(교과부 후신)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 원장 측과 고 본부장 측 사이에서 장·차관이 직접 갈등을 조율할해야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5월 26일 오후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를 방문해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을 격려하고 있다. /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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