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침공' 꼬리표 못 뗀 통합수능…"평가원도 대학도 바뀌어야"
"평가원 통합수능 데이터 공개하고 대학은 선발 칸막이 둬야"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올해 초 발표된 주요 대학들의 2022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합격 양상은 예년과 사뭇 달랐다.
서울대 인문·사회·예체능계열 정시 최초합격자 가운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수학 미적분·기하를 선택한 이과생이 44.4%에 달했다.
서울대뿐만이 아니었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서울 소재 대학 인문계열 학과 지원 7600건 가운데 과학탐구 응시자를 분석한 결과, 서강·연세·한양대 등 주요 대학에서도 이과생의 인문계열 학과 교차지원 비율이 절반을 넘겼다.
이른바 '문과침공'이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에 붙은 꼬리표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올해도 이 꼬리표를 떼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2023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이 시작되기 전부터 '문과침공' 조짐이 나타나는 형국이다.
◇ '선택과목 유불리' 더해 영향력 커진 수학…두려울 게 없는 이과
'문과침공'은 통합수능의 '선택과목 유불리' 문제에서 기인한다.
통합수능에서 국어·수학 영역은 공통과목과 함께 각각 언어와매체·화법과작문, 확률과통계·미적분·기하에서 1과목씩 선택해 시험을 치르게 된다.
이때 선택과목 난이도 차이로 인한 유불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점수 조정이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공통과목 성적이 우수한 집단은 선택과목에서도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이에 따라 통상 국어는 언어와매체, 수학은 미적분 집단이 본인의 원점수 대비 더 높은 표준점수를 받게 된다. 여태껏 통합형으로 치러진 수능과 모의평가에서는 줄곧 이들 집단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아갔다.
올해 수능도 마찬가지였다. 국어에서 언어와매체와 화법과작문의 표준점수 최고점 차이는 4점, 수학 미적분과 기하·확률과통계 간 차이는 3점이었다.
여기에 올해는 국어·수학 간 난이도 차이에 따른 변수까지 더해졌다. 국어가 전년보다 다소 쉬워진 데 비해 수학은 비슷한 수준으로 어렵게 출제되면서 수학의 대입 영향력이 더 커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과생이 많이 응시하는 언어와매체·미적분의 표준점수가 유리하게 산출되고, 수학의 영향력까지 커지면서 대입에서 이과생이 한층 더 유리해진 셈이다.
이에 이과생들은 인문계열 교차지원에 나설 의사도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종로학원이 수능 직후부터 지난 8일까지 이과 수험생 49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국어·수학·탐구 백분위 270점대 이상 상위권 이과생 가운데 27.5%가 인문계열 학과 교차지원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19.0%보다 8.5%p 오른 수치다.
올해 교차지원 규모 전망은 입시업체마다 다르다. 그러나 올해도 이과생의 인문계열 학과 교차지원이 적지 않게 나타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 현 중2도 치르는 통합수능…평가원은 '데이터' 공개, 대학은 '침공' 막아야
이 같은 통합수능의 문제는 장기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제도 개편이 예고된 2028학년도 이전, 현 중학교 2학년 학생까지는 이 체제로 수능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입시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국어·수학 선택과목별 표준점수 등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평가원은 문제점 진단부터 해야 한다. 지금은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문제 파악만 제대로 한다면 대학에 협조를 구하든 어떤 형태로든 대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다수 대학은 자연계열에 지원할 때 미적분·기하·과학탐구 응시 조건을 두지만 인문계열에는 특별한 조건을 걸지 않고 있다.
게다가 주요 대학의 변환표준점수표 등을 살펴볼 때 사실상 대학들이 이과생의 인문계열 교차지원을 허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초 일부에서는 올해 대학들이 이과생의 인문계열 학과 교차지원을 방지하기 위해 사회탐구 응시자의 변환표준점수를 다소 높게 조정하는 등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기대를 걸기도 했다.
이와 관련 한 고교 진학교사는 "자연계열 학과에서 과학탐구와 미적분·기하가 학문을 공부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인문계열 학과에서는 과학탐구 응시자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대학의 노력으로 비정상적인 현장 모습은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sae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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